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랩] ‘귀향’…위안부 아픈 역사를 국민 가슴에 꽂았다

예산부족 우여곡절끝 14년만에 제작·개봉, 일주일째 박스오피스 1위…
SNS서 “꼭 봐야할 영화” 사회현상으로

관객들의 마음은 비슷했다. 아프고 망설여졌지만, 봐야 할 영화였다. 외면하고 싶지만, 두 눈 똑바로 뜨고 마주해야 할 역사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룬 영화 ‘귀향’(감독 조정래)이 개봉 일주일 째 박스오피스 1위를 이어가고 있다.

2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개봉 첫날부터 박스오피스 1위를 꿰찬 ‘귀향’은 1일까지 누적 관객 170만5327명을 모았다. 3ㆍ1절인 1일 하루에만 42만여 명이 ‘귀향’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박스오피스 점유율은 37.0%로, 개봉 첫날 23.2%를 기록하고부터 이레째 매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귀향’을 상영하는 스크린 수도 개봉 이래 가파르게 늘었다. 개봉 첫날 512개이던 스크린은 지난 주말을 맞아 769개로 급격히 늘어났고, 1일 876개까지 확대됐다. 


‘귀향’은 전쟁 중이던 1943년을 배경으로 열네 살이던 정민(강하나)과 영희(서미지)가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 손에 이끌려 가족의 품을 떠나 차가운 전장 한가운데 버려지면서 끔찍한 고통을 겪는 이야기를 담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이 영화의 바탕이다.

예산 부족으로 제작이 무산될 위기까지 처했던 ‘귀향’의 상영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드라마였다.

조정래 감독은 2002년 ‘나눔의 집’에서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88)가 미술 치료 중에 그린 그림 ‘태워지는 처녀들’을 보고 이 작품을 구상했다. 하지만 수익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10년 넘게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결국 영화 제작비의 절반 이상인 12억 원이 7만5000여 명의 국내외 후원자들의 크라우드 펀딩으로 조성됐다.

대형 신인이나 스타 배우의 출연도 없다. 주연을 맡은 재일교포 4세 연극배우인 강하나를 비롯해 최리, 서미지 등은 모두 낯선 얼굴들이다. 원로배우인 손숙과 정인기, 오지혜 등은 재능기부로 힘을 실었다. 한 고등학교 교사는 강남 메가박스 5개관을 통째로 대관, 일반인 무료관람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꼭 봐야할 영화다’, ‘우리가 봐줘야 한다’는 젊은 세대들의 움직임이 SNS를 통해 확산됐다. 가족 단위는 물론 학교와 학원·시민단체 등 단체관람도 이어지고 있다. 3ㆍ1절 전후로는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잊지 말자며 평소보다 더 많은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

14년 간 빛을 보지 못했던 영화 ‘귀향’. 시민들의 힘으로 개봉되는 조용한 기적을 일으키더니, 이젠 아무도 예상못한 흥행 질주로 이어지며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세진 기자/jinlee@heraldcorp.com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