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er 엔터] 너무 이상한 한국의 ‘요섹남’ 열풍?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아무리 지겹다 해도 여전히 ‘쿡방 시대’다. 그 중심엔 이른바 ‘요섹남’(sexy cooking man, 요리 잘 하는 섹시한 남성)으로 불리는 ‘셰프테이너’가 있다. 국내 방송가에 불어닥친 ‘요리하는 남자’ 열풍을 워싱턴포스트가 조명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라이프스타일 채널 올리브의 ‘스테디셀러’ 프로그램인 ‘올리브쇼’의 녹화 현장을 방문했다. 안방에 불고 있는 ‘요리하는 남자’ 열풍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올리브쇼’는 채널의 입장에선 상징적인 프로그램이다. 자사 브랜드를 걸고 나온 대표 요리 프로그램으로, 신상호 PD는 앞서 본지에 “올리브쇼는 올리브 채널에서 발간하는 주간지 격의 프로그램”이라며 “가장 핫하고 트렌디한 정보를 우선시하며 요리 초보자부터 숙련자까지 모두가 공감하며 얻어갈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원조 ‘쿡방’인 ‘올리브쇼’는 현재 ‘셰프들의 레시피 게임’이라는 제목으로 매주 화요일 밤 9시에 방송 중이다. 가수 성시경, 방송인 조세호, 푸드 칼럼니스트 박준우가 진행을 맡고 이연복 진경수 오세득 남성렬, 고바야시 스스무 등 총 13명의 셰프가 출연해 고급 레시피를 대방출한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9일(현지시간)자를 통해 ‘올리브쇼’의 녹화현장을 설명하며 ‘한국 요리 프로그램의 새 주인공 : 남자’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WP는 먼저 “한국인은 먹는 문화를 중시한다”면서 한국에선 “잘 지내니”라는 인사 대신 ‘밥 먹었냐“는 안부를 건넬 정도로 ”먹는 것에 애착을 가진다”고 했다. 특히 우리의 식문화에서 개인용 앞접시보다는 같은 냄비에 담긴 국을 먹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언급하며, ’함께 먹는 것‘에 대한 애착은 여러 가지 사회현상으로 이어졌다고 봤다. 지난 몇 해간 안방을 뜨겁게 달군 ’먹방‘(먹는 방송) 열풍이 그것으로, 여럿이 모여 누군가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방송이 등장했다는 점을 짚었다. 그러면서 이제 한국은 ’쿡방‘ 시대라며, 이는 “단지 요리하는 방송이 아니라 요리하는 남자들의 쇼”라고 했다.

WP가 한국사회의 쿡방과 요섹남 열풍을 주목한 이유가 흥미롭다. 동아시아 국가인 한국은 유교적 가치관이 뿌리 깊은 사회라는 데에 있다. ’성 역할‘이 엄격하게 구분된 유교사회에서 ’요리하는 남자들‘이 부각되는 것은 기존의 관습을 깨고나온 ‘새로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특히 “남자가 부엌에 드나들면 사내구실 못 한다”는 옛 말을 언급, 요리공간으로 상징되는 부엌이야말로 엄격한 성역할의 구분을 강요받는 공간이라고 봤다.

WP는 tvN의 ’삼시세끼‘와 ’집밥 백선생‘, 올리브 채널에서 방송하는 ‘오늘 뭐먹지’, JTBC ‘냉장고를 부탁해’ 등을 그 사례로 언급하며 열풍에 다가섰다. 두 편의 요리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성시경은 ‘올리브쇼’ 녹화현장에서 WP와 만나 “아버지 세대는 요리를 하지 않았지만 우리 세대는 요리를 한다”는 말로 한국사회의 변화상을 전했다.

하지만 TV와 현실이 같은 모습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TV에서 불고 있는 ‘요섹남’ 열풍은 일종의 판타지를 자극했다. WP는 “시청자들은 스타일리시한 남성들이 요리하는 모습에 매력을 느끼“지만, 현실의 부엌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한 여성은 WP와의 인터뷰를 통해 ”TV 속 셰프들은 매력적이지만 실제로 가정에서 요리를 자주 하는 남자는 드물다“고 지적했다. 결혼 전이야 요리를 하기도 했으나, 결혼 이후 가사노동은 여성의 전유물이라는게 한국 사회의 분위기라는 해석이다. 때문에 한국사회의 ‘쿡방’ 열풍은 현실도피적인 판타지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오늘 뭐 먹지’의 석정호 CP는 본지에 ‘쿡방’ 인기요인의 한 측면으로 “남자들이 나와 요리하는 모습이 과거 여성들이 지고 있던 가사부담을 덜어주며 대리만족도 준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WP는 구세웅 사회비평가의 발언을 인용, “다른 사람의 삶의 방식을 엿보고 싶은 심리”가 작용했다고 봤다. 물론 여기서도 정작 “필드에서의 셰프들은 열악한 경제환경”에 처했다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섹남 열풍은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서서히 바꿀 것이라는 낙관론이 나왔다. 신상호 ’올리브쇼‘ PD는 ”한국 사회가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며 ”여성시청자의 남편이나 남자친구는 여성들을 위해 요리를 시도할 것이기 때문에 느리더라도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봤다. 올리브쇼의 남성렬 셰프 역시 ”요리를 하고 식료품을 직접 구입하는 남성들이 늘었다“고 말하며 ”특히 예전에는 요리 수강생 50명 중 남자는 5명 정도였는데 최근엔 20명 가까이가 남성“이라고 설명했다. 비단 여성들의 판타지에 그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WP와 인터뷰에 응한 33세의 한 남성은 “식료품을 구입하고, 요리를 하고, 아내와 함께 장을 보는 것을 즐긴다”고 말했다.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쿡방’의 취지가 사실 그렇다. “검증된 셰프들을 통한 신뢰감 있는 정보 전달”(신상호 PD)을 통해 시청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참여를 유도한다. 셰프들의 요리대결 프로그램인 ‘냉장고를 부탁해’, 요리 문외한인 두 남자의 ‘오늘 뭐 먹지’, 쉽고 간단한 다양한 집밥 요리를 선보이는 ‘집밥 백선생’ 등은 방송애서 요리 레시피를 전달한다. “만만한 음식, 남자들도 할 수 있는 집밥 레시피로 구성해 집에서 직접 해먹을 수 있게 하는 것”(’오늘 뭐 먹지‘ 석정호 CP)이 이들 프로그램의 애초의 출발점이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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