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산업은 콘텐츠 산업의 기초이고 뿌리라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원천스토리를 발굴해 완성만 시켜놓는다고 되는 건 아니다. 스토리의 유통 플랫폼을 구축해 이야기를 국내는 물론 해외로 진출시켜야 융, 복합 콘텐츠가 만들어지고스토리산업을 키울 수 있다.
‘태후’는 이야기 산업화 과정의 좋은 모델을 제시한 셈이다. ‘태후’(원작은 김원석 작가의 ‘국경 없는 의사회’)는 2011년 대한민국스토리공모대전 우수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하지만 드라마화가 결정되기까지는 우리나라 최고의 흥행작가인 김은숙 작가가 붙고도 시간이 제법 걸렸다.
좋은 스토리가 나와도 이를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투자를 받고 제작사가 정해져야 한다. 물론 스토리를 드라마나 영화 등으로 만들기 좋게 각색의 과정도 거쳐야 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스토리창작기반팀은 스토리를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해 신인, 기성작가는 물론이고 법인까지 계약을 체결한다. 그렇게 해서 좋은 스토리가 나오면 국내외에서 투자 설명회이자 직거래 장터라 할 수 있는 ‘K스토리 피칭’을 진행해 투자자와 제작자를 연결시켜주는 에이전시 역할까지 맡는다.
‘태후’는 김원석 작가와 김 작가와 계약이 체결돼 있던 (주)바른손이 함께 출품한 작품이다. 우수상으로 선정된 후 김원석 작가는 콘텐츠진흥원이 마련한 창작센터에 입주해 작품의 완성화를 위해 1년간 전문가 컨설팅 및 1대 1 멘토링 지원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김은숙 작가와 연결돼 남녀의 로맨스가 추가됐다.
‘태후’는 주연배우가 결정되기도 전에 중국과 계약을 체결해 드라마 사상 최초로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 방영되고 있지만, 소재와 내용이 할리웃이 좋아할만한 콘텐츠다. 의학과 재난, 로맨스, 휴머니즘이 잘 섞여있다. 지진과 전염병 등이 발생하는 전쟁과 재난 상황에서의 로맨스는 더욱 극적으로 다뤄지고, 신념과 기적을 낳기도 한다.
김은숙 작가의 가세로 ‘태후‘는 분쟁지역에서의 인재와 자연재해, 인류애와 로맨스 등 서로 상충된 설정들이 입체적으로 물려 돌아간다. 실제 콘텐츠진흥원은 지난해 11월 LA에서 넷플릭스 등 콘텐츠 투자자와 제작유통사들을 상대로 K스토리 설명회(K스토리 in america)를 가져 좋은 반응을 얻었다.
130억의 제작비가 투입돼 사전제작된 ‘태후’는 중국 동영상 플랫폼 ‘아이치이(iqiyi)’에 회당 25만달러(약 3억원)에 판권이 팔렸다. 이는 온라인 동시방영권에 국한된다. 중국에서 지상파나 위성채널에서 방송권을 살 수도 있다. 영화 버전, 뮤지컬 버전 판권도 남아있다. 중국에서 리메이크해서 드라마나 영화를 만들 가능성도 높아 리메이크 판권도 높게 책정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총 19개국에 판권이 팔렸으며 앞으로도 추가 판권 판매가 기대된다. ‘태후‘가 ‘신(新)한류 드라마’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셈이다.
중국에서 K팝 한류는 최근들어 공연 등에서 소강국면 내지는 침체의 초기 증상을 보이고 있다. 중국 공연기획자들이 한국 가수들의 공연에 별다른 메리트를 못느끼고 있다.
하지만 ‘태후’의 OST를 부른 가수들만은 예외다. ‘별에서 온 그대’ OST를 통해 이미 중국에 진출했던 가수 린은 물론이고 윤미래, 다비치, 거미, 케이윌 등 ‘태후’ 주제곡을 부른 가수들은 벌써부터 중국 공연업자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OST 한방으로 중국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는 사례가 될 것이다.
콘텐츠진흥원은 오는 31일 베이징에서 ‘K스토리 in china’를 개최하는데, 참가 신정자가 너무 많아 원래 예정된 장소인 한국문화원에서 메리어트 호텔로 옮겼다. 여기에는 아이치이는 물론 요쿠투도우, 텐센트, 알리바바 등 중국 콘텐츠 관계자들이 대거 참가를 신청한 상태다. 이 모든 것이 ‘태후’가 바꾼 풍속도다.
하지만 아직 스토리 산업의 갈 길은 멀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이야기 산업지원금이 50억원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이야기 강국이 되어야 한다는 건 말로서 이뤄지는 게 아니다.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우수한 원천스토리와 창작자를 발굴하여 작품의 완성, 원소스 멀티 유즈의 사업화, 스토리의 전(全) 단계 지원을 위한 작업에 좀 더 많은 관심이 모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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