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애의 Brunch에서 삶을 묻다]공동체를 꿈꾸며, 애리조나 아르코산티

지금 내게 필요한 건 공동체다.

꿋꿋한 척, 멋있는 척, 은근 외톨이로 살아왔다. 한국으로 돌아와 본래 내가 꿈꿨던, 하고 싶었던 여러 가지들을 찾아다니다 보니 내가 무척이나 공동체적인 삶을 살고 싶었던 사람이란 걸 알았다.

한국 사회에서 실패한 가족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머나먼 미국까지 아이를 끌고 이주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딸아이와 단 둘이 꾸렸던 가정은 전쟁의 상흔으로 뒤덮인 폐허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으르렁 거리며 날카로운 발톱을 할퀴어대던 정글 같았다.

그래서일까?

공동체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내게 경외의 대상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새로이 만난 친구 중에 양수리 인근에서 농사도 짓고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건강하게 삶을 개척해나가는 이가 있다. 아직 그와의 관계가 깊지 않아 속속들이 속내는 알 수 없지만 하여간 부럽다. 옥수수와 감자, 당근… 전혀 농사 한번 지어보지 않았을 것 같은 손으로 남편과 함께 씨앗을 뿌리고 추수를 한다. 기꺼이 이 친구의 친환경 농산물을 구매하면서 기쁘다. 주위에 이런 삶을 살고 있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오랜 대학 동기는 대학을 자퇴하고 진안으로 내려가서 20년 넘게 농사를 짓고 있다. 오랜만에 진안으로 내려가서 친구를 만났다. 돌아오는 길에 친구가 농사지은 호박이며 가지며 풍성하게 받아왔다. 친구가 수확한 가지로 볶음을 만들어 먹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20년 넘게 고생하며 이제 농부로 제법 자리 잡은 친구의 고생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는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공동체란 것이 거주와 깊은 연관이 있다 보니 건축가들의 실험적인 공동체는 일반인에게 경외의 대상이 되곤 한다. 2018년 봄에 방문했었던 애리조나의 아르코산티란 공동체가 바로 그런 곳이다.

아르코산티-6

애리조나 사막 한가운데에 세워진 생태환경도시를 건축하기 위해 모여 사는 공동체. 이탈리아 출신의 건축가인 파울로 솔레리가 1970년부터 시작한 생태환경도시로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고 일터와 거주, 문화를 한 권역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목표로 현재까지 건설 중이다.  

이들의 공동체를 체험하고 배우기 위해 전 세계에서 연수자와 투어 참가자들이 모여든다.

마치 고대 그리스 아크로 폴리스 같은 공동체로서 구성원들은 함께 작업하며 거주하고 문화를 즐긴다. 아르코산티 중앙에 위치한 아르고에는 마치 셰익스피어의 연극이 공연될 듯한 원형 무대가 있다. 투어 시간에 맞춰 이곳 아르코산티의 기념품인 주물 풍경을 만드는 과정을 무대에서 보여준다.

아르코산티에는 곳곳에 풍경이 걸려 있는데 사막의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천천히 흔들리며 청아한 소리를 들려준다. 마치 한국의 사찰 처마에 달려 있는 풍경소리와 똑같아 놀랐던 기억이 있다. 아르코산티가 풍경을 만들게 된 배경에는 건축가 솔레리의 지인의 권유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 지인이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이었는데 당시 한국 사찰의 풍경을 보고 크게 감동받아 솔레리에게 풍경 제작을 권유했다는 것이다.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흔들리며 영롱한 소리를 들려주는 풍경이 곳곳에 걸려 있어 아르코산티를 거닐다 보면 몸과 마음이 차분히 안정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세상은 너무나 어지럽고 사분오열된 인간들은 목청을 돋우며 서로에게 삿대질을 한다. 상처를 보듬고 토닥여줄 공동체가 그리운 요즘, 애리조나 사막에서 만났던 아르코산티에서 땀 흘리며 주물을 붓던 젊은이가 생각난다.

구글 포토에 앨범으로 만들어두었던 사진을 꺼내보며 브런치까지 이어지는 잠깐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결합된 힐링 공간,  내가 브런치를 하는 궁극적인 목표일 것이다.

아르코산티를 찬찬히 걸으며 눈길을 잡아 끈 보드 위의 그림을 하나 소개해본다. 아르코산티에서 운영하는 워크숍 참가자가 그려놓은 것으로 보인다.

We want to discourage the vision. Of a pleasant 5 week vacation.

Photo by malee 

문장만 보아도 숨 가쁘게 일만 하며 살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 혹은 그녀는 이곳에서 5주의 휴가 동안 어떤 깨달음을 얻었던 것일까?

삶의 목적이 모두 성공을 강요하는 경쟁사회다. 세속적인 성공만을 향해 달려 나가는 무리들 속에 조금이라도 뒤쳐진 듯하면 코어로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코어에 들어와야 한다며… 그래야 뒤처지지 않는다며…

책임을 지고 의무를 수행하기 급급하게 살아왔던 지난날에서 벗어나 비로소 벤치에 앉아 바람을 쐬고 있다. 간혹 나만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의지를 격려하며 경쟁의 한가운데로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닌지 문득문득 고민한다. 지금 내겐 꼭 그렇게 중심에 살지 않아도 된다고 다독여주는 손길이 필요하다.

심호흡을 깊게 해 본다. 그래, 이 또한 지나가리라.

2년 전 아르코산티에서 얻었던 작은 단상을 꺼내 이곳 브런치 온라인 공간에서 나를 다독이며 힐링해본다.

돔형의 무대로 지어진 이곳에서는 노동과 문화행위가 이뤄지는 곳이다. Photo by malee
철을 녹여 주물작업을 하고 있다. 틀에 주물을 붓고 풍경을 만들어 판매하는 수익사업을 벌인다. 주물작업 하나도 진지하게 마치 노동연극처럼 해내고 있다. Photo by malee
애리조나 사막 협곡에 세워진 공동체 도시. 1970년대부터 꾸준히 건설된 공동체 건설의 끝이 마침내 올해 2020년 대단원의 막을 내릴 것이라고 한다. Photo by malee
70여 명의 주민들이 거주하면서 노동을 함께 하고 주민자치회를 통해 공동체 운영을 함께 한다. Photo by ma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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