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시가에 자사주 매입이라니…”
한인은행, 이사 그리고 경영진들의 자사주 매입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최근 남가주 소재 한인은행, 이사 그리고 경영진들은 코로나 19에 따른 실적악화 및 주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으로 자사주 매입에 나서고 있다.
한인은행들은 지난 수년간 꾸준히 주가 상승을 목표로 자사주 매입을 진행해 왔다. 지난해 기준 뱅크오브호프가 2억달러 이상을 자사주 매입에 사용했고 한미은행도 사들인 자사주의 규모가 전체 발행주식의 10%를 넘긴지 오래다.
오픈뱅크와 퍼시픽 시티 뱅크 역시 꾸준히 자사주를 매입해 오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코로나 19에 따라 주가의 추가 하락이 예상돼 한인은행들이 올해 안에 자사주 매입을 추가로 추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은행은 물론 이사 및 경영진들도 활발히 자사주를 매입하고 있다. 실제 한인은행의 내부 관계자들이 올들어 사들인 자사주는 약 28만주에 달한다.
자사주 매입이 제일 활발한 곳은 퍼시픽시티 뱅크 (이하PCB)다. PCB는 단 이 이사가 지난 2월과 3월, 2차례에 걸쳐 5만 8170주를 매입했고 이어 대니얼 조 이사가 이달 초 9만주를 매수했다. 개인 최대 주주인 이상영 이사장 역시 6500주를 추가로 사들였다. PCB 이사회가 이 이사장의 자사주 보유 비율을 최대 15%까지 확대하는 안건을 기주비즈니스감독국(DBO)과 연방중앙은행(FRB)에 신청(DBO는 허가, FRB 승인 대기 중)한 것을 고려하면 자사주의 추가 매입이 예상된다.
오픈뱅크도 최화섭 이사장의 5만 9215주를 시작으로 김옥희 이사와 크리스틴 오 CEO가 각각 2만주와 1만주를 매수해 자사주 보유 비율을 늘렸다.
이로써 PCB와 오픈뱅크는 한인은행 전체 차자수 매입량의 86%를 점유하며 이사 및 경영진의 자사주 보유비율을 각각 26%, 21%까지 늘렸다.
한미은행도 존 안 이사장이 다양한 방법을 통해 2만주 이상을 매입했고 바니 이 행장과 론 산타로사 CFO이 각각 4000주씩 그리고 해리 정 이사와 마이클 양 이사도 각각 5000주와 1000주 씩 총 6000주를 매수했다.
자사주 매입에 나선 이사진 및 경영진들은 “은행의 주가가 장부가 이하로 저평가돼 있을 뿐 아니라 배당률도 높아 충분한 투자가치가 있다”며 “은행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강한 믿음을 나타내 대외 투자자들에게 어필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이런 자사주 매입(Buyback)의 적정성에 대한 의문을 내비치는 내부 관계자들도 상당하다. 한인은행들의 자사주 매입이 효과가 없고 사용처가 잘못됐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자사주 매입이란 대표적인 말 그대로 기업이 자사 주식을 사들여 시중에 유통되는 주식 수를 줄이고 이를 통해 높아진 주가로 주당순이익(EPS)을 높이는 것이 그 목적이다.
하지만 한인은행들의 경우 지난 1년 이상 계속된 자사주 매입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오히려 지난 수년래 최저치까지 폭락했다. 한마디로 자사주 매입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자사주 매입의 부당성을 지적한 한인은행의 한 간부는 “자사주를 매입하거나 배당을 높이는 것은 현 시점에서 단기적인 처방에 불과하다”며 “이보다는 차라리 핵심 인력의 처우(봉급 및 인센티브)를 조금이나마 높이고 미래 위험에 대비하는 불황 대비 펀드(Rainy day fund)를 만들어야 한다”며 “물론 대손충당금이나 최근 도입된 기대신용손실(Current Expected Credit Loss·이하 CECL) 계산 그리고 스트레스 테스트라는 대안이 있기는 하지만 이를 더 세분해 이번 코로나 19와 같은 예상하지 못한 악재에 대비하는 또 하나의 예비 펀드를 준비해야 한다. 주주나 직원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돌아보면 많은 금융기관들이 `대마불사(Too big to fail)’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무너졌고 결국 구제금융으로 겨우 살아남았다.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이 코로나 19에 따른 장기적인 경기침체가 예상되는 현 시점에서 은행을 지켜내는데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다. 자사주 매입이나 현금배당금을 불황 대비를 위한 펀드로 돌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사 및 경영진들의 경우 은행 자금이 아닌 자신들의 자산을 투자했다는 점이 다르지만 이 역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한인은행의 직원 상당수는 이사와 경영진들의 자사주 매입이 상대적 상실감을 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다양한 한인은행의 직원들로 구성된 한 모임에서는 최근 이어지고 있는 이사 및 경영진들의 자사주 매입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한인 상장은행 직원들은 “이사, 경영진과 일반 직원간 임금 격차가 워낙 심하다 보니 이들의 자사주 매입이 은행의 가치를 올린다는 좋은 목적보다는 고소득층인 주주와 경영진이 위기 속에서도 자신들의 자산을 늘리기 위한 투자행위를 하고 있다는 의식이 강하다”며 “코로나 19의 여파로 인해 직원 사이에 그 어느 때보다 해고나 임금 삭감 등에 대한 불안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사주 매입보다 직원해고 금지, 경영진 임금 동결 그리고 단기간 배당 금지 등의 조치를 통해 대다수 직원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이들은 “향후 경기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주가는 당연히 오를 것으로 생각한다. 직원들 역시 은행 주식을 사고 싶은 생각이 많다. 단 이를 살 만한 여력이 없는 것 뿐이다”며 “주식 매입을 통해 안정적 배당을 확보하는 것은 일반 직원들에게는 꿈 같은 이야기일 뿐 이다”고 덧붙였다.
한편 자사주 매입에 대한 비판은 금융권에 그치지 않는다. 코로나 19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항공업계에서도 “항공업계는 지난 2000년 이후 66차례나 파산신청을 하며 정부의 도움을 받았지만 6대 항공사의 이사회와 CEO들은 유동자금의 96%를 자사주 매입에 사용했다”며 “자사주 매입이 기업 가치 및 주가 상승 보다는 주주와 경영진의 지갑을 불리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자사주 매입을 어느 정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내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최한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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