[다시 보는 라스베가스] 벅시 시걸

벅시시걸&칩

오늘날 라스베가스를 도박도시로서의 기초를 닦은 사람 중에서 큰 역할을 한 사람, 벅시 시걸-. 그의 본명은 벤자민 시걸 바움입니다. 벤자민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걸 보니 성경속의 이름으로 유대인이라는 생각이 들지요,예, 맞습니다. 그는 러시아계 유대인이며 미국 동부 뉴욕에서 사람 죽이고 두들겨 패고 돈 받는 직업을 가진 마피아였습니다.

그런 조폭이 어떻게 라스베가스를 도박도시의 기초로 닦았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독자 여러분 중에 ‘워렌 비티’라는 배우를 기억하시는 분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저는 아주 오래 전에 ‘나탈리 웃’과 함께 나온 ‘초원의 빛’이라는 영화를 감명 깊게 보면서 코끼리 눈을 가진 ‘워렌비티’라는 배우를 보았는데 이 배우는 할리우드의 바람둥이라고 합니다.저는 아직 그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워렌비티’의 명연기로 아마 그 영화는 잘 된 영화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어쨌든 ‘벅시’가 영화로 만들만한 인물이니까 그 인물을 소재로 ‘워렌 비티’라는 명배우를 주연으로 해서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벅시가 활약했던 1940년대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당시 자동차, 기차도 있었지만 마차가 대중교통수단으로 많이 사용되었던 시절입니다.

라스베가스에서 LA로 가려면 지금의 라스베가스 중심지에서 LA 쪽으로 약 40분 쯤 가다보면 ‘시에라 산맥’이라고 부르는 우리나라 옛날 대관령 고개만큼이나 큰 험산준령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80년 전 자동차도 귀하고 기차도 타기 어려웠던 시절, 마차가 주요 교통수단이던 그 시절에 많은 사람들이 금을 캐기 위해 서부로 서부로 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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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벅시 시걸을 소재로 만든 영화 ‘벅시’ 포스터. 워렌 비티와 아네트 베닝이 열연했다.

이름하여 ‘골드 러시’. 이 ‘골드 러시’ 행렬이 잠깐 멈춘 곳이 바로 시에라 산맥 아래였습니다. 워낙 험한 산이고 사고도 많이 나 아침 일찍 출발하지 않으면 고개를 넘는 것이 불가능했던 터라 다들 그 산맥 아래 옹기 종기 텐트를 치고 밥 지어 먹은 후 아침 일찍 행렬을 이루어 떠났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야영 가서 텐트치고 하는 일, 비행기가 연착되거나 기차가 연착되면 대합실에 돗자리나 신문지 깔고 앉아 하는 일이 무엇이죠? 예, 바로 고스톱입니다.

그 당시 미국 사람들도 예외는 아닌 모양입니다. 아마 사람 사는 곳이면 다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이때 미국 사람들도 카드 놀이를 한 것입니다.

텐트마다 사람들이 카드놀이를 하는 것을 본 벅시는 무릎을 쳤습니다. “이거다, 바로 이거다” 하고 말입니다.

벅시는 이곳에다 노름장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합법적으로 말입니다. 불법적인 도박장은 많이 있었던 것으로 추산되지만 그때만 해도 합법적인 도박장은 없었습니다.

라스베가스가 붐볐던 이유

이때가 대략 1930년대와 1940년대로 몰몬교도가 동부에서 보수적인 기독교도들로부터 이단시되면서 그곳에서 쫓겨나 서부로 이주해 오다 지금의 유타주에 정착을 하게 됩니다.

황망한 사막 유타주에 생필품이 필요한 건 몰몬교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래서 LA를 가게 되었고 LA를 가다보니 라스베가스를 거쳐 가게 되고, 라스베가스는 자연히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교통도시가 되었던 것입니다. 거기다 후버 댐 공사장의 수많은 인부들까지 가세했으니 라스베가스는 요새 말로 돗대기 시장같았을 것입니다.

벅시는 원래 동부 뉴욕에서 마피아로 제법 명성을 날렸던 중간 보스쯤의 조폭이었는데 이런 라스베가스의 상황을 보고 동부에 가서 위험한 총질할 것이 아니라 도박장 만드는 것이 낫다 싶어 자신의 자금과 함께 마피아조직의 자금을 빌려 이곳에 플라밍고 호텔 도박장을 만듭니다.

이 플라밍고 호텔 카지노가 라스베가스의 카지노를 산업화시킨 시초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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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가스 최초의 카지노가 들어선 플라밍고 호텔의 초창기 모습

한국말로 표현하면 노름장에서 고리를 뜯는 것이 총질하고 사람 두드려 패고 공갈쳐서 먹고 사는 것보다 훨씬 편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니 조폭치고는 머리가 좀 돌아갔던 사람이었지만 플라밍고 호텔 카지노 건립의 부채를 갚지 못하자 LA자택에서 결국 총에 맞아 죽습니다.

오늘날 도박산업의 시초가 일개 조폭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이 도박산업이 지금 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습니다.

아시아는 지금 카지노 건립 열풍

중국의 남부 조용한 섬 마카오가 포르투갈에서 중국으로 반환되자 도박도시로 변신하면서 라스베가스보다 더 많은 매출을 올리는 기염을 토하고 있고 작게는 한국의 폐광촌인 강원도 정선군 사북면에 도박장이 들어서자 그곳은 불야성을 이루는 산골짜기 도시가 되었습니다.

싱가폴이 도박사업의 활성화로 국가 수익이 늘자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의 각국이 카지노 건립을 위해 미국의 빅 카지노 업체와 협상을 하고 있고 한국 정부도 영종도에 카지노 허가를 승인한다는 보도가 얼마 전 나왔습니다.

이젠 각 국가들도 도박을 우습게 보지 않고 하나의 산업으로 보고 고용창출과 세수창출의 효자산업으로 마인드가 바뀌면서 카지노설립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보면서 라스베가스에 최초로 플라밍고 호텔 카지노를 설립한 벅시의 선견지명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기획위원

참고사진: 플라밍고 호텔, 벅시, 혹은 배우 워렌 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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