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의 아픔, 이렇게까지 공감할줄은…”

영화 ‘덕혜옹주’ 주연 손예진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役 열연
같은 여자로서 동병상련 느껴
시사회에선 펑펑 울었죠"

다른 영화들과는 달랐다. ‘덕혜옹주’가 되어야 하는 배우의 마음가짐이. 대한제국 시기, 지금의 ‘아이돌 스타’ 같았던 덕혜옹주에서부터, 시대의 풍파를 못 이기고 비극적인 삶을 살다가 의지의 끈을 놓쳐버린 노년의 덕혜옹주까지. 덕혜옹주는 당시 민중들의 ‘등대’가 되어주지도 못했고,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할 수도 없었다. 영화 말미 덕혜옹주는 말한다. “희망이 되어주지 못했다”고.

“이렇게까지 공감할 줄은 몰랐죠. 실제로 비극적으로 살다 간 사람의 아픔을요. 너무 아프게 다가오다 보니…, 연민의 감정이 컸던 것 같아요.” 

실존인물을 연기한 것은 처음이었다는 배우 손예진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라는 타이틀에서 압박감을 느꼈지만, 연기를 하면서 같은 여자로서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손예진(34)에게 ‘덕혜옹주’는 “잘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잘해야만 하는 영화”였다. ‘덕혜옹주’ 개봉을 앞둔 그를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실존 인물을 연기한 것은 처음이었다. 데뷔 때부터 대체로 청순하거나 때로는 여우 같은 매력의 여성들을, 최근엔 약간은 뒤틀린 모성애를 가진 엄마(‘비밀은 없다’)를 연기했다. 그래서인지 처음 “사진 속에 존재하는 실재 인물”을 연기한 부담이 컸다.

“역사적인 인물이 가진 진실성이라는 게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역할을 할 때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연기를 할 수 있었다면, 덕혜옹주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고종황제의 사랑받았던 딸’이라는 타이틀에서 오는 압박과 무게가 대단히 크더라고요. 연기할 때 제약이 생길 것 같다는 두려움도 생겼죠.”그는 “거창하기 시작하니까 끝이 없더라”라며 “오만 책임감이 생기고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고 부담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해법은 하나였다. “그냥 한 여자로 생각하자고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영화‘ 덕혜옹주’의 한장면.

“너무 영화보다 영화같이 살다 갔잖아요. 같은 여자로서 짠함, 동병상련, 아픔…. ‘나라면 이럴 거야’가 아니라 ‘덕혜옹주가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그게 제 이야기의 자세였던 것 같아요.”

그는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 후 펑펑 눈물을 흘렸다.

“내 영화를 객관적으로 보는 편”이라는 그이지만 ‘덕혜옹주’의 감정에 깊숙이 빠졌던 감정이 떠올라서다.

“촬영이 끝날 땐 시원했어요. 빠져나오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영화를 보니까 오히려 울컥울컥 하더라고요. 배우가 절대로 자기 영화를 보면서 울 수가 없어요. 내 연기 어땠지, 편집이 이렇게 됐구나, 하면서 보거든요. 그런데 ‘덕혜옹주’는 그냥 다른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어요.”

‘덕혜옹주’는 일제강점기와 해방이라는 시기를 다룬 최근의 영화 중 드물게 한 인물에만 깊게 초점을 좁힌 작품이다. 지난해 천만 관객이 본 영화 ‘암살’도, 올해 초 색색의 아름다운 화면을 보여줬던 ‘해어화’도, 한 인물보다는 여러 캐릭터, 소재가 두드러졌던 영화들이었다. 손예진은 “그 점으로 영화가 관객들한테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라고 했다.

“우선 한 여자의 일대기에 관한 영화가 거의 없어요. 레퍼런스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부터 열까지 고민이 많았죠. 덕혜옹주가 대단한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그냥 한 여인이 이렇게 살다 갔다는 것, 그 시대를 어떻게든 오롯이 이겨냈다는 것도 너무 멋진 일이에요. 그걸 담고 싶었죠,”

영화를 연출한 허진호 감독과는 ‘외출’(2005) 이후 두 번째 작업이었다. 허 감독은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봄날은 간다’(2001) 등 한국 멜로의 클래식을 만든 거장. 최근 10여년 동안은 주로 중국에서 연출 활동을 활발히 이어나갔다.

“허진호 감독님이 역사속 인물을 영화화한다는 소식이 정말 새롭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말 대사 없고, 정서로 이야기를 전하는 분이, 정해진 틀의 시대극을 한다니. 누가 덕혜옹주가 될까 관심이 많았는데 시나리오를 주시더라고요. 작업 스타일이 잘 맞아서 좋았어요.”

‘덕혜옹주’는 오는 3일 여름 성수기 극장가에 개봉한다. ‘부산행’, ‘인천상륙작전’ 이후 세 번째로 등판하는 한국 영화다. “올여름 볼 영화가 많다”는 관계자들의 훈훈한 평에 ‘덕혜옹주’도 가담했다. 손예진은 지난 2014년 여름 ‘해적’으로 올해와 비슷한 ‘흥행대전’을 겪어본 적이 있다.

“그게 뭐,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다른 영화에 비해서 ‘해적’이 좀 약하다는 평이 많았어요. 일단 ‘명량’이 너무 잘됐지만 그래도 ‘해적’도 잘됐거든요. 영화를 잘 만들고 좋으면 관객들이 봐 주시는 것 같아요. 이번 영화는 많은 분이 보러와 주시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감이 있어요.”

이세진 기자/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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