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윤 대통령, ‘국회’ 발언은 한국 언급한 것… MBC, 자체 검증 미흡”

[MBC 보도화면 캡처]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법원은 윤석열 대통령의 ‘바이든’·‘날리면’ 논란과 관련해 소송을 제기한 외교부측 손을 들어줬다. MBC에는 정정보도를 명령했다. 법원은 이례적으로 1심 선고 후 판결문 내용을 공개하면서 외교부 승소 이유를 설명했다. 당시 대화 맥락상 윤 대통령의 ‘국회’ 언급은 여소야대 국면인 한국 국회를 가리켰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고, 대통령실의 ‘보도하지 말아달라’는 언급이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고 판단할 근거는 안된다고 봤다. 법원은 외교부 장관의 소 제기 적격성 논란에 대해서도 ‘연관성이 있어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2부(성지호 부장판사)는 12일 외교부가 MBC를 상대로 낸 정정보도 청구소송 선고기일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MBC)는 이 사건 판결 확정 후 최초로 방송되는 뉴스데스크 프로그램 첫머리에 진행자로 하여금 별지 기재 정정보도문을 통상적인 진행속도로 1회 낭독하게 하고 낭독하는 동안 위 정정보도문 제목과 본문을 통상의 프로그램 자막 같은 글자체와 크기로 계속 표시하라”고 주문했다.

관련 사건은 지난 2022년 9월 22일 윤 대통령의 미국 뉴욕 순방 당시 국제 회의장을 떠나면서 윤 대통령이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OOO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발언했고, 이 모습이 방송 기자단의 풀(pool) 화면에 촬영됐다. MBC는 이를 보도하며 ‘OOO’ 대목에 ‘바이든’이라고 자막을 달았는데, 이에 대통령실은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말한 것이고 윤 대통령이 말한 ‘국회’는 미국 의회가 아닌 우리 국회를 언급한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우선 재판부는 MBC측의 ‘박진 외교부 장관이 정정보도를 청구할 자격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 “원고(박진 외교부 장관)는 이 사건 보도 내용과 개별적인 연관성이 있음이 인정되므로 이 사건 보도가 진실하지 않을 경우 그 정정보도를 청구할 이익이 있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이 사건 보도 내용에서 지명되어 정정보도를 청구할 이익이 있더라도 앞서 보듯 원고가 이 사건 보도 내용과 개별적인, 연관성이 있음이 인정되는 이상 원고도 별도로 정정보도를 청구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날 공개한 판결문을 통해 ▶윤 대통령이 언급한 ‘국회’는 한국 국회를 가리킨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고 ▶MBC는 자체 제작한 음성인식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는 등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 ▶‘다른 언론사도 동일하게 보도했다’는 MBC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MBC가 유일하게 유튜브를 통해 처음 보도했다’며 타 언론사가 MBC의 보도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MBC측의 ‘외신 보도도 많았다’는 반박 역시 MBC의 보도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추단했다.

재판부는 윤 대통령의 ‘국회’ 발언에 대해 “당시에는 야당이 국회 의석수의 과반을 차지한 여소야대 상황이었다. 따라서 글로벌펀드에 1억 달러 기여를 약속했고 바이든 대통령이 이에 대해 상당한 증액이라고 언급한 상황에서 만약 야당이 기여에 대한 동의를 해주지 않을 경우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신뢰가 하락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우려할 수 있다”며 “따라서 윤석열 대통령이 위와 같은 취지에서 대한민국 국회를 상대로 이 사건 발언을 하였다고 봄이 자연스럽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윤석열 대통령이 일반적으로 미국 의회를 지칭하는 의회 대신 착오로 대한민국 국회를 지칭하는 국회를 사용하였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하는데 앞서 보듯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든은’ 이라고 발언했는지가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고 그밖에 미국 의회를 국회로 잘못 지칭하였다고 볼 만한 합리적인 사정이 확인되지도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MBC측의 ‘풀 기자단 내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말한 내용이 이 사건 발언과 같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고 주장한 것을 뒤집으면서 “이는 당시 풀 기자단 내에서도 이 사건 발언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하여 이견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피고는 엠바고 해제 전까지 문제된 영상 부분을 0.5배속 0.75배속으로 재생하거나 배경 소음을 제거하여 반복적으로 재생한 후 이 사건 발언 내용을 확인했다고 주장하나 이 역시 배경 소음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문제 발언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MBC가 ‘사전 검증’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는 이 사건 보도 이전부터 자체개발한 음성인식서비스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 사건 보도 전 이 서비스를 이용해 이 사건 발언을 검증하지 않았고, 그밖에 음성 감정 등 기술적 분석을 하였다고 볼 만한 사정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대통령실이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치 않았다는 MBC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대통령실이 이 사건 발언 내용 자체에 대해 명시적으로 해명하지 않았다고 하여 곧바로 이 사건 발언을 시인했다고 이해하는 것은 지나치게 자의적”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음성 감정결과 ‘바이든’, ‘날리면’ 부분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이 경우 피고로서는 자막을 추가하지 않은 채 음성 원본만을 들려준다거나 자막을 추가하더라도 논란이 되는 발언 부분을 공란으로 처리하는 등으로 보도함으로써 시청자로 하여금 발언의 내용을 각자 판단하도록 할 수 있었다”며 “그런데도 진위 여부가 불분명한 바이든은 부분을 자막에 추가함으로써 시청자에게 정보를 전달하는데 왜곡이 생기게 했다”고 비판했다.

한편 MBC는 이날 법원의 1심 판단에 대해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MBC는 입장문을 내고 “국가의 피해자 적격을 폭넓게 인정할 경우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역할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판례와 공권력의 행사자인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명예훼손죄나 모욕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과 이번 판결이 배치된다”고 했다.

또 MBC는 “대통령의 개인 발언에 대해 외교부는 정정보도를 청구할 정당한 법적 이익이 없다며, 외교부 주장대로 국익이 훼손됐다면 국격 실추의 책임은 발언 당사자에게 있다”면서 “MBC는 당시 보도가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은 결과가 아니라 전체 기자단의 집단 지성의 결과물이었다며, 140여 개 언론사도 같은 판단에 따라 대통령 발언 논란을 보도했다”고 반박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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