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시환, ‘송곳’처럼 실제로 마트 노동자…“드라마와 같았던 현실”

첫 연기 도전. 박시환(28)은 그림처럼 그 곳에 있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원래 있던 사람처럼.

가수가 됐고, 연기를 하게 됐다.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줘야 했다. 어깨만 스쳐도 버럭 소리를 지르는, 시한폭탄을 들고있는 청년의 얼굴. 박시환은 ‘괴물’을 품은 고요한 호수 같은 사람이다. “성격이 너무 달라 힘들었다”고 한다.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송곳’에서다.

“현우 형, 캐릭터가 너무 안 맞아 힘들어요. 얘가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지 모르겠어요.”(박시환)

‘살고 싶어’ 노래를 했던 박시환은 이제 연기를 함께 하며 활동폭을 한뼘쯤 넓혔다. 가수이자 연기자로 불리게 된 박시환의 가장 큰 꿈은 “이 일을 하며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든든한 나무처럼 곁에 있는 팬들이 “자부심을 갖고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한다.

낯선 드라마 촬영장에서 모든 연기자는 박시환의 스승이었다. 안내상은 존재만으로 배움이었고, 예성은 절실함을 알려줬다. “시환아, 너는 이 캐릭터에게 최고의 변호인이 돼줘야해.”(지현우) “엄마 같은” 지현우에게선 “경험에서 나온 이론과 위로”를 함께 받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편안해졌어요. 물론 완벽할 수는 없었을 거예요. 어설픈 면도 있었을 테고, 제 성격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었겠죠. 이 아이가 왜 이러는지 이해하려고 했을 때 캐릭터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불과 2년 사이 박시환의 삶은 많이 달라졌다. “삶은 달라졌지만 제가 연예인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그냥 계약직. 자기 자리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 중 한 명이죠.”

가수가 된 건 오디션(슈퍼스타KㆍMnet)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그는 볼트를 쥐고 노래했다. 박시환은 그 때까지 항만 정비공이었다. 이적의 노래(‘그 땐 미처 알지 못했지’)로 심사위원 예선에 섰을 때, 시청자는 ‘스타 탄생’을 점쳤다. 시즌5의 준우승자였으나, 최악의 시즌이라는 혹평이 나왔다. 박시환은 하지만 탄탄한 팬덤을 얻었다.

“살고 싶어서”, “행복해지고 싶어서” 노래를 했던 스물여섯 청년은 2년이 흘러 더 많이 얼굴을 알리게 됐다. 그 때부터 함께 해준 고마운 팬들에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현재로서의 보답”이었다.

“박시환이 연기까지 하나, 의외였다”는 말에 “저도요”라고 한다. 박시환은 나이보다 더 차분하고, 보기보다 말주변이 좋다. 조용히 곱씹어내는 말 속엔 그의 모습이 담긴다.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노래 말고 다른 일을 한다는 것에 있어 누구나 갈등을 해볼 것 같아요. 다른 분야에 도전한다는 것이 처음엔 재밌으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제가 가진 고집이 있더라고요. 막상 해보니 괴리감이 왔고요. 노래 작업을 중간 중간 같이 했거든요. 하다 보니 연기는 생각 이상으로 어려웠고요.”

‘일상의 언어’가 아니기에 대사를 전달하는 것이 힘들었고, “화를 내본 적은 살면서 두세 번 정도” 밖에 안 되는 탓에 ‘남동협’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폭풍우가 휘몰아쳐도 박시환은 그저 ‘견디는 사람’이다.

김석윤 감독은 박시환을 캐스팅한 뒤 “연기 배우지 말고, 나한테 리딩하러 오라”고 했다. 박시환은 김 감독만 믿고 따랐다. “욕도 많이 먹었어요.” 처음엔 “너 지금 연기하냐?”는 말도 들었다.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끌어내려는 수장의 눈에 비친 모습이었다. “감독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연기를 잘 하는 사람들은 자기를 쉽게 내려놓는다고요. 노래를 좋아했던 건 감정을 드러낼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학창시절의 전, 소심했고 말이 없는 아이였어요. 연기를 하면서도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드라마 안에서 박시환은 조금씩 성장했다. 남동협의 ‘변호인’이 되자, “화를 내도 풀리지 않는, 달라지지 않는 현실의 답답함”을 함께 고민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냉동식품 탑차에 올랐던 그는 가수가 되기 전까지 많은 일을 했다. 중학교 1학년 땐 첫차를 타고 스케이트장에 가서 500원 짜리 커피도 팔았다. “아버지의 일손이 잘 돌아가야 집안이 편안해진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자영업을 했던 아버지 일을 많이 도와드렸죠. 아르바이트는 집에 짐이 되면 안되니까…그래서 하게 됐죠.” 동네 대형마트에서 일을 한 건 2009년 군 제대 직후였다. 드라마에선 야채청과 파트지만, 박시환은 과자ㆍ라면 파트에서 근무했다. ‘송곳’에 캐스팅되며 연기자로 욕심이 있었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서 리얼리티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일부러 박스도 밀고 다녔죠.”

드라마는 ‘비운의 명작’이었다. 2003년 외국계 대형마트 까르푸 노조의 조직 과정과 파업현장의 이야기를 담은 실화로, 최규석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했다. 박시환에게 한 때는 ‘삶의 터전’이었던 공간에서의 일들은 드라마에서도 재연됐다. “출퇴근 시간이나 열정페이 문제, 드라마에서도 나왔죠. 옷 갈아입는 시간이 따로 있어야 하는 걸 알지 못했고, 5분 이상 늦으면 한 시간을 채워야 수당을 받을 수 있어요. 당연하게 누려야했던 권리를 알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들이 아쉽죠.”

‘송곳’은 지나간 시간이 아닌, 여전한 노동계의 화두를 노골적으로 담았다. 판타지라고는 없다. 승자도 패자도 남지 않은 채로 드라마는 끝이 났다.

“이 드라마를 보고 과장급 중간관리자들이 직원들을 많이 챙겨주는 것이 현실적인 해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일하고 있을 때 이 드라마를 봤다 해도, 그것이 맞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해도, 무섭고 힘들었을 거예요. 누군가 끌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자기 입장을 말할 수 없었을 거예요. 이 드라마가 근로자들이 자기 권리를 찾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죠. 적절한 선에서, 화도 내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면 좋겠어요.”

드라마를 마친 박시환은 최근 두 번째 미니앨범 ‘괴물’을 발매했고, 뮤지컬 ‘총각네 야채가게’로 무대에도 선다. 가수로 시작한 일이 연기로, 노래와 연기를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로 커져갔다. “거름은 열심히 뿌려놨으니 거기서 무슨 싹이 나는지 봐야할 것 같아요.”

여러 가지 모습으로 인정받으면 좋겠다 싶지만, 연기자로의 박시환은 “되도록이면 나와 닮은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다”고 한다.

“저라는 사람의 감정에 치중했을 때 나오는 걸 보고 싶어요. 노래를 좋아했던 것도 감정의 또 다른 표출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연기에서도 그런 걸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그리고 그게 즐거움이, 행복이 됐으면 좋겠어요.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고요. 가수는 제목따라 간다는데, 저도 ‘괴물’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독해지겠다고 다짐하듯 이야기하는 노래예요. 제가 잘 되고, 조금 더 안정된 길을 닦아놔야 가족도 친구도, 팬들도 행복해질 수 있을 테니까요.”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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