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우리 사회의 비리, 적폐가 권력과 연관돼 어떻게 이뤄지고,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관해 우리 상황에 딱 맞는 해법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정의감에 불타는 검사가 비리를 일망타진한다고 해서 통쾌하지 않음은 누구나 잘 알고있다.
배두나(왼쪽부터), 유재명, 조승우 |
수사 장르물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약간의 ‘판타지 당의정’을 집어넣지만, ‘비밀의 숲’은 대한민국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 극성도 잘 살린 수작이다.
신인인 이수연 작가는 장르물의 필수조건인 취재가 잘 돼 있어 이론적 논리가 아닌, 상황적 논리를 잘 구축해 현실감과 공감대를 더해나갔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뇌수술로 감정이 없어 정의감을 내세우지 않아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은 채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객관적으로 수사할 수 있는 황시목 검사(조승우)처럼 살 것인가? 적당히 비리와 타협하는 서동재 검사(이준혁)처럼 살 것인가를 우리는 생각하게 된다.
이수연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옳은 길의 반대말은 나쁜 길이 아닌 쉬운 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권력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나쁜 길로 접어들어 악과 손잡는 게 아니라, 쉬운 길인 ‘밥 한끼’에서 시작해 ‘청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환기시킨 말이다. 이는 이번 드라마 전반에 녹아있다.
그 점에서 결국 ‘괴물’이 된 전 검사장인 이창준 청와대 수석(유재명)이라는 인물은 좀 더 곱씹어봐야 할 캐릭터다. 수사장르물에서 이창춘 같은 캐릭터는 이전에 전체적으로 보면 유사한 유형이 없지는 않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완전히 새로운 인물이다.
‘비밀의 숲’은 박무성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황시목 검사와 용산경찰서 한여진 형사(배두나)팀이 검찰 스폰서에 얽힌 비리를 파고드는 과정에서 이창준을 만나게 된다. 어쩌다 불의와 타협하면서 비리를 저지르게 된 이창춘은 이 거대한 불의 시스템을 온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이를 완벽하게 수사할 수 있는 적임자로 황시목을 특검으로 임명하는 등 정교하게 설계한다. 자기 나름대로 속죄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이창준의 대사는 중요하다.
“뿌리쳤어야 했는데. 하청 한 번만 받게 해달라고 매달리는 박사장을 내쳤어야 했는데.”
“사업 일으키려고 애쓰는 사람 굳이 박대할 이유가 없었어. 한조물류는 계열사 중에 가장 주목받지 못한 데였으니까. 소개시켜줘도 큰 여파가 없을 거라 생각했지.”
“(불법증여에 이용될 회사란 걸 몰랐냐는 질문에) 몰랐어. 주목 못 받은 게 아니라 주목 안 받도록 작업 중이었단 걸. 후회돼, 그 딱 한 가지가, 단 한 번의 판단착오가.”
이창준은 자신을 부패의 세계로 끌어들인 장인인 한조 회장 이윤범(이경영), 업자 박무성, 그로 인한 정경유착 시스템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를 고민했을 것이다.
‘비밀의 숲’은 황시목 검사에게 검찰 스폰서 살인사건을 수사해 비리와 적폐를 드러내게 했지만, 비리에 가담한 이창춘의 속죄 행보의 ‘빅 픽쳐’를 보여준 것은 이 드라마만의 묘미였다.
수십억원을 탈세한 이윤범이 검찰에 불려가며 “우리가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무너져”라고 말한 것이나, 한여진이 “되니까 하는 거라고. 눈 감아 주고 침묵하니까 부정을 저지르는 거라고”라고 한 말 모두 곱씹어볼만한 대사다.
황시목 검사와 한여진 형사 수사팀은 부패의 썩은 뿌리를 완전히 뽑아내진 못했으나, 또 한조 이윤범 회장이 조만간 특별사면으로 풀려나가겠지만, 이 정도의 치밀한 수사만으로도 칭찬해줄만하며, 미완의 수사를 해결해줄 시즌2를 기약하게 했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