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돌’ 껍질 파괴하고 ‘아티스트’로 비상= 신해철은 지난 1988년 서강대 철학과 재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 결성한 밴드 무한궤도로 MBC ‘대학가요제’에 참여해 ‘그대에게’로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대에게’는 대학 축제 등 젊은이들이 주축을 이루는 행사에서 지금도 응원가로 불릴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멤버들의 학업 문제 등을 이유로 무한궤도가 해체된 이후 신해철은 솔로 활동에 나섰다. 신해철은 지난 1990년 첫 솔로 앨범을 발매해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와 ‘안녕’을 히트시켰다. 특히 ‘안녕’은 한국 랩(Rap)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곡이기도 하다.
사실상 아이돌에 가까웠던 신해철은 1991년 솔로 정규 2집 ‘마이셀프(Myself)’를 통해 아티스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신해철은 발라드와 댄스가 주를 이루던 당시 가요계에 ‘재즈카페’ ‘나에게 쓰는 편지’ ‘길 위에서’ 등 다채로운 장르의 실험적인 곡을 선보이며 새로운 아티스트의 탄생을 알렸다. 또한 신해철은 이 앨범 수록곡 전곡을 작사ㆍ작곡ㆍ편곡하고 프로듀싱과 연주까지 맡으며 음악적 역량을 과시했다.
신해철이 아티스트의 이미지를 굳힌 것은 밴드 넥스트(N.EX.T) 활동 이후부터다. ‘새로운 실험을 하는 팀(New Experiment Team)’이라는 의미를 가진 밴드 명에 걸맞게 그는 넥스트를 통해 기존 가요와는 차별화된 음악 스타일로 주목을 받았다. 1992년 넥스트 1집 ‘홈(Home)’을 발표해 ‘도시인’을 히트시킨 신해철은 1994년 2집 ‘더 리턴 오브 넥스트 파트 1 : 더 비잉’으로 완성도 높은 헤비메탈을 선보이며 록 마니아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이 앨범의 수록곡 ‘디 오션(The Ocean) : 불멸에 관하여’는 7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의 전성기를 연상케 하는 사운드로 한국 록을 서양의 록보다 한수 아래로 바라보던 일부 록 마니아들의 인식을 바꿔 놓기도 했다. 이후 신해철은 넥스트로 과 1995년 3집 ‘더 리턴 오브 넥스트 파트 2 : 더 월드(The Return of N.EX.T Part II : The World), 1997년 4집 ‘라젠카 : 어 스페이스 오페라(Lazenca : A Space Rock Opera)’를 차례로 내놓으며 대중적인 성공을 이어갔다.
▶ 록에서 외연 확장…다양한 장르 음악 실험 = 신해철은 1997년 4집 발매 기자회견에서 “국내시장과 공연시스템의 열악한 구조로 인해 밴드활동의 지속이 어려워 더 이상 올라갈 자리가 없다”며 “1997년 12월 31일부로 밴드는 해체할 것이고, 4집이 마지막 앨범이 될 것”이라고 밝혀 팬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록을 비롯해 테크노,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였다.
신해철은 1998년 테크노를 전면에 내세운 솔로 앨범 ‘크롬스 테크노 웍스(Crom’s Techno Works)’를 발표한 데 이어, 1999년에는 넥스트 4집의 믹싱 엔지니어이자 영국 출신 세계적인 밴드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의 앨범을 프로듀싱했던 크리스 샹그리디(Chris Tsangarades)와 모노크롬(Monocrom)을 결성해 앨범을 발매했다. 2000년 그는 키보디스트 임형빈, 재미교포 기타리스트 데빈 리와 3인조 밴드 비트겐슈타인을 결성해 저예산 홈레코딩으로 제작한 실험적인 앨범을 내놓기도 했다. 또한 그는 2007년 재즈음악만을 담은 솔로앨범 ‘더 송스 포 더 원(The Songs For the One)’을 발표하는 등 음악적 변신을 멈추지 않았다.
신해철은 지난 2004년 새로운 라인업으로 넥스트를 7년 만에 재결성해 정규 5집 ‘더 리턴 오브 넥스트 파트 3 : 개한민국’을 발표하며 팬들의 관심을 모은데 이어, 2006년에는 베이시스트 김영석과 드러머 이수용 등 기존 넥스트 멤버들을 재영입해 리메이크 앨범인 5.5집 ‘리게임(Regame?)’을 발표했다.
▶ 팬들의 염원에도 끝내 일어서지 못한 ‘마왕’=지난 2008년 데뷔 20주년 앨범 ‘리멤브런스(Remembrance)’ 발매 후 6년간의 공백기를 가진 신해철은 올 초 컴백 소식을 알렸다. 그는 지난 6월 17일 솔로 6집 ‘리부트 마이셀프(Reboot Myself)’의 수록곡 ‘아따(A.D.D.A)’를 선공개하고, 6월 26일 6집의 첫 번째 파트를 담은 미니앨범을 발매하며 활동을 의욕적으로 재개했다.
이 같은 신해철의 행보에 제동을 건 것은 건강 문제였다. 신해철은 지난 17일 서울 송파구의 한 병원에서 장협착증 수술을 받은 뒤 다음 날 퇴원했으나 지속적인 가슴과 복부 통증을 호소해 20일 새벽 응급실로 후송됐다. 이후 그는 간단한 응급처치를 받은 후 퇴원했으나 당일 오후 다시 열을 동반한 통증을 호소해 재입원해 몇 가지 검사를 진행한 후 21일 다시 퇴원했다. 그러나 22일 새벽 또 다시 통증을 느낀 신해철은 다시 병원으로 후송됐고, 오후 12시께 병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이날 오후 1시께 심정지 상태에 이른 신해철은 바로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상태가 위중해 오후 2시 서울 아산병원 응급센터 중환자실로 이송됐다. 이후 동공 반사가 없는 의식 불명 상태였던 그는 27일 오후 8시 19분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으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향년 46세로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팬들과의 이별이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오는 28일 오후 1시부터 마련될 예정이며, 아직 발인 및 장지 등은 정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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