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만으론 안되는…‘1000만 대박’영화엔 뭐가 있길래…

‘암살’(감독 최동훈ㆍ제작 (주)케이퍼필름)이 한국영화로선 올해 첫 1000만 관객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암살’의 흥행은 개봉 전에도 어느 정도는 예상 가능했다. 흥행 감독 최동훈이 메가폰을 잡았고, 티켓 파워 있는 스타 배우들이 여럿 나온다. 180억 원의 순 제작비(일반 상업영화의 3배 이상)가 투입된 만큼 볼거리도 풍성하다. 뚜껑을 열기 전에도 최소 ‘중박’ 이상을 기대할 만한 구성이었다.

다만 1000만 관객 전후의 ‘대박’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실력파 제작진과 화려한 출연진, 스케일 등 구색을 갖추더라도, 장기흥행에 끼어드는 변수가 한 둘이 아니다. 초반 흥행 기세가 좋더라도, 엇갈린 평가가 나오기 시작하거나 강력한 경쟁작이 등장하면 흥행세가 꺾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게다가 매주 한 편씩은 대작이 나오는 성수기 극장가에서 스크린 수를 지키는 것부터가 난제다. 관객 수나 예매율이 주춤하는 순간, 스크린 수는 반토막이 난다. 적어도 700~800개 스크린을 쥐고 있지 않으면, 1000만 흥행에 이르는 일은 요원하다.

그렇다면 장기 레이스에 성공한 1000만 영화들은 어떤 무기가 있었던 걸까.


▶평균 이상 만듦새·영화적 재미는 기본=우선 이야기 전개와 캐릭터가 설득력을 가지는 등 평균 이상의 만듦새는 갖춰야 한다. 1000만 명이나 봤다는 사실이 의아한 대박 영화는 있어도, 누가 봐도 조악한 영화가 경이로운 흥행 레이스를 펼치는 경우는 없다.

‘잘 만든 영화’와 더불어 ‘재미있는 영화’가 통하는 건 당연하다. 관객 입장에서 영화가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이자 최고의 미덕이야말로 ‘재미’다. 물론 이야기와 장르 등에 따라 재미는 지극히 주관적일 수 있다. 휴먼 코미디의 웃음과 감동이 즐거움을 줄 수도 있고,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가 쾌감을 줄 수도 있다. 어떤 종류의 재미든 극장을 나설 때 만족감만 보장된다면, 흥행을 기대해볼 만 하다.

물론, 재미만을 따진다면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380만 명)나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610만 명)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관객들도 많을 터. 상대적으로 단순 재미를 얘기하기엔 애매한 공상과학(SF) 영화 ‘인터스텔라’의 경우엔 1000만 흥행에 성공했다. 국내에서 SF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모은 전례도 없거니와, 대중적인 흥행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철학적인 요소도 다분했다. 그럼에도 우주 공간의 스펙터클은 물론, 한국적 정서에 부합하는 부성애·가족애 코드 등이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 ‘입소문’ 없이 1000만 영화도 없다?=결국은 ‘입소문’이 핵심이다. 당장 이번 주말에 볼 영화를 고르는 데 고려할 법한 요소를 따져보자. 영화의 장르나 전체 줄거리? 감독? 출연진? 전문가들의 평점? 개인 차가 있겠지만 취향이 뚜렷한 마니아가 아니라면, 주위 입소문을 듣고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 평점에는 대중 취향과 거리가 있다는 편견이 있고, 리뷰 기사들은 작품에 대한 직설적인 평가보다는 정보성 내용을 다루는 일이 많다. 결국 관객들은 포털 사이트나 SNS 등에 올라온 후기들을 참고한다. 혹은 회사 동료나 친구들로부터 접하는 ‘돈이 아깝지 않더라’, ‘노잼(‘재미가 없다’는 뜻의 속어)이더라’ 등의 단평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따라서 1000만 관객을 모으기 위해선 능동적인 입소문 전파자가 필요하다. 영화가 그저 ‘볼 만한’ 수준이라면, 입소문을 낼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포털 사이트나 예매 사이트에 로그인하는 수고를 감수하면서까지 후기를 남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추천하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재미있거나, 많은 사람들이 봐야하는 당위성이 있어야 관객들은 움직인다. 특히 후자를 충족시켰을 때 입소문의 화력은 1000만 관객을 모을 만큼 커진다.

▶ ‘재미있는 영화’ 넘어 ‘봐야하는 영화’가 입소문 동력=지난 해 여름 극장가를 뒤흔든 ‘명량’부터 ‘국제시장’, ‘암살’까지 최근 대박 영화들을 보면 대부분 이 ‘당위성’이 작동했다. 단순히 ‘재미있다’는 반응을 넘어 ‘봐야하는 영화’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명량’의 경우 이순신 장군의 자기희생과 용맹함을 통해 ‘진정한 리더와 리더십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공론화됐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특히 리더의 위치에 있거나 리더를 꿈꾸는 이들에게 ‘봐야할 영화’로 인식됐다. ‘국제시장’의 경우 1960~70년대를 일군 아버지 세대를 그리면서, 청년층에겐 윗세대의 노고를 상기시킬 영화로, 중장년층에겐 시대의 향수를 자극할 영화로 입소문이 났다. 덕분에 극장 주 고객인 20~30대는 물론, 10대부터 60대 이상 관객들까지 폭넓게 견인하면서 1000만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

‘암살’의 경우 나라의 독립을 위해 희생한 이름 모를 이들을 기린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이라면 봐야하는 영화’로 자리매김했다. 아울러 사회 곳곳에서 여전히 발호하는 친일파와 기회주의자들을 숙청하는 과제를 상기시키기 때문에, 여전히 유효한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영화의 메시지는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관객들이 느낀 감동과 분노, 통탄 등의 감정이 온라인에서 강력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입소문이 폭발했다. ‘암살’의 배급사 쇼박스 관계자는 “단순 오락영화를 넘어 잊혀졌던, 혹은 잘 몰랐던 옛 일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고 국민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영화들이 1000만 고지를 넘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