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전자음악 페어 ‘암페어(Amfari)’ in 탈영역 우정국=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탈영역 우정국에서 한국 일렉트로닉 뮤직의 과거와 현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국내 유일무이의 행사가 열렸다. 토종 한국 일렉트로닉 뮤직 레이블과 아티스트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박람회인 ‘암페어(Amfair)’다. 2013년 첫 포문을 열어 4회째를 맞았다. 전류를 측정하는 단위 암페어(Ampere)와 박람회를 뜻하는 페어(Fair)를 더한 말로 전자 음악 라이브 공연과 마켓을 결합한 전자 음악 축제다. 일렉트로닉 뮤직 신의 1세대부터 현재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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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기획’ 제공] |
이날 행사에는 테크노 레이블 ‘모어 덴 레스(More than less)’, 허니배저레코드 등 일렉트로닉 뮤직 레이블부터 골드문트, 새벽, 타카스시 등 아티스트, 그리고 일렉트로닉 뮤직의 역사를 다룬 책인 ‘백 투더 하우스(Back to the House)’의 저자 이대화씨가 참여했다. 오후 3시부터 밤 10시까지 진행됐지만 개장부터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한 손엔 맥주, 다른 한 손엔 핫도그가 들려있었다. 2층 옥상 20개의 부스에는 대형 음악 사이트에서는 들을 수 없는 음반이 판매되고 있었다. 오직 이날 페어에서만 살 수 있는 ‘유니크’한 앨범들이었다.
행사를 주최한 일렉트로닉 뮤직 레이블 ‘영기획’ 하박국 대표는 ‘암페어’ 기획 취지를 “페어(Fair)”의 관점으로 설명했다. “페어란 형태는 그냥 공연장이나 파티에서는 할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요.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서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공통의 관심분야를 가진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이면 거기에서 생기는 에너지나 시너지가 있거든요.” 공연과 달리 페어는 “편향적인 관객인 몰릴 수 밖에 없는 공연과 달리 더 다양한 음악 팬 층을 포섭할 수 있다”고 말한다.
▶ ‘백 투더 하우스’ 저자 이대화, “온전히 한국의 전자음악 보여주는 행사”=
[사진=‘영기획’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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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화씨는 한국에 일렉트로닉 뮤직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 건 90년대 말과 최근엔 2010년 이었다고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 90년대 말 열풍이 있었는데 그 때 한국에서도 클럽신이 홍대에 퍼지면서 인기가 있었어요. 그때는 테크노 일렉트로닉 댄스로 자리잡았는데 정점을 찍지는 못했죠. 이후에 2010년에 대형 클럽 붐이 일면서 ‘옥타곤’ 등을 중심으로 EDM이 확산된 거에요. UMF라는 페스티벌도 이에 맞춰 규모가 커지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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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10년부터 붐이 일었던 대형 클럽이나 대형 페스티벌에서의 EDM과 ‘암페어’에서만 볼 수 있는 EDM은 분명 다르다고 말한다. ‘암페어’는 온전히 “한국의 전자음악을 보여주는 행사”라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의 EDM 시장은 “클럽에서는 춤을 추기 위한 EDM을 틀고, UMF와 같은 페스티벌은 해드라이너로 아직 유럽이나 미국 출신의 DJ가 해드라이너예요. 한국에서 EDM이 대세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유럽과 미국에 집중돼 있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한다. “‘암페어’는 언더그라운드의 일렉트로닉 뮤직을 볼 수 있는 장이자 한국 전자음악을 보여주는 행사라고 생각해요. 특히 부스를 통해서 음악가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의 규모와 동향을 알 수 있어 더 좋은 행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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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일렉트로닉 뮤직 아티스트의 쇼케이스, 대형 페스티벌과는 또 다른 느낌= 1층에서는 만원 입장료로 12팀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쇼케이스가 한창이었다. 제각기 색깔이 뚜렷한 무대였다. 흔히 알고 있는 EDM의 댄스 음악과는 사실 거리가 멀었다. 전자음악이라는 큰 틀 안에서 다양한 장르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7시 께 공연에 나선 새벽은 참가자들 중 감미로운 발라드 풍 전자음악을 선보인 아티스트였다. 새벽은 “EDM은 춤 추기 위한 음악이지만 저는 감상을 위한 음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감미로운 음색과 가사가 전자음악의 자극은 줄이고 편안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가장 분위기가 뜨거웠던 건 오후 8시 께 타카스시의 무대였다. 날이 막 저물기 시작했을 무렵 타이밍도 딱이었다. 30여명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리듬에 몸을 맡겼다. 가사 하나 없는 곡이지만 레코드판을 돌리는 손놀림과 그 안에서 나오는 비트가 공간을 가득 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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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Local) 행사’지만 ‘성공적’= 이날 행사에서 공식 상품인 에코백 100장은 완판 됐고 이대화씨의 책 ‘백 투더 하우스(Back to the House)’도 완판이었다. 20개 부스의 앨범 판매도 대형 레코드 점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성과를 올렸다. 이대화씨는 “일렉트로닉 신의 중요한 얼굴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만으로도 굉장히 의미 있는 행사”라며 “구매 의지가 높은 전자음악 메니아들이 많이 방문했고 실제 판매 실적으로까지 이어졌다. 시장으로서의 가능성을 확대해준 근래 보기 드문 행사”라고 말했다. 허니배저 레코드 김준수 대표도 “매해 암페어를 통해 같은 음악을 만들고 즐기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어서 좋고,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영기획’에게 항상 감사하다”며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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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기획’ 제공] |
▶ ‘영기획’ 하박국 대표, ”일렉트로닉 뮤직의 현재, 계속 기록해 나갈것“= 하 대표가 가장 처음으로 일렉트로닉 뮤직 페어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사실 “기록”이었다. ‘페어’로서의 취지도 있지만 일렉트로닉 뮤직신을 기록하고자 했다. “90년대 말에도 한국 일렉트로닉 음악 신이 있었는데 기록이 되지 않아서 기억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역사가 되지 못했거든요. 아직 한국 언더그라운드 일렉트로닉 신이 나아갈 길이 먼데 기록을 해야 거기서부터 좌표를 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 대표는 ‘암페어’를 통해 참여한 음악가들의 인터뷰와 쇼케이스를 모두 아카이브로 저장해 기록할 계획이다. “기록을 해야 역사가 되니까요. 정말 아무것도 없는 데서 ‘영기획’을 시작했고 일렉트로닉 뮤직 시장을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많이 하고 있어요.”
하 대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요즘 EDM이 대세라고 하지만 언더그라운드에서 보면 아직 잘 모르겠어요. ‘암페어’도 로컬(Local)행사여서 아직 큰 에너지를 크게 내고 있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는 소박한 바램을 드러냈다. “그냥 내년에도 무탈하게 치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매년 떨어지고 있는 정부 지원도 받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고요. 매해 언더그라운드 일렉트로닉 음악 신을 쌓아나갈 생각입니다.”
“시대를 가장 앞서가는 음악이죠.” 허주연(33·여)씨가 ‘암페어’를 찾은 이유다. “처음 들을 때는 좀 불편할 수도 있는 가장 실험적이고 특이한 음색들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 게 일렉트로닉 뮤직이라고 생각한다”며 “‘암페어’는 알고만 있었고 오늘 처음 왔는데 쇼케이스에서 그동안 잘 몰랐던 아티스트들을 볼 수 있었고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 했는데 여기 와서 같은 음악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10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지만 특유의 전자음악 사운드와 비트의 여운은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