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가 ‘인권’ 내민 美가치외교를 반기지 못하는 이유 [한반도 갬빗]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를 청산하고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회복하기 위해 내건 전략은 다름 아닌 ‘가치외교’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외교의 중심에도 인권이 있다. 바이든 정부는 유럽연합(EU)과 함께 22일(현지시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통과를 주도적으로 이끌었고, 북한의 인권실태를 지적한 ‘국무부 인권보고서’도 조만간 발간할 예정이다.

[헤럴드DB]

바이든 행정부가 가치외교를 전면으로 내세우자 언론과 외교가에서는 한국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로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재가동하기 위해 북한 인권상황을 적극 규탄할 수 없다고 말이다. 왜일까.

핵심은 ‘체제의 정당성 인정’에 있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북한 체제의 수장으로 인정하고, 남한과 북한의 정책결정자를 중심으로 한 관계개선이 한반도의 비핵화로 이끌 수 있다는 구상을 전제로 하고 있다. 북한의 인권문제를 비판할 경우 남북 대화 기조가 깨질 것을 우려한 접근이다.

실제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김 위원장이 자국민에게 가하는 인권침해 소지의 행위에 유보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당장 23~24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채택이 예상되는 북한인권결의안에 우리 정부는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2019년부터 정부는 ‘한반도 정세 등 제반 상황’을 이유로 공동제안국에서 빠져왔다.

지난 2019년 발생한 탈북어민 북송사건과 지난해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 씨 피살사건은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문재인 정부에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는 인권 문제로 분류돼 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한·미 외교·국방 장관회의 리셉션 공동기자회견에 나선 모습. [연합]

반면 바이든 행정부는 가치외교는 애당초 세계 각국 권위주의 체제의 정당성을 공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북한의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건 체제의 정당성을 공격하는 문제로, 북한이 그동안 핵개발과 고립주의를 자초한 핵심 이유인 ‘체제 우월성’을 흔드는 의미가 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지난 17~18일 방한 계기 “북한 권위주의 체제의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자국민 학대가 계속되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 외무성은 21일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에 반발해 “서방의 인권유린 실상이야말로 국제사회가 바로잡아야 할 문제”라며 강력하게 반발한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을 접견하고 있는 모습. [연합]

그렇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과 대화할 의지가 없는 것일까?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대북관여보다는 외교압박을 통한 협상전에 나서겠다는 의도는 엿볼 수 있다. 초대 북미 연락사무소장 내정자이자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를 지낸 에반스 리비어 브루킹스 연구소 객원연구원은 “아직까지 미국 정부는 북한에 대한 외교적·경제적·국제법적 압박을 총동원한 ‘거대한 압박(massive pressure)’ 전략을 취해본 적이 없다”며 관여보다는 압박이 현실적인 대북접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전향적인 대북관여 전략으로 북미관계 개선과 비핵화를 추구하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접근과 크게 다르다.

다급해진 정부는 한미 외교국방(2+2) 장관회의의 후속협의체로 마련된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 등의 채널을 이용해 바이든 정부 설득에 나선 상태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 인권문제가 미국의 대북정책의 최우선 정책 사안이 될 경우 북미대화와 남북협력 사업 재개를 조기에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북한 인권문제가 최우선 의제가 되지 않도록 미측에 전략적 균형의 필요성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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