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극본 박해영, 연출 김원석)의 삼형제 중 둘째 동훈(이선균)은 구조기술사라는 조금은 낯선 직업을 가지고 있다. 지난 4회에서 그는 말했다. ‘프리즌 브레이크’의 석호필과 같은 직업이라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형을 구하기 위해 자처해서 죄수복을 입고 수감된 남자 마이클 스코필드. 섹시한 두뇌를 앞세워 형과 함께 탈옥에 성공하던 순간은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짜릿한 기억으로 남아있고, 한국인들에게 ‘석호필’이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직업이 같을 뿐, 공통점은 전혀 없어 보이는 두 캐릭터. 그러나 섹시하고 화려한 석호필만큼 ‘성실한 무기징역수’ 동훈이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매달 오륙백만원은 버는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면서도 지겹고 권태로운 얼굴로 매일을 살아내는 남자 동훈은 “욕망과 양심 사이에서 항상 양심 쪽으로 확 기울어 사는 인간”이다. 아침이면 무료한 얼굴로 만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해 대학 후배 출신의 상사가 있는 숨 막히는 회사에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처럼 버티는 재미없는 동훈의 뒷모습에서 평범한 우리네의 중년 아저씨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이라기엔 단조로운 이 남자가 슈퍼 히어로보다 멋진 순간이 있다. 정리해고 당하고 별거 상태로 노모의 집에 얹혀있는 맏형 상훈(박호산)에게 딸의 결혼식에서 부끄럽지 말라고 양복을 맞춰주고, 돈봉투를 슬며시 찔러줬다. 이렇듯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고 자신의 최선으로 형제를 챙기는 동훈은 처음부터 참 괜찮은 남자였다. 비단 돈 때문이 아니라, 도움을 주면서도 내보이지 않고 형제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을 알기 때문이다.
특히, 청소 일을 하다 취객 강용우에게 무릎을 꿇는 모욕을 당한 상훈, 그리고 그런 아들을 몰래 보고 가슴을 친 노모 요순(고두심)과 “그 자식 죽여버리겠다”는 외침 말고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씁쓸한 막내 기훈(송새벽)을 대신해 동훈은 가족들 몰래 강용우를 찾았다. ‘건축 구조기술사’라는 자신의 직업을 앞세워 강용우가 지은 건물의 허술한 안전을 꼬집으며 강용우를 몰아붙였다. 그리고 끝끝내 자신이 직접 산 과일바구니를 강용우의 손에 들려 가족들에게 사과를 시키는 데 성공했다.
착하고 성실하기만 했던 좋은 남자 동훈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변모하는 모습은 ‘진정한 어른’이라는 찬사와 함께 어쩐지 보는 이의 눈시울을 적셨다. 한바탕 일을 해결한 뒤 밤거리에서 홀로 무릎을 짚고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도 아무것도 모른 채 “정희(오나라) 왔대. 얼른 와”라면서 신이 나 전화를 건 상훈에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동훈은 진짜 멋진 어른이 무엇인지, 또 그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가족의 울타리가 되기 위해 고된 날들을 견뎠던 동훈은 “내가 무슨 모욕을 당해도 우리 식구만 모르면, 아무 일도 아냐”라고 했다. 이는 서럽고 힘들어도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가슴 한구석에 하나쯤은 묻어둔 세상의 모욕을 경험한 사람들을 위로했다. 또한 지금도 어디선가 힘든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내 아버지, 어머니, 형제를 돌이켜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