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MBC 리얼 관찰 프로그램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 하차를 선언한 김재욱의 가정은 본인이 올린 글처럼 “우리 집만 악랄한 집안을 만드는구나”라고 생각할까?
김재욱의 아내 박세미의 시댁이 악랄하다고 생각하는 시청자는 거의 없을 것 같다. 김재욱이 아내와 집일을 공유하고는 있지만 아내에 대한 센스와 배려가 부족하다는 정도로 받아들일 것이다.
한국 가정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결혼 이후 여성에게 보다 많은 책임과 희생을 요구하는 건 여전하다. 그래서 이런 불합리한 관행을 과감하게 꼬집어내고 가능하면 이를 고쳐나가자는 게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를 제작하는 취지다. 하지만 김재욱은 자신의 가정이 악마의 편집으로 점점 이상하게 돼가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지만, 세 명의 남자 김재욱과 제이블랙, 민지영의 남편 김형균의 특징이 확대된다. 세 부부가 비슷하기보다는 유형화돼가는 측면이 있다. 아내에게 세심하게 잘하는 남편(제이블랙), 아내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한 남편(김재욱), 프린스형 남편(김형균)이다. 그렇다고 제작진이 없는 걸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물론 제이블랙이 여기에 나온 것 만큼 ‘좋은 남편’이 아닐 수도 있고, 김재욱도 여기에 나온 것 만큼 ‘나쁜 남편’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악마의 편집이라 해도 그 빌미는 자신이 제공한 것이다.
가령, 제이블랙의 아내인 마리가 시집 식구들이 먹을 민물고기 매운탕을 끊이다 국물이 거의 없어질 정도로 졸아버리자 당황한 모습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데, 매운탕을 본 시어머니가 “국물이 적다”라고 하자 남편인 제이블랙은 “걸쭉해야 맛있어”라고 와이프를 안심시키는 센스쟁이 멘트를 날린다. 대한민국 남편들은 제이블랙의 순발력 있는 이런 멘트를 배워야 한다. 이건 책을 읽어서 습득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반면, 김재욱은 집으로 오라는 엄마의 전화를 받으면서 두 번이나 “나는 괜찮은데 세미에게 물어볼께”라고 말했다. 하수(下手)다.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한국 남편 대다수는 후자에 속하니까 김재욱도 크게 실망할 필요가 없다. 이것으로 아내에 대한 애정의 척도가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태도나 센스가 미숙했을 뿐이다.
이 습관을 하루 아침에 고친다는 것 자체는 가식이자 위선이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고 고쳐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미숙한 태도를 반성하느냐?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달라진다.
‘이상한~‘의 기획의도가 그런 것이다. 전지적 며느리 시점으로 보니 문제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상한 나라’의 불공평과 억압의 실체를 드러내 비로소 ‘행복의 나라’로 가게 되는 과정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제이블랙도 분명 약점이 있을 것이다. 아내보다 먼저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제이블랙에게도 또 다른 면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럴 때 그가 어떻게 대응하고 반응할지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김재욱은 코미디를 하는 사람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의 돌발 하차는 질책과 응원하던 사람들이 어이 없어 할 것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모양새 좋게 하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코미디를 하는 사람이 이 정도의 여유도 없이 남을 웃기려고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