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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한인 최대은행 BBCN뱅크 이사진의 물밑 움직임이 긴박해지고 있다.
윌셔은행과 한미은행으로부터 제각각인 통합 제안을 받아 더블 오퍼를 손에 쥔 BBCN 이사회는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는 부러움을 사고 있지만 기실 꼭 그렇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BBCN뱅크 이사들이 처음엔 ‘꽃놀이패’를 들었다고 좋아했지만 날이 갈 수록 폭탄을 손에 쥔 모양새”라고 고개를 젓는다.
13명으로 구성된 BBCN 이사진은 한마디로 ‘분열과 갈등의 전쟁터’나 다름없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지난 5월말 정기주주총회를 계기로 케빈 김 이사장겸 행장과 주요 이사들 간의 사이가 벌어지면서 비롯된 이사진의 내분은 윌셔와 한미의 합병 제안이 경쟁적으로 제시되면서 폭발 직전의 임계상태로 치닫는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주주총회 이전에 케빈 김 행장이 이사장 직위를 내려놓기로 중진 이사들과 합의해놓고도 이를 어기고 미국인 중심의 신규이사진의 지원으로 ‘이사장겸 행장’ 직위를 유지한 데 따른 갈등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꼽힌다.
한인 금융권 사정에 정통한 한 분석가는 “만일 BBCN이사회가 단합돼 있는 상황에서 윌셔,한미 두곳으로부터 통합 제안을 받았다면 샴페인을 마셔가며 유리한 쪽을 골라잡았겠지만 지금처럼 분열된 상황에서는 어떤 선택을 하든 후폭풍이 몰아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라은행과 중앙은행의 통합으로 탄생한 BBCN에서 줄곧 이사진에 몸 담고 있는 모 이사는 “(윌셔와 한미의 제안 중) 어느 쪽을 선택해도 소송에 휘말릴까봐 걱정스럽다”라고 말했다. 과연 BBCN의 합병을 위한 빅딜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까. 세가지 시나리오로 예상해본다. 최한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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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은행과 합병할 경우
케빈 김 행장을 필두로 데이빗 멀론, 데일 주얼스, 윌리엄 루이스, 게리 피터슨 등 비(非) 한인이사 5명은 윌셔은행과 합하는 쪽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중도파로 알려진 C.K. 홍, 스캇 황, 최기호, 그리고 두진호 이사 중 1~2명만 끌어들이면 선택을 놓고 이사진에서 표결에 돌입하면 과반수인 7표를 얻을 수 있다. 이같은 구도는 케빈 김 행장이 통합 은행의 초대행장이 된다는 걸 전제로 한다. 윌셔은행의 최대주주인 고석화 윌셔뱅콥 이사장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지배적인 주주의 위치 못잖게 아들인 윌셔은행 피터 고 CCO(최고크레딧책임자)의 장래 거취다.
케빈 김 행장 입장에서는 고 이사장에게 아들인 피터 고의 차기 행장 승계 등 훗날을 보장해준다면 자신의 거취와 위상이 윌셔은행과의 통합을 통해 완벽하게 마련될 수 있다. 또 남가주 일대를 제외하면 BBCN과 윌셔의 영업지역이 겹치지 않는다는 현실도 윌셔와의 합병을 선호하게 만든다.윌셔는 뉴욕과 뉴저지는 물론 조지아와 앨라배마 그리고 텍사스주 휴스턴과 댈라스 등 BBCN의 네트워크가 모자란 지역에 강한 영업망을 갖고 있으며 윌셔은행은 BBCN이 구축한 시애틀 지역과 시카고 중심의 중부지역에서 약세다.
●한미은행과 합병할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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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김영석, 정진철, 이정현 이사 등 옛 중앙은행 출신 이사들이며 대주주들이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진다.특히 한미은행이 지난달 이례적으로 통합제안을 공개하면서 제시한 내용이 이들의 구미를 한껏 당기고 있다. 평균 주가에 15% 이상의 프리미엄을 얹어주면서 통합 이후 65%의 지분을 BBCN측에 안겨주기 때문이다.무엇보다 한미은행과 합병하면 어느덧 ‘눈엣 가시’같은 존재가 돼버린 케빈 김 행장을 자연스럽게 낙마시킬 수 있는 틈이 생긴다는 점이 옛 중앙출신 이사들에겐 매력적이다. 사실 케빈 김 행장은 이사장직을 겸하면서 행장으로서 실무역량에서 힘에 부치는 모습을 드러내왔다는 게 정설이다. 은행 경력이 전무한 변호사겸 회계사 출신이다보니 70억달러가 넘는 커뮤니티 최대 은행을 이끌기엔 경험과 투자자및 감독국과의 관계 등 여러면에서 역부족이었다는 얘기다. 그가 취임한 이후 1년 6개월여 동안 BBCN뱅크의 실적이나 주가가 뒷걸음질하는 모양새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자신의 역량부족을 메꾸기 위해 꾸린 실무 경영진은 고액연봉을 들인 보람도 없이 파벌싸움을 일삼는 것도 핸디캡이다. 옛 나라은행출신으로서 동부지역에서 건너온 김규성 수석전무와 HSBC출신 박자영 전무의 힘겨루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저런 상황을 수습하는 첫 단추가 정기 주총을 통해 케빈 김 행장의 이사장 직책을 거둬들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 행장의 예상치 못한 ‘변심’으로 중진 이사들이 뒤통수를 맞은 형국이 된 와중에 한미은행으로부터 달콤한 통합제안이 들어온 셈이다.
●제 3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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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N과 윌셔, BBCN과 한미의 합병이 아닌 제 3의 시나리오도 제기되고 있다. 지금 그대로 3대 은행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케빈 김 행장이 경영권도 지키는 방안이다.
이 안이 성사되려면 케빈 김 행장이 한미와의 합병을 지지하거나 적어도 반대는 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 경우 김 행장은 한인이사들을 중심으로 하는 반대파와의 갈등을 무마함과 동시에 명분도 챙길 수 있다. 단, 윌셔와 통합을 지지하는 이사들로부터 힘을 얻고 물밑으로 한미의 오퍼가 적절하지 않음을 증명해서 통합 시도 자체를 무산시켜야 한다.
한미는 합병제안서에서 BBCN 주식 1주당 한미은행 주식 0.7331주로 통합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최근 한미의 주식은 주당 26~28달러 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BBCN은 18~19달러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얼핏 보면 합리적인 제안이다. 하지만 많은 금융 전문가들은 한미의 현재 주가에 엄청난 거품이 끼어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한미 은행의 합리적인 주가를 주당 16달러 선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 증권관계자는 “한미의 주식은 16달러 선이 적당하다는게 금융업계의 의견”이라며 “이 경우 합병을 위해서는 BBCN 1주당 한미 0.7331이 아니라 BBCN 1주당 한미 1.20 선이 되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라고 지적했다.
한인 금융권의 한 유력인사는 “한미의 주가에 거품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BBCN 이사회가 한미와의 합병안을 구체화할 수록 현재의 제안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며 “이 경우 한미가 추가 오퍼를 내기 어렵다고 볼 때 통합시도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라고 예상했다.
무엇보다 행장직을 위협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케빈 김 행장이 한미은행 카드를 잘 활용할 경우 오히려 자리를 지키면서도 이사회도 통합하는 1석 2조의 효과를 누릴 수도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한미은행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결과로 작용한다. 무의미한 2등이 되는 것을 면할 뿐 아니라 라이벌 윌셔은행도 견제하는 기존 목적을 달성하게 되기 때문이다. 최한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