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면서 8학년 딸아이와 미래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평소 작가가 되고 싶다고 툭툭 내뱉곤 했던 딸 아이는 작가가 되고 싶은 이유를 나름 명쾌하게 정리해주었는데 가만 듣고 보니 딸아이의 이야기로부터 의외로 사회를 구성하는 세 가지 유형의 인간형을 새삼 발견하게 됐다. 딸애가 작가가 되고 싶은 이유는 간단했다. 리더가 되고 싶지만 그럴만한 자격은 없는 것같고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리더를 따르기만 하는 추종자로 살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만의 세계를 갖고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딸애가 그리고 있는 인간형은 성공학에서 늘 거론되곤 하는 리더와 추종자, 그리고 그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 아웃사이더의 인간형에 다름 아니었다.
사회 뿐 아니라 수십명이 일하고 있는 작은 회사에도 위의 세 가지 인간 유형 패턴은 늘 존재한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와 리더를 일사분란하게 따르는 조직원인 추종자, 그리고 리더도 아니고 추종자도 아닌 또 하나의 엄연한 개체인 아웃 사이더들…
기업을 운영하는 한인 오너들을 만나다 보면 최근 들어 그간의 소모적 기업 운영에서 탈피해 조직의 근간이라 할 인사관리와 시스템 등의 정립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들은 한결같이 조직 내에서 리더십을 갖춘 중간 간부를 육성하고 이들이 다시 오너를 보필하는 피라미드형 구조로서의 조직문화 정립을 고민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리더십을 갖춘 중간 간부와 이들이 다시 조직원들을 정교한 시스템으로 관리하는 조직문화를 갖고 있는 한인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찾기 힘든 만큼 더욱 더 열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업 오너들끼리 만나는 자리에서 한 명의 사업가가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면 너도나도 할 이야기가 참 많다는 듯 말 자르기에 여념이 없다. 기업 역사가 오래된 대기업들에서 오랫동안 일해 조직론과 인사관리론이 몸에 밴 대기업 출신 관리자를 영입도 해보고 각종 전문 서적도 탐독하고 고민도 해보지만 뾰죡한 해답을 찾기 어렵다는 자조섞인 한탄들도 터져나온다.
이런 이야기의 끝은 결국 한인 사회의 기업문화는 아직도 먼 나라 이야기라는 결론을 내린 채 기업 문화 부재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는 자리로 마무리되기 마련이다. 언제쯤 한인 사회는 조직문화에 대한 이해나 시스템 정립 필요에 오너 뿐 아니라 구성원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는 그런 성숙한 사회로 이전될 수 있을지 갑갑하다.
이는 구성원의 자질 문제만도 아니고 전체적인 사회의 성숙도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이므로 한인사회는 조금더 기다려야 할 듯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쉬움만 토로할 수는 없다. 이 어려운 현실을 그나마 타개해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창조적인 아웃사이더’는 이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 사전에서는 아웃사이더(Outsider)를 ‘사회의 기성 틀에서 벗어나서 독자적인 사상을 지니고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사회의 틀을 벗어나 독자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러나 이를 역설적으로 해석해보면 아웃사이더란 완벽하게 시스템화돼 있지 않은 사회에서 독자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즉 창조적으로 생각하고 창조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창조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으로까지 그 의미가 확대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창조적인 사고와 창조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언제나 윗사람의 눈치만 보면 시키는 일만을 할 수는 없다. 위와 같이 사고하고 행동하는 구성원은 단순히 리더를 따르는 추종자가 아닌 창조적인 아웃사이더들이다.
여러 가지 덕목을 갖춰야 하는 리더가 되지 못할 바에야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을 하면서 나만의 세계를 가질 수 있을 것같아 작가가 되고 싶다는 딸애의 ‘창조적인 아웃사이더(Creative Outsider)’론은 훌륭한 리더도, 그렇다고 철저한 추종자도 되지 못하고 있는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올해 목표는 정해졌다. ‘리더가 되지 못할 바엔 창조적인 아웃사이더라도 되자.’
이명애 / 미주 헤럴드경제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