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애의 Brunch에서 삶을 묻다] 무량스님 설법 ‘외로움을 즐기세요’

LA에는 도봉산 태고사라는 절이 있다. 혹시 현각 스님의 책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읽은 사람이라면 그 책 속에 등장하는 무량 스님에 관해 기억할 것이다. LA 산속에 한국 절을 짓는 미국인 스님… 바로 그 무량 스님의 절이 도봉산 태고사다.

LA에서 차로 2시간, 거리는 90마일 정도니까 130km 정도 될까? 오전 설법을 듣기 위해 일요일 아침 일찍 출발을 했다. 미국 공군기지로 유명한 랭커스터를 지나 테하차피(Tehachapi) 깊은 산속의 비포장 도로를 달려 도착한 태고사… 이곳에서 울려 퍼지는 목탁소리를 듣자 나는 떠나온 곳에 대한 그리움이 울컥 일어났다.

부석사

경상북도 영주군에 위치한 부석사 대웅전. Photo by malee

벽안의 스님이 두들겨대는 목탁소리…. 두 손을 합장하고 고개를 숙이는 노란 머리의 미국인 신도들. 생소한 광경이었지만 너무 엄숙한 분위기에 나까지 경건해지는 느낌이었다. 법회가 끝나고 무량 스님의 설법 시간… 스님은 이민 온 한인 가정들의 고민이 자녀교육이라며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을 내뱉어 모인 신도들의 배꼽을 잡게 했다.

나 역시 그랬다. 요즘 들어 부쩍 수진이를 키우는 게 어려웠던 터라 ‘맞아, 무자식이 상팔자야’라는 생각이 늘 가슴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수진이와 나는 가능하면 잠자리에 들기 전 짧게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자는 습관이 있는데 이 시간의 대화를 우리 모녀는 무척이나 즐기는 편이다. 침대에서 수진이를 끌어안고 등이나 엉덩이를 토닥이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며 언니 오빠와 싸웠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게 행복이다’ 싶다. 이렇게 한참을 수다 떨다 보면 나는 딸이 아니라 마치 친구와 수다를 떨다 잠에 드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얼마 전이었다. 내가 ‘수진아, 엄마가 요즘 너 키우느라고 너무 힘들다’ 고 하자 수진이, ‘엄마가 나 키우느라고 뭐가 힘들어? 엄마는 일주일에 토요일 한 번만 나를 키우는데…’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서러움이란… ‘내가 지 때문에 이 고생인데… 이제 7살밖에 안된 딸아이가 벌써 이렇게 나를 무시하면 머리 커선 볼 장 다 본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수진이의 계속되는 따끔 한 말 한마디. ‘아니다, 엄마… 엄마가 밤에 한 시간쯤은 더 키워주네. 그리고 한 반은 이모가 키워주고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크는 거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수진이를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수진이는 이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게 언니란다. 이유는 하루 종일 엄마가 집에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심지어 ‘엄마는 집에 있고 이모가 돈 벌러 회사 나가면 안 돼’ 물어볼 정도다. 오히려 어렸을 때는 엄마가 회사 나가는 걸 당연히 여기던 수진이가 요즘 들어 엄마를 더 찾는 이유는 아무래도 절대적으로 부모가 수진이에게 쏟는 사랑이 부족한 탓이려니… 생각하면서도 나 역시 힘들다는 생각만 들뿐이다.

아빠에게 받지 못하는 사랑까지 엄마에게 끊임없이 요구하는 수진이… 수진이가 원하는 사랑의 깊이와 폭은 얼마 큼이나 될까? 수진이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요구지만 일을 해서 우리 모녀의 생활을 책임져야만 하는 이 엄마도 너무나 무거운 짐과 책임으로 어깨가 휘청거려 힘들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아니, 엄마도 여자라는 걸,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어려움을 기꺼이 함께 짊어지고 갈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이 다음에 커서 수진이가 받아들일까?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무량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내 전생의 업보’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P.S

2001년 무량 스님이 주지로 있던 태고사의 대웅전 상량식에 참석했었다.  당시 캘리포니아의 불교 신자들은 다 모였다고 할 정도로 사찰에 한인들이 운집해 성대한 상량식이 치러졌다. 2004년인가 무량 스님이 LA로 일을 보러 내려오셨다가 내가 일하던 회사에 잠깐 들리신 일이 있었다. 태고사가 건축 관련 기금 모금 때문에 언론사들을 다니시면서 인터뷰를 하시던 때였다.

오랜만에 만난 무량 스님과 베버리힐스 근처의 샌드위치 숍에 가서 늦은 점심을 했다. ‘이 샌드위치 숍에 비건 샌드위치가 있어서 LA에 내려오면 늘 들리곤 한다’며 내게 맛은 어떤지 이것저것 신경을 써주셨다.  스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갑자기 울컥하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왜 그랬을까? 당시 무척이나 힘들었던 나는 조곤조곤 다독여주시던 무량 스님 앞에서 무장해제가 된 것 같았다.

무량 스님은 이때 우는 나를 바라보며  ’외로움을 즐기세요’란 말을 해주셨는데 이후 난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면 늘 무량 스님이 해주셨던 말씀을 떠올린다. 누군가 ‘내 인생에 울림을 준 한마디’를 꼽으라고 한다면 난 언제나 이 말을 하곤 한다.

이후 무량 스님과 대화를 하다 스님의 맑고 깊은 푸른 눈동자를 보면서 스님의 성찰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고 온갖 인생사 번뇌에 시달리며 나를 들들 볶아대던 당시의 나도 다소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2005년 무량 스님은 공식적으로 태고사 주지를 내려놓으시고 하와이에서 수행 중이시라고 한다. 하와이 어딘가에서 수행 중이시라는 무량 스님의 건강을 기원해본다. 

캘리포니아 사막 한가운데에 위치한 태고사 전경. 눈에 쌓인 산사의 모습이 전형적인 한국 사찰 전경이다.
사진 출처 Photo Copyright@www.taegosah.org
태고사 공사가 한창이던 당시 언제나 작업복 차림이었던 ‘무량스님’(사진 왼쪽).
사진 출처Photo Copyright@www.taegosah.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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