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서 한·슬픔이 응어리진 소녀 역
‘군함도’서 당당하게 맞서는 위안부 등
예사롭지 않은 역할 강렬한 인상
정신적 멘토 박찬욱 감독 영향 받아
배우이자 가수인 이정현(37)이 맡는 영화 배역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다. 1996년 영화 ‘꽃잎’에서 슬픔과 한이 내면 속에 깊이 응어리진 채 남아있는 소녀를 연기한 게 워낙 강렬하게 남아있다. 최근 영화 ‘군함도’에서도 위안부로 일본 강제징용소로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는 강인한 조선 여인 오말년을 맡았다. 그 이전 영화 ‘명량’에서 맡은 예사롭지 않은 정씨 여인 역도 짧지만 강렬하게 남아있다.
“‘꽃잎’은 나를 있게해준 소중한 작품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후 왜 연기를 안했냐고 물어보신다.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애매했다. 시나리오가 안들어왔다. 90년대말과 2000년대 초반 테크노가 유행해 이 트렌드를 타고 가수를 했다.”
이정현은 현재의 연기에 충실할 뿐 가수를 은퇴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간혹 공연을 하기도 한다. “나는 현장에서 음악이 앖으면 못산다”고 할 정도다.
하지만 현재 이정현의 머리속을 지배하는 것은 연기다. 연기 공백기가 길어졌음에도 영화를 계속 하게 된 것은 박찬욱 감독의 힘이 컸다. 이정현이 출연한 박찬욱·박찬경 감독의 ‘파란만장’이 2011년 베를린 영화제 단편 경쟁부문 황금곰상을 받으면서 더욱 자신감이 생겼다.
“시나리오가 안들어올 때 박찬욱 감독님이 나에게 연기를 해보라고 했다. ‘파란만장’으로 상도 받고, 범죄소년(2012년)으로 해외에서 인정도 받아 ‘명량’에도 출연하게 됐다.”
‘명량’(2014년)과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2015년)도 박찬욱 감독이 추천해 출연하게 됐고, ‘군함도’ 출연 결정은 유승완 감독이 했지만 말년 역을 추천한 사람은 박찬욱이다. 박 감독은 이정현 뮤직비디오 연출을 한 적도 있다.
“박찬욱 감독님을 안 만났으면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제가 결정 장애가 올때 항상 상의하는 분이고 항상 현명한 조언을 해주시는 정신적 멘토다. 박찬욱 감독님 부부랑 아트하우스에서 영화도 같이 본다. 제게는 영화적으로 자극을 주신다.”
배우이자 가수인 이정현이 맡는 영화 배역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군함도’ 이후 로맨스도 잘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위 사진은 위안부 역할을 맡았던 영화 군함도 스틸컷. |
이정현은 위안부 피해자 역할을 처음 제의 받았을때 “너무 좋았다”고 했다. 무조건 당하기만 하는 여성이 아니라 당당하게 맞서고 시종 슬퍼하기보다는 담담한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총질까지 해 통쾌했다. 나는 욕을 찰지게 하는 위안부 말년을 원더우먼같은 캐릭터로 분석했다.”
이정현은 “‘군함도’는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말년이를 팔아넘긴 게 조선인인데. 이런 사실을 건드려준 게 좋았고, 유곽에서 칠성(소지섭)과 대사할 때 울 뻔 했다”고 했다. 이정현은 책과 다큐멘터리를 통해 일제 강점기 역사와 위안부의 아픈 역사를 섭렵했다. 이정현은 “위안부 다큐를 봤는데, 너무 고통스런 순간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담배를 피면서 얘기하는 게 너무 슬펐다”면서 “제가 감독님에게 이렇게 가자고 했다. 울지 말고 대사를 툭툭 던지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유곽신에서 갈비뼈를 노출하는 그 한 신을 위해 36,5㎏까지 살을 뺐다.
“사실적인 표현을 하려고 했다. CG가 하나도 없다. 미술 분장이 완벽했다. 조단역 배우들도 분량은 적지만 다이어트를 했다. 이런 분들에게 박수를 보낼만하다. 나도 힘든 현장이었지만 행복했다. ‘군함도’를 찍으면서 살짝 다친 걸 몰랐다. 피부과에 가면 바로 지울 수 있지만 천천히 지우겠다.”
이정현은 요즘도 아픈 캐릭터만 들어온다고 했다. 그는 “로맨스나 발랄한 역할도 할 수 있지만 상처가 있는 역할만 온다. 그나마 ‘스플릿’때가 평범한 역이다”면서 “‘군함도’ 이후 로맨스도 잘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 물론 신중히 결정해 관객에게 실망을 안시키는 배우가 되겠다”고 말했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