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모차르트’로 불리던 흑인 작곡가 조제프 불로뉴(1756~1791)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슈발리에’ [디즈니플러스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네 영혼은 네 얼굴색 만큼 시커멓구나.”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중)
‘검은 모차르트’로 불리던 흑인 작곡가 조제프 불로뉴(1756~1791). 아프리카 출신의 첫 클래식 작곡가인 그는 부유한 백인 농장주 아버지와 흑인 노예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슈발리에’에선 “인간 이하의 종족이 프랑스 음악계 최고 지위에 앉아서는 안된다”는 대사가 나온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슈발리에(프랑스어로 ‘기사(knight)’라는 뜻) 지위를 하사한 당대 ‘최고의 재능’이었으나, 시대는 그를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원숭이”로 치부한다. 모차르트는 그를 보며 오페라에 흑인 악당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풍문이 있다.
클래식 음악은 태생부터 ‘백인 중심의 세계’였다. 인종은 성별보다도 오랜 시간 차별과 편견의 대상이었다. ‘다양성의 시대’라지만, 클래식 음악계에서 아프리카계 연주자들은 지금도 소수에 불과하다. 이들의 무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적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해 열린 클래식 공연은 총 7300여건. 그 중 한국에서 열린 아프리카계 연주자의 공연은 단 세 건에 불과했다. 재일교포 3세 어머니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를 둔 바이올리니스트 랜들 구스비, 노스캐롤라이나주 출신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색소포니스트 스티븐 뱅크스, 세계적인 ‘음악가 가족’ 카네 메이슨 남매다.
국내 3대 악단 역시 아프리카계 음악인과의 협연이 활발하진 않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이 그나마 다양한 연주자를 무대에 올렸다. 지휘자 제임스 드프리스트(1936~2013)가 2010년 10월 서울시향과 ‘말러 2010 시리즈’를 선보였고, 지휘자 크와메 라이언(2016년), 메조 소프라노 미샤 브뤼거고스먼(2009년), 베이스바리톤 로데릭 윌리엄스(2018년)이 한국 관객과 만났다. 국내 악단 중 최다 숫자이나, 2005년 재단 독립 이후 19년 동안 단 네 명 뿐이었다. 악단의 객원단원으로는 팀파니 수석으로 풀 필버트(로열 스코티스 필하모닉 수석)가 서울시향과 함께 했다. KBS교향악단에선 플루트 객원 수석으로 데마레 맥길(2019년) 시카고심포니 수석이 호흡을 맞췄다. 국립심포니교향악단은 이번 신년음악회(1월 14일, 국립극장)를 통해 피아니스트 스튜어트 굿이어와 협연 무대를 갖는다.
전문가들은 “흑인 음악가들의 연주가 적은 것은 백인 중심의 클래식 음악계의 역사, 흑인 사회와 문화의 특수성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바이올리니스트 랜들 구스비 [연합] |
클래식 음악계에서 아프리카계 연주자는 ‘소수 중의 소수’다. 기본적으로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는 흑인의 숫자가 적은 데다, 이들을 향한 차별도 만만치 않다. 미국에선 민권 운동 이전인 1950년대까지만 해도 오케스트라에서 흑인을 고용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로 인해 클래식 음악가들은 유럽으로 진출하거나, 인종차별이 덜한 캐나다에서 활동한 경우도 많았다.
현재의 환경은 과거의 역사가 쌓아 만든 결과다. 장일범 음악평론가는 “수백년 전엔 인종차별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나, 20세기로 넘어오면서 흑인 음악가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며 “하지만 흑인 커뮤니티 특성과 클래식 음악에 대한 교육 부재로 아프리카계로 클래식 음악가는 적은 편이다”라고 말했다.
아프리카계 음악가들은 대중음악 시장에선 발군이다. 재즈부터 알앤비, 힙합 장르에서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경지를 이룬다. 반면 클래식 음악 쪽의 숫자가 적은 것은 이들이 처한 환경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 장 평론가는 “흑인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경제적 여건은 엄청난 레슨비가 드는 클래식 음악, 특히 기악 분야에 뛰어들기 쉽지 않다”고 봤다.
임윤찬이 역대 최연소로 우승한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의 경연 과정을 담은 영화 ‘크레센도’에도 나온 유일한 흑인 피아니스트 클레이튼 스티븐슨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거리에 버려진 피아노로 음악을 시작했다”고 했다.
카네 메이슨 남매 [롯데문화재단 제공] |
아프리카계 출신들은 ‘빠른 성공’을 위해 긴 호흡으로 투자하는 클래식 음악 분야보다는 스포츠나 경제 분야로의 진출이 많았다. 게다가 민권 운동 이전과 달리 이후의 흑인들은 ‘백인 주류사회에 대한 반발’이 적지 않았다. 성공한 상류층 흑인들은 백인 문화를 따르기 보단, 자신들의 고유의 문화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삶의 터전을 가꿨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장 평론가는 ”이러한 이유로 흑인 커뮤니티에서 클래식 음악에 지원하기 어려운 환경이 고착됐다”고 봤다.
실제로 클래식 음악계는 스승에서 제자, 아버지에서 아들로 계보가 이어진다. 음악평론가인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은 “유럽의 유수 악단들만 해도 대를 이어 자리를 물려받는데 이러한 역사와 전통이 한순간에 바뀌긴 어렵다”고 봤다. 색소포니스트 스티븐 뱅크스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클래식 음악가로 활동할 때 (백인) 동료들 대다수가 흑인 문화와 그것이 나의 연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모르고,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의 흑인으로서 가족과 친구들은 클래식 음악가가 하는 일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세 인종(백인, 흑인, 황인) 중에서도 흑인은 숫자적으로 열세다. 아시아에선 오랜 시간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배출하며 유럽 본토 음악계의 주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각종 콩쿠르에서도 흑인 연주자들은 두각을 보이지 못한다. 류 평론가는 “흑인 음악가들은 기존의 환경과 맞물려 아시아의 거센 도전을 막아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며 “이미 쌓아온 것이 많은 집단과 비교한다면 흑인 사회는 많은 면에서 취약한 부분이 있고, 역량에 비해 음악계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경우도 많지 않다”고 봤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피아니스트 앙드레 와츠가 1963년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는 모습. [AP연합] |
아프리카계 첫 클래식 작곡가인 조제프 불로뉴 이후 지난 250여년 사이 ‘발군의 재능’을 가진 흑인 음악가들이 등장했다.
일찌감치 두각을 보인 분야는 성악이다. 성악계에선 ‘흑진주’로 불리며 찬사를 받은 여성 음악가들이 많다. 콘트랄로 마리안 앤더슨(1897~1993)은 1955년 아프리카계 성악가 최초로 메트로폴리탄 무대를 밟았다.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그에게 “백 년에 한 번 나올 목소리”라며 찬사를 보냈다. 그의 조카가 한국을 찾았던 지휘자 제임스 드프리스트다. 제시 노먼과 캐슬린 배틀, 바바라 핸드릭스는 ‘3대 흑인 디바’로 꼽힌다.
악기군에선 아프리카계 음악인들이 지배하는 재즈 장르와 겹치는 금관, 타악 분야가 인지도 높은 연주자들을 배출했다. 줄리어드 음악원을 졸업하고 클래식과 재즈를 동시에 섭렵한 윈튼 마살리스(63)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 3대 기악 분야와 목관 파트의 음악가는 드물다. 지휘자도 마찬가지다.
가장 상징적인 아프리카계 피아니스트는 앙드레 와츠(1946~2023)다. 와츠는 16세에 글렌 굴드의 대타 연주자로 뉴욕필과의 무대(1963년)에서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며 스타가 됐다. 지금도 그는 인종을 초월한 거장 음악가로 이름을 새겼다. 와츠의 대타로 바르비에 뮤직 페스티벌에 선 주인공이 16세의 랑랑이었다. 랑랑이 아시아 최고 스타 피아니스트가 됐던 계기다. 클래식 기타리스트 중엔 유디카엘 페로이에 이어 플리니오 페르난데스가 등장해 주목받고 있다.
지휘자 중엔 딘 딕슨(1915~1976)이 아프리카계 마에스트로의 선구자였다. 이후 헨리 루이스(1932~ 1996)가 최초의 아이콘으로 많은 성취를 거뒀다. 더블베이스로 음악을 시작한 그는 16세에 LA필하모닉과 더블베이시스트로 협연(1948년) 무대를 가졌고, 이후 이 악단의 단원으로 활동했다. 교향악단 사상 최초의 흑인 단원이었다. 이후 20여년 뒤엔 흑인 최초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지휘대(1972년)에 올랐다.
흑인 최초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녹음한 피아니스트 스튜어트 굿이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
동시대에 주목받은 아프리카계 연주자들도 많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랜들 구스비(28), 스티븐 뱅크스(31), 세쿠-카네 메이슨(25)이다. 세쿠 카네 메이슨은 2018년 영국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 결혼식에서 축하 연주를 한 주인공으로 BBC 올해의 젊은 뮤지션 대회에서 흑인 최초로 우승한 신성이다. 일곱 남매가 모두 클래식 음악가다.
젊은 아프리카계 클래식 음악가들은 자신들의 뿌리와 정체성을 중요한 음악적 기반으로 둔다. 2020년 데카 클래식과 전속 계약을 맺으며 주목받은 랜들 구스비는 “미국 클래식 음악계는 극명한 인종 간의 차이가 존재하고, 100% 백인만을 위한 세계로 자리하고 있었다”며 “클래식 음악 안에서 아프로-아메리칸이 소외돼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아프리카계 음악가들을 발굴하고 그것이 클래식 음악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연결고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취지에서 발매한 음반이 ‘루츠’이기도 하다.
스티븐 뱅크스 역시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다른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예술 장르를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며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싶었고 그들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제프 불로뉴를 처음 알게 됐을 때 울었다. 기쁜 마음으로 속할 수 있는 흑인 클래식 음악가들의 계보가 있다는 사실에 더 큰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색소포니스트 스티븐 뱅크스는 “흑인으로의 정체성은 제 음악의 중요한 이정표”라고 말했다. [세종솔로이스츠 제공] |
젊은 음악가들의 노력은 클래식 음악계에 ‘다양성의 씨앗’을 뿌린다. 랜들 구스비와 스티븐 뱅크스는 여성과 유색인종에 대한 제도화된 차별을 없애기 위한 행보에 앞장서고, 클래식 음악계를 포함한 다양한 환경에서 흑인으로서 겪는 경험의 차이를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흑인 최초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녹음한 스튜어트 굿이어는 “역사적으로 백인이 지배했던 클래식 음악계에서 아프리카계 클래식 음악가로서 활동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여정”이라며 “사람들은 나의 베토벤 녹음을 일종의 ‘선언문’으로 생각했겠지만, 그것은 그저 작곡가에 대한 존경과 애정의 기록이었을 뿐이다. 클래식 음악계의 다양성이 더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제 ‘혈통’과 ‘인종’은 무의미한 시대가 됐다. 전문가들은 “중요한 것은 피부색이 아닌 음악적 수준과 재능”이라고 말한다. 류 평론가는 ”아무리 비디오 시대라 해도 음악은 성별, 외모 등 시각적인 것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운 매체”라며 “감동을 줄 수 있는 퀄리티의 음악이라면 과거보다 기회가 늘어난 시대에서 보다 다양한 음악가들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