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로 돌아온 그를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매 영화마다 연기 칭찬을 갱신하는 비결이 뭘까. 가장 처음 주어진 질문에 김민희는 수줍게 말했다.
“열심히 해요. 그런데 전 똑같은 사람이에요. 무엇인가 변화가 있었느냐고요? 아니에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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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에 출연한 배우 김민희를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연기하면서 캐릭터에 의외성을 덧붙이는 것이 재밌다”라고 말했다. 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
그는 1997년 광고모델로 데뷔하고 인기 절정의 TV 드라마 ’학교’ 시즌2(1999)에서 연기를 시작했다. 통통 튀는 생기발랄함으로 젊음의 아이콘으로 일약 부상했다. 침체기도 있었다. 첫 주연을 맡은 드라마 ‘순수의 시대’(2002)로 불거진 ‘발연기’ 논란. 김민희는 그러나 제풀에 꺾여 쓰러지지 않았다.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2008)가 터닝포인트였다. 이 영화로 그는 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때부터 ‘여배우들’(2009), ‘화차’(2012), ‘연애의 온도’(2012), ‘우는 남자’(2014),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2015) 에서 ‘아가씨’까지, 매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연기로 칭찬받는 ‘수위’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당연히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좋은 시나리오를 만난 게 운이 컸던 것 같아요. ‘작품을 잘 만났다’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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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
그는 ‘운’이라고 했지만 김민희의 필모그래피에는 무언가 계획된 듯한 영리함이 엿보인다. ‘여배우들’에서의 일상적인 연기, ‘화차’에서의 비밀스러움을 풍기도록 만들어진 캐릭터, ‘연애의 온도’에서 다시 일상적인 연기로 돌아왔다가, ‘우는 남자’에서도 캐릭터 이미지를 만들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에서 ‘아가씨’로의 선택도 마찬가지다.
“두 가지 연기방식이 전 다 좋아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 같아요. 매번 새로운 연기를 하는 게 재밌죠. 반복하는 게 지루할 수도 있잖아요. 두려움은 전혀 없어요. 그 때 그 때 좋은 시나리오를 만난 게 운이죠.” 다시 ‘운’이란다.
그에게 이번 영화 ‘아가씨’는 또 한 번의 ‘운’이자 ‘도전’이었다. 도전을 결정하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일주일 정도 만에 하겠다고 했어요. 시나리오 읽었을 때 너무 재밌었고. 다른 배우가 이걸 하는 걸 상상하면 제가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선택했어요. 시나리오 자체가 굉장히 박찬욱 감독님 스타일이었던 것 같고. 읽으면서도 어떻게 그리실지 상상이 되더라고요.”
처음으로 호흡을 맞춰 본 박찬욱 감독에 대한 그의 인상은 “크랭크인(첫촬영) 하시고는 ‘쉬신다’는 느낌”. “프리 과정에서 완벽하게 준비하고 촬영을 들어가시기 때문인 것 같다”라며 “생각이 정말 뚜렷하시고 확고하시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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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에 출연한 배우 김민희를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연기하면서 캐릭터에 의외성을 덧붙이는 것이 재밌다”라고 말했다. 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
김민희는 연기하면서 “의외성을 덧붙이는 게 재미있다”고 말한다. 캐릭터의 틀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맞춰서 연기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캐릭터의 이미지는 만들어져 있는 게 이미 많잖아요. 의상이나 헤어 같은 것들요. 그걸 받고 내 안에서 느끼는 것이 있고요. 몸짓, 행동, 말투 등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조금씩 다르게 연기하게 되죠. 인물의 의외성도 덧붙여지고 하니 새로운 게 생기는 것 같아요. 시나리오로 표현된 것과 그 배우가 가진 개성이 혼합돼서 관객들에게 보여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20년 가까이 되는 연기생활 가운데 ‘아가씨’는 김민희에게 첫 시대극이었고 베드신에도 도전한 작품이었다. 대중들은 그가 모델 출신이라 화려한 역할들을 한 번쯤은 해 보았을 거라고 지레짐작하지만, 아니다. “그동안 했던 작품들에서 화려한 의상이나 머리스타일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재밌었어요.” 몸에 딱 붙는 수십 벌의 드레스, 세 시간이나 걸리는 분장도 그에게 잘 어울린다. 화보를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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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에 출연한 배우 김민희를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연기하면서 캐릭터에 의외성을 덧붙이는 것이 재밌다”라고 말했다. 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
베드신이라는 것은 마음의 부담이 컸지만, 그 베드신 상대 배우가 여성이라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편안했어요. 같은 여자여서가 아니고 현장에서 김태리 양이랑 촬영한 게 편했다고 할까요. 서로의 마음도 잘 아니까요.”
김민희는 스스로 “굉장히 밝아졌어요”라고 말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편안해지는 건 확실한 것 같아요. 전 20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요. 나이 드는 것에 대해 걱정이 없고 오히려 기쁘게 받아들여져요.”
‘관록’이 붙은 배우 김민희의 앞날이 궁금해진다.
jin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