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 EIDF’ 심사위원장, “심사기준은 ‘무엇’보다 ‘어떻게’”
[헤럴드경제=이은지 기자] “제 영화를 가지고 유수의 영화제에 보여주러 다닐 때 군중 속에 혼자가 된 기분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 영화제는 친밀한 경험이고, 좀 더 서로에 대해서 또 작품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같습니다.”
지난 23일 서울 광화문의 한 호텔에서 ‘2016 EIDF(EBS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EBS International Documentary Festival)’의 심사위원장을 맞은 트린 T. 민하(TRINH T. Minh-Ha)를 만났다.
[사진=EBS 제공] |
트린 T. 민하와 EIDF와의 인연은 1회 때부터였다. 2004년 제 1회 EIDF에서 심사위원장을 역임, 올해 한 번 더 경쟁 부문 심사를 맡게 됐다.
트린 T. 민하는 영화감독이자 작가, 작곡가로 캘리포니아주립 버클리대학교 수사학ㆍ여성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베트남 잊기’(2015), ‘밤의 여로’(2004), ‘4차원’(2001), ‘사랑의 여로’(1996), ‘그녀의 이름은 베트남’(1989) 등 많은 장편 영화를 만들었다. 칸 MIPDOC 선구자 상(2006), 여성예술위원회 공로상(2012), 자그레브 Subversive 영화제 공로상(2014) 등의 상을 받았다.
심사위원이기 전에 감독인 트린 T. 민하는 심사 기준으로 “‘무엇’보다 ‘어떻게’”를 꼽았다. “다큐는 진실을 보여주는 창”이라며 “그래서 반대로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고, 잘못된 내용으로 조작하고 세뇌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요즘 언론 보도를 봐도 한쪽 입장에서 특정 프레임만 강조하고 그 이면의 큰 시스템은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떠한 시스템 안에서 두 명의 희생자(Victim)가 나올 수 있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두고 큰 시스템 안에서 창조적으로 주제를 다루는 게 이번 영화를 선정하는 될 것입니다.”
[사진=EBS 제공] |
올해 심사위원장을 맡았지만,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월드 쇼케이스’ 부문에 작품을 올리기도 했다. ‘베트남 잊기’라는 작품이다. ‘베트남 잊기’는 베트남전 종전 40주년을 맞아 국제적인 상처를 기억하고 또 어루만진다. ‘그녀의 이름은 베트남’에 이어 다시 베트남의 이야기를 선택했다.
“베트남전을 두고도 종전에 관한 의미를 서로 이해관계에 따라 다르게 해석합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어쨌든 전쟁은 끝났다는 거죠. 그 뒤를 살게 되는 생존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번 작품에는 전쟁을 통해 본 물과 땅에 관한 철학도 함께 담겨 있다. “최근 저는 물과 땅에 대한 담론에 집중했습니다. 베트남전이 땅에 관한 전쟁이었다면 최근 남중국해 분쟁 등 물로 담론이 넘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은 중간을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라 같이 흘러가고 공유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베트남의 역사를 보여주는 데 있어서 물을 통해 현재로 이어지는 새로움, 견고한 대지가 보여주는 옛것에 대해 말하고자 했습니다.”
트린 T. 민하 감독은 베트남계 감독으로, 그동안 베트남의 현실과 베트남계 이주민 여성, 디아스포라(팔레스타인을 떠나 흩어져 사는 유대인) 등을 필름에 담아왔다.
“서구나 유럽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다른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다큐멘터리는 진실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저는 이러한 포지션에 불만인 입장입니다. 청자와 화자 모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엄마, 내 친구 이야기를 하는 게 제 영화입니다.” 여성과 제3세계의 이야기를 주로 다룬 데에는 그녀만의 철학이 숨어 있었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수많은 장치를 통해서 현실에 대한 기록이 더 쉬워졌고 무한대로 재생산할 수 있어졌습니다. 하지만, 기록이 쉬워진 만큼 더 어려워진 건 정리하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건 현실 자체의 캡처(Capture)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다큐멘터리의 정의는 현실에 대한 창조적인 작업(Treatment)입니다. 단순히 시각화되는 것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시각화된 것 이외에 보이지 않는 것에서 맥락을 볼 때 진짜 현실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