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히말라야와 프랑스 몽블랑, 강원도 영월 등에서 촬영을 하면서, 또 카메라 너머로 추위는 물론 여러가지 현지 환경에 적응하느라 고생했을 배우들의 모습이 영화 속에 보였다.
“이렇게 고생할 줄은 몰랐어요. 등산을 안좋아하는 건 아닌데 산에 한 번 가려고 마음먹기가 힘들잖아요. 산에 가도 부침개 먹고 내려오고 하하. 이런 힘든 영화인 줄 알았으면 다시 한 번 생각했을 겁니다.하하.”
낯선 고산 지대에서 위험과 항상 맞닿아 있는 상태서 촬영을 했던 비하인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들어봤다.
“이번에 빨간 피부 덕 좀 봤죠. 분장도 거의 안했어요. 추우면 얼굴이 빨개지는데 저는 원래 피부가 붉은 편이라서요. 쉰 목소리는 산에 올라가면 5분의 1정도 밖에 공기가 없고 영하 30도의 추위가 성대를 다 긁어서 쉬어버려요. 건조하기도 하고요. 제가 3일 정도 소리 지르고 하니까 쉬더라고요. 근데 그 목소리가 괜찮은 것 같아서 후시 녹음 할 때도 3일 정도 미친 듯이 소리 질러서 쉬게 만들었습니다.”
황정민에게 ‘히말라야’는 ‘댄싱퀸’(2012)의 이석훈 감독과 스태프들이 다시 한 번 뭉쳐서 만들어내는 작업이라는 것에 큰 의미가 있었다. 본격 산악영화인만큼 처음에는 의욕도 불태웠단다. 그러나 막상 부딪치면서 많은 애로 사항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댄싱퀸’을 즐겁게 찍었어요. 재미있게 작업했던 사람들과 다시 한 번 만난다는 건 매력있거든요. 또 한번 즐겁게 촬영하자 싶었는데 정말 큰 오산이었어요. 저 말고도 촬영에 임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산악영화를 찍어본 사람도 없고 무지한 상태서 의욕만 넘쳐가지고. 하하. 다음 산악영화가 나올 때 ‘히말라야’가 레퍼런스가 될 수 있도록 찍으려고 했어요. 원래 산에 올라가면 고글, 마스크도 안 벗는데 그러면 대사나 표정이 안보이니까 벗고 하는데, 그 때는 또 얼굴에 눈을 얼마나 뭉쳐야 하나. 이런 세세한 것부터 시작해서 어려운 부분이 많았어요.”
황정민은 촬영장에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먼저 나서서 궂은 일은 도맡아했다. 카메라, 장비, 조명 등을 지고 산에 올라야 했는데 이 때도 배우와 제작진의 경계 없이 함께 했다. 제일 먼저 촬영장에 나와있었고, 힘든 내색도 쉽게 하지 않았다. 그도 인간인지라 처음 올라가보는 높은 산 앞에서 고산병도 있었지만 자신이 솔선수범 해야 후배들이 잘 따라와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유다.
“일부러 엄홍길 대장님처럼 굴었어요. 저는 엄대장이니까요. 이게 보통 촬영도 아니고 누가 나서지 않으면 위험한 큰 사고로 이어질 수가 있어요. 그런데 제가 나몰라라 뒷전에 앉아일 수 없었죠. 스태프 회의에 다 참여하고, 그걸 또 배우에게 전달하고 이번에는 좀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네팔이나 몽블랑에 놀러가는게 아니고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걸 찍어서 최대의 효과를 봐야하니 누가 대장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되죠. 고산병 와도 참고, 제일 먼저 나와있고, 짐 들고 앞장 서서 가고, 참 후배들은 제가 얼마나 싫었을까요?하하.”
“원래는 안그래요. 게임하다가 촬영해야 한다고 하면 가서 연기하고 다시 와서 게임하고.(웃음) 보통 촬영현장에서는 그런데 이번에는 특수한 경우니까요.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운 것도 중압감이 무너지는 느낌에 나도 모르게 엉엉 울게 되더라고요. 좋은 경험이었어요. 인간적으로 많은 공부가 됐습니다.”
황정민은 ‘사생결단’ 이후 9년 만에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추게 된 정우에게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촬영장에서 고산병으로 제일 힘들어 했던 정우. 정우는 자신이 막내인데 촬영장에서 활기차게 지내지 못하고 항상 쳐져 있던 것이 마음에 걸려했다. 황정민이 이런 정우의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정우가 네팔에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고산병이 오면 내려가야 해요. 약이 없어요. 내려가면 괜찮아요. 그런데 그걸 내려갈 수가 없잖아요. 저도 등이나 토닥토닥 해줄 수 밖에 없고요. 정우는 정우대로 미안한 감정이 있었을 겁니다. 정우가 아니어도 누구 하나가 힘들어서 내려가면 남은 사람이 두 배의 일을 해야 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뭉치다보니 자연스럽게 동료애가 생긴 것 같아요.”
황정민은 촬영 전 산악인 엄홍길을 만났지만 깊은 속내를 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촬영을 하면서 엄홍길 대장이 느꼈을 외로움, 중압감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8000m 고산은 죽느냐 사느냐 이 문제와 직결돼 있는데 얼마나 큰일들이 많았겠습니까. 팀들도 잘 이끌어야하고 전쟁터와 똑같죠. 리더로서 많이 외로웠겠구나 싶었어요. 저도 촬영하면서 참 많이 외롭더라고요.”
엄홍길 대장의 故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찾기 위한 고군분투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공개된 바 있다. 이를 영화로 만들었을 땐,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 관객들을 유입할 지 고민하는 것이 숙제다. 황정민도 피해갈 수 없었다.
“우리는 뭔가 새로운 걸 이야기 해줘야 하는게 아닌가 이 화두가 제게는 늘 있었어요. 제일 고민스러운 부분이죠. 다큐멘터리 자체를 이길 수가 없거든요. 그걸 잘 안아야 해요. 철저하게 과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는 그걸 해내야하는게 목표일 수 있겠죠. 늘 정상만 바라보던 사람들이 정상을 바라보지 않고 오로지 시신을 바라보며 발자국을 내딛잖아요. 사람을 보고 가기 때문이죠. 이 사람에 대한 관계에 중점을 뒀습니다.”
황정민은 ‘히말라야’를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 간의 끈끈한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이런 정서를 이해 못하는 외국인들은 이런 무모한 행동을 바보같다고 손가락질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요소다.
“전세계에서 그런 일은 없어요. 냉동된 시체는 표지판인 거죠. 어쩔 수가 없어요. 잘못하면 내가 죽으니까요. 수분이 얼어서 시체가 100k가 넘어요. 칫솔도 무게감을 느껴서 반으로 절단하고 가져가야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는 건 우리나라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사람과 사람과의 정 때문이죠.”
2015년, 황정민에게는 ‘황금기’였다. 쌍천만 배우라는 타이틀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이기에, 그는 자신 앞에 따라오는 수식어에 대해 겸손을 표했지만, ‘국제시장’, ‘베테랑’이 아니었어도 그가 쉬지않고 지금까지 쌓아온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전혀 과하지 않다. 2016년에도 ‘소’처럼 일하는 황정민을 기대한다.
“올해는 제게 잊지 못할 해네요. 분명 나중에 나이먹고 나면 2015년을 기억할 겁니다. 그게 내가 원해서 되는게 아니고 축복받은 거니까요. 큰 선물을 주신 것 같네요. 내년에도 열심히 일 해야죠. ‘검사외전’ 2월에 개봉하고 1월부터 ‘아수라’ 촬영에 들어가요. 내년에는 연극을 한 편 하고 싶어요. 셰익스피어 고전극을 해보려고 생각중입니다.”
유지윤 이슈팀기자 /jiyoon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