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 부지영 감독 “도경수, 사진 보고 마음에 쏙 들진 않았는데…”(인터뷰)

[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상업영화에서 비정규직 얘기요? 재미있는 작업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부지영 감독은 부드럽지만 단단했다. 작은 체구에 선한 미소를 지닌 부 감독은, 인터뷰가 시작되자 상대의 눈을 또렷이 바라보며 조근조근 소신을 펼쳐놨다.

영화 ‘카트’의 주인공들도 그랬다. ‘더 마트’의 비정규직 계산원 선희(염정아 분)는 정규직 전환을 기대하며 밀려드는 잔업을 묵묵히 해낸다. 높은 취업문에 좌절했지만 미진(천우희 분)은 여느 20대 또래처럼 생기 넘친다. 청소부 순례(김영애 분)는 성실하고 살가운 젊은 직원을 아들처럼 챙긴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따뜻하고 평범한 이웃들이다.

회사로부터 부당해고를 통보 받으며 그녀들은 달라졌다. 상상도 해본 적 없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차가운 마트 바닥에서 먹고 자며 일터를 지켰다. 회사 간부들은 “반찬값이나 벌러나온 아줌마들이 뭘 하겠느냐”며 코웃음 치지만 이들은 끈질기게 버틴다. 마트가 단순히 ‘반찬값’을 벌러나온 곳이 아니라, 아들의 급식비를 제 때 내고 싶은 엄마와 남편을 대신해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아내의 간절함이 담긴 곳이기 때문이다.

부 감독은 그녀들의 힘겨운 싸움을 카메라에 담았다. 일터에서 묵묵히 일할 때도,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싸울 때도 언제나 주목받지 못했던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다. ‘카트’는 “우리를 투명인간 취급하지 말아 달라”는 선희의 외침에 대한 부 감독의 화답이기도 하다. 

▶“좋은 시나리오 ‘카트’, 마다할 이유 없었죠”=부 감독은 ‘카트’의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고민 없이 연출을 결심했다. 좋은 시나리오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명필름에서 상업영화에 비정규직 소재를 담는 시도를 한다는 것이 용기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수락했는데 각색 작업에만 무려 1년이 걸렸다. ‘카트’의 모티브가 될 만한 실제 사건들을 많이 찾아보고, 세부적인 묘사에 많은 공을 들인 덕분이다.

“지금까지 작은 규모의 영화를 만들다보니, (비교적 큰 예산의 ‘카트’를) 잘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죠. 또 비정규직 문제라는 소재를 계몽영화나 교육용 영화도 아니고, 상업영화로 만든다는 것이 쉽지 않은 작업이더라고요. 이미 이런 일들(부당해고, 파업 등)을 겪었던 분들이 영화를 봤을 때 실망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일반 관객들이 봤을 때도 재미있고 감동적인 상업영화가 돼야 한다는 과제가 있었죠.”

‘카트’는 비정규직 마트 직원들이 노조를 통해 연대감을 느끼고, 좌절과 희망이 교차하는 과정을 담담하고도 사실적으로 담아낸다. 거의 유일하게 극적인 부분은 용역 깡패들이 농성장의 천막을 강제 철거하는 과정에서 혜미(문정희 분)의 아이가 다치는 장면이다. 드라마적인 효과를 위해 끼워넣은 에피소드가 아닌가 싶었지만, 부 감독의 말을 들어보니 충분히 사실적인 설정 중 하나였다.

“여자 노동자들이 파업했을 때는 지지를 오래받기 어려워요. 시간이 지나면서 살림이나 육아 문제도 커지고… 결국 여자 노동자들은 회사 뿐 아니라 너무나도 많은 외부 조건과 싸워야 하죠. 그러면서 (파업 지속 여부를 두고) 갈등에 빠지는데 가장 큰 요인은 ‘가족’이예요. 혜미 역시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못 보내고 파업 현장에 데려오다보니 항상 위험에 노출될 수 밖에 없죠. 있을 수 밖에 없는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엑소 도경수? 처음엔 누군지도 몰랐어요”=‘카트’는 소재도 눈길을 끌지만, ‘믿고 보는’ 출연진 덕분에 일찌감치 기대를 모았다.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는 염정아·문정희를 중심으로, 최근 ‘현기증’에서 신들린 연기를 보여준 중견배우 김영애, 영평상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한공주’의 천우희, ‘연기돌’이라는 찬사를 넘어선 엑소 도경수(디오) 등이 한데 모였다.

이같은 조합을 두고 부지영 감독은 “균형이 잘 맞는 캐스팅이다. 거의 완벽하다고 생각한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부 감독은 전작들을 작업할 때와 달리, 이번 현장에선 배우들에게 많은 부분을 맡겼다. 현장의 배우들이 워낙 많다보니 밀착된 디렉션을 주기 어려웠던 것. 베테랑 배우들은 부 감독이 미처 신경쓰지 못한 빈틈을 스스로 다 메꿔줬다. 물대포를 맞는 장면에선 한 테이크를 더 찍는 것이 미안할 정도였지만, 배우들이 자발적으로 ‘너무 보송보송한 것 같다. 물을 더 달라’며 채근했다. 부 감독은 “배우들 덕을 많이 봤다. 복 받은 거라 생각한다”며 웃어 보였다.

선희의 사춘기 아들로 열연한 도경수의 경우,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를 통해 연기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기 전 ‘카트’에 캐스팅됐다. 연기력이 검증되지 않은 아이돌 스타의 출연에 부담감은 없었을까.

“사실 도경수가 누군지 전혀 몰랐어요. 캐스팅 디렉터가 선별한 후보에 있길래 인터넷에서 찾아봤는데, 그 땐 마음에 쏙 들진 않았어요. 밝고 환하고 개구쟁이 같은 느낌이었죠. 실제 만나본 도경수는 완전히 달랐어요. 밝아 보이는 것 외에도 많은 면들을 가지고 있었죠. 첫 만남에서 리딩도 잘했고 감독의 지시를 이해하고 순발력 있게 대처하는 점에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캐릭터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본능이 뛰어난데, 이건 재능으로 밖에 설명이 안 될 것 같아요.”

그러면서 부 감독은 “엑소가 그 정도 팬덤을 가진 줄 몰랐는데 (도경수 덕분에) 엑소 멤버들 이름도 외우게 됐고, 제 관심 분야가 확장됐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 “영화 현장의 즐거움, 가능한 오랫동안 느끼고 싶어요”=‘카트’를 계기로 벌써부터 부지영 감독의 향후 행보를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현실고발 영화를 찍는 데 매진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부 감독에게 그런 강박은 없다. 부 감독은 그저 어떤 인물을 찬찬히 뜯어보고 영화에 담아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인물을 다룰 때 캐릭터에 성격 만을 담진 않아요. 그 주변을 둘러싼 환경을 보게 되죠. 어떤 가정에서 성장했고,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주변에는 어떤 친구들이 있고…. 누구든 사회적으로 상호작용을 주고받을 수 밖에 없으니까요. 물론 거기서 조금 더 확장되면 ‘카트’처럼 사회적인 문제를 말할 수도 있겠죠. 분명한 건 전 인물을 인물 자체 만으로 다루지 않을 거라는 점이예요.”

부지영 감독이 인상적이었던 건, 연출자로서 욕심내는 소재나 장르 등을 스스로 특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단편영화 ‘불똥’으로 메가폰을 잡은 지 17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녀는 순수하게 영화 현장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이번 작업을 통해서도 느꼈지만 영화 현장이 참 좋아요. 사람들과 어떤 장면을 만들어가는 것이 행복하고, 영화를 완성했을 때 느끼는 희열에 행복해져요. 그 즐거움을 가능한 오랫동안 느끼면서 살고 싶어요.”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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