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잘 나가던 ‘개콘’ 개그맨들, “기름 바닥난 자동차”의 생활…우린 무대로 갑니다

최소 10년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그 시간동안 웃음에만 매진했다. “그동안 제가 또 얼마나 많이 웃겨드렸어요.”(박성호) 18년을 코미디에 헌신하니 ‘시조새’(박성호)라고도 불린다. 히트작도 많았고, 유행어도 숱했다. 수년간 대한민국 1등 코미디로 군림한 ‘개그콘서트’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소위 ‘잘 나가던’ 개콘 개그맨들이 울타리를 나와 새로운 도전을 한다. 개그맨 박성호(13기) 김재욱(20기) 김원효(20기) 이종훈(22기) 정범균(22기)이다. 이들 다섯 명은 난데 없이 ‘쇼그맨(쇼하는 개그맨)’이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여러 코너로 호흡을 맞춘 박성호와 정범균은 3~4년 전부터 공연을 꿈꿨다. “같이 공연 한 번 하자”는 말이 수차례 오갔다.

“‘술이나 한 잔 하자’ 친구끼리 이런 말 자주 하잖아요. 개그맨끼린 코너 한 번 하자, 공연 한 번 하자는 말이 그런 인사예요.”(김원효) 마음은 늘 품었지만 ‘정글’에서의 생존이 만만치 않아 시간이 길어졌다.

지난 7월 다섯 명은 서울 여의도 KBS 희극인실에 모여앉아 의기투합했다. 결정을 내리자,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9월 12일은 역사적인 날”이라고 맏형 박성호는 강조한다. 서울 홍대 윤형빈소극장에서 태어난 공연은이후 대기업, 제작자, 기획사 등 다양한 관계자들의 눈에 띄었다. 연말까지 지방공연이 빼곡하다. 내년 2월부턴 해외공연을 시작한다. 국내 개그맨으로는 최초의 교민 상대 해외투어다. 

(사진설명) 10년차를 훌쩍 넘긴 ‘개그콘서트’의 잘 나가는 개그맨들이 쇼그맨으로 뭉쳐 무대로 향했다. 그룹 결성 두 달 만에 국내 공연은 물론 해외투어까지 성사시키며 후배 개그맨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왼쪽부터 이종훈 김원효 김재욱 정범균 박성호.



▶ “기름이 바닥난 자동차”…그래서 우리는 무대로 간다=스스로 찾아간 무대는 이들에겐 마음의 고향이었으며, 아이디어의 원천이었다.

다섯 명 모두에게 소극장 무대는 “개그의 출발”이었다. 그래서인지 “한 번도 공연을 벗어난 적이 없다”(정범균)는 생각으로 지냈다. “‘개그콘서트’를 하면서도 대학로 소극장을 찾아 새로운 영감을 얻으려고 했어요. 그 터전을 10년 동안 떠난 적은 없는 거죠.”(정범균)

이젠 5명이 팀으로 뭉쳐 무대로 향했다. 저마다의 이유가 조금씩 다르다.

매주 새로운 코미디를 짜내려 10~20년을 달려온 고된 정신노동에는 익숙해졌다지만, 아이디어 고갈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슬럼프도 찾아오고, 매너리즘에도 빠진다.

박성호는 “솔직히 말해 밑천이 다 떨어졌다”고 털어놨다. “20년간 방송코미디를 하다 보니, 불이 깜빡깜빡 꺼져가는 자동차와 같았다”고 한다. “내리막길에 있던 터라 그냥 달릴 수 있었던 거죠. 그러다 히치하이킹을 해서 후배들 차를 얻어탔어요. 그런데 돌아보니 차는 많은데 다들 기름이 없더라고요. 저한테 무대는 영감을 얻는 ‘작업밑천’이에요.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 동안 아이디어를 얻고 다시 돌아와 더 많은 웃음을 드리는게 제 사명이고 소명이에요.”(박성호)

이종훈에겐 자기개발의 시험대였다. “12년 동안 개그를 하면서 스스로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개발하고 발전시키고 싶은 자리”였다. “요즘 고민이 많은 시기였어요.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과 신뢰가 떨어져 불안한 시기였죠. 여기 잘 하는 사람들이 다 있잖아요. 제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해보며 스스로를 개발하고, 그러면서 아이디어를 비축해 나만의 무기를 저장해두고 싶은 거죠. 방송이든 무대든, 시청자와 관객에게 더 많은 웃음을 줄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공연을 계속 할거예요.“(이종훈)

김재욱에게 이 무대는 목마름이었다. “방송에서 보여지는 단면적인 모습들이 아닌 새로운 모습,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쇼그맨으로 지금은 5명이 함께 하지만, 나중엔 오로지 저 혼자 할 수 있는 공연이나 다양한 콘텐츠를 해보고 싶고요.”(김재욱)

“무대에선 놀 수 있어서 좋다”는 김원효는 쇼그맨 공연을 통해 수많은 후배들에게 “이정표를 제시하고 싶었다”고 한다. 방송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공연을 통해 자기 콘텐츠를 발굴해, 후배들에게 더 많은 길을 내주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고 한다. 성과가 남아야 길이 열린다. 쇼그맨은때문에 “좋은 사례가 돼야하기에” 지금 이 자리에 치열하다.

(사진설명) 10년차를 훌쩍 넘긴 ‘개그콘서트’의 잘 나가는 개그맨들이 쇼그맨으로 뭉쳐 무대로 향했다. 그룹 결성 두 달 만에 국내 공연은 물론 해외투어까지 성사시키며 후배 개그맨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왼쪽부터 이종훈 김원효 김재욱 정범균 박성호.

▶ ‘쇼하는 개그맨’의 공연은 ‘복합쇼핑몰’=연예계 생활에 안착한 이후 하나부터 열까지 스탭들(매니저, 스타일리스트 등)의 도움을 받아왔다. 그랬던 시절은 ‘쇼그맨’으로 뭉친 이후 반납했다.

‘쇼그맨’으로 활동할 때 이들 다섯 명은 모든 걸 스스로 관리하고 정리한다. 지망생 시절 충분히 해왔던 일이다.

동대문 새벽시장에 가서 의상과 구입하고, 직접 스케줄을 짠다. 맏형 박성호는 ‘협찬의 달인’이고, 막내 정범균은 ‘홍보 담당’이라는 직함에 ‘차량제공’이라는 감투도 썼다. 직접 운전할 공연용 차량까지 몰래 구입했다고 한다.

무대에 서기 전까지 리허설을 통해 음향, 조명 등을 확인하는 것도 당여한 업무다. 연기자이면서 제작자의 역할을 겸하고 있는 셈이다. 작정하고 뛰어든 다섯 명은 ‘맨땅에 헤딩’까지는 아니더라도 완전히 처음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고되다”는데 얼굴에선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공연 좀 한다”(개그맨 김영민)는 개그맨이 모이니, 맏형 박성호는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팀”이라고 자부한다. 서울과 부산, 대전 등지에서 이미 몇 차례 공연을 통해 인기를 확인했다.

박성호는 공연장에서만큼은 아이돌 부럽지 않다. 후배들이 이야기하길 “다양한 개인기와 애드리브, 캐릭터 만들기에 능한” 박성호는 공연장에서의 반응이 유달리 좋다고 한다. “9월 12일 첫 공연 이후 일면식도 없던 팬이 커피를 스무 잔 정도 사줬어요. 스무 잔이면 가격도 꽤 하잖아요. 티켓 가격보다 더 비싸죠.” 박성호에겐 “데뷔 이후 가장 비싼 선물”이었다.

관객들의 만족도가 높은 ‘쇼그맨’의 공연은 약 90분 분량이지만, 애드리브에 따라 105분까지 시간이 늘어난다. 개그는 기본이며 춤과 노래, 마술, 레크레이션이 어우러져 “관객들과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이종훈), ”복합쇼핑몰“(김원효)과 같은 공연이다.

쇼그맨의 공연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 중이다. ”어느 정도 개그형식을 따라가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자”(김원효)는 생각에 기존의 것을 “확장하고 업그레이드해 쇼적인 부분을 가미”했다. “브랜드화를 꿈꾸는 만큼 돈 내고 볼 만한 공연을 만들기 위한”(김재욱) 노력이다. 심지어 “관객 구성(여자, 남자, 노인, 아이)에 따라 그날 그날 개그수위를 조절“(이종훈)하며 변화를 준다.

“어떤 사업을 해도 자본금이 들어가고 리스크가 있잖아요. 우리는 그런게 없어요. 생각으로 뱉고 무대에서 실행할 수 있죠. 실패한다 한들 창피함만 있는거죠. 돈 드는 것도 아니니 항상 시도하자고 동생들한테 이야기해요.”(박성호)

동생들 역시 치열한 개그 정글을 헤쳐나온 시간이 있다보니 스스로 변화에 갈급하다. “하나의 콘텐츠로 몇 년씩 장기공연을 하면 좋겠죠.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워낙에 빨라서 그런지 한 번 봤던 걸 또 보면 재미를 느끼지 못해요. 무대에서 공연 구성을 수시로 바꾸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그렇게 만들어가는게또 재밌어요.“(김원효)

“공연을 통해 관객들이 즐거움을 느끼고, 그로 인해 함께 웃을 수 있는 것”(박성호)이 최우선 가치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업을 해도 자본금이 들어가고 리스크가 있잖아요. 우리는 그런게 없어요. 생각으로 뱉고 무대에서 실행할 수 있죠. 실패한다 한들 창피함만 있는거죠. 돈 드는 것도 아니니 항상 시도하자고 동생들한테 이야기해요.”(박성호)

동생들 역시 치열한 개그 정글을 헤쳐나온 시간이 있다보니 스스로도 변화를 즐긴다. “하나의 콘텐츠로 몇 년씩 장기공연을 하면 좋겠죠.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워낙에 빨라서 그런지 한 번 봤던 걸 또 보면 재미를 느끼지 못해요. 무대에서 공연 구성을 수시로 바꾸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그렇게 만들어가는게 또 재밌어요.“(김원효) 

(사진설명) 10년차를 훌쩍 넘긴 ‘개그콘서트’의 잘 나가는 개그맨들이 쇼그맨으로 뭉쳐 무대로 향했다. 그룹 결성 두 달 만에 국내 공연은 물론 해외투어까지 성사시키며 후배 개그맨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왼쪽부터 이종훈 김원효 김재욱 정범균 박성호.

국내 개그맨 최초의 ‘해외투어’…“웃음이 목마른 분들과 나누기 위해”=“웃음을 나누기 위해” 국내 개그맨으로선 처음으로 교민 상대 해외투어를 진행한다. 내년 2월 미주 6개도시(LA, 뉴욕, 시카고, 아틀란타, 휴스턴, 달라스)를 시작으로 6월 호주(시드니, 멜버른)를 거쳐 뉴질랜드(오클랜드)에서 마무리된다.

“가끔 한국에 오시는 해외교민들을 만나게 될 때가 있어요. 연세가 지긋하신데도 이름과 얼굴을 정확하게 알더라고요.”(박성호), “남원에서 만난 해외교민은 내년에 공연 간다고 하니 너무 좋아하시면서 매니저의 연락처를 받아가시더라고요.”(김원효)

쇼그맨의 해외투어는 ”한국 코미디를 알리는 목적“이 아니다. “웃음에 대한 목마름이 있으면서도 개그공연을 접할 기회가 없는 교민들을 위해 우리가 직접 가겠다”는 생각이 지금의 성과로 이어졌다. CCM 가수 —의 도움이 컸다.

몇 달에 걸쳐 이어질 해외투어이기에 기대도 크도 걱정도 따라온다. “같은 한국인이지만 문화차이로 이해의 폭이 다를 수 있다. 개그는 시대와 정서를 반영하는데 환경이 다르면 공감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김재욱)는 생각이다. 일단 부딪혀본 뒤 베테랑답게 공연을 운용할 생각이다. “순간적인 애드리브라도 말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나 하나 조심해 공연에 임하겠다”(김재욱)는 각오다.

빽빽히 짜여진 일정을 마치면 2016년의 절반이 지나간다. 이제 막 출발했지만, ‘쇼그맨’은 무대에서 관객과 만나는 동안 끊임없는 변주를 해나갈 생각이다.쇼그맨의 단일공연을 중심으로 노인, 태교, 성인물 등의 유닛 활동을 구상 중이고, 논버벌 퍼포먼스를 할 수 있는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지향점이 있다. “태양의 서커스가 거리에서 시작해 전세계적이 공연이 된 것처럼, 소극장에서 시작한 공연이 거대 콘텐츠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박성호)하는 일이다. “도소매로 시작했으나 명품으로 가고 싶다”(정범균)는 바람이다.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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