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산 기부 약정한 변문희(80) 어르신. [연합] |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누군가 배곯고 있으면 나는 안 먹더라도 주고 그랬어요.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내가 배고파 봤으니까. 내가 그 고통을 아니까."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청에서 만난 변문희(80)씨가 말했다.
변씨는 최근 가정 형편이 어려워 배고프고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데 써달라며 마포복지재단에 전 재산인 집과 금융 자산 약 4억2천만원 기부를 약정했다. 마포구와 마포복지재단은 이날 오후 유산 기부식 행사를 열고 변씨에게 감사를 표했다.
변씨는 늘 배고팠고 원하는 만큼 공부하지 못했다. 한이 컸고 그런 젊은이가, 이웃이 없었으면 했다.
어떻게 기부해야 하는지 알아볼 엄두가 안 나 생각만 생각만 하던 지난해 가을 어느 날 평소 의지하던 방문 사회복지사에게 '더 늦기 전에 기부하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말했다. 변씨의 뜻을 익히 들어 알고 있던 복지사가 기부 절차를 알아봐 줬고 그렇게 유산 기탁이 이뤄졌다.
변씨는 이전에도 주변의 어려운 이들을 위해 지갑과 냉장고를 자주 열었다. 어렸을 때 굶은 경험 때문에 다른 이들의 고통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변씨가 다섯살이었던 1948년 여름 수마(水魔)가 변씨의 고향인 충북 제천을 덮쳤다. 11명이 숨졌고 45명이 크게 다쳤다. 집 48채가 피해를 입었는데 변씨의 집도 그중 하나였다.
변씨는 "당일 아침에 먹을 쌀조차 건지지 못한 채 몸만 빠져나와 전 재산을 다 잃었다"며 "그 길로 생활고가 시작돼 한 달을 거의 맹물만 먹고 버텼던 때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생활고는 변씨가 국민학교에 들어간 이후로도 이어졌다. 어머니가 "여자애가 무슨 학교냐"며 통지서가 3차례 나올 때까지 변씨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사정사정한 끝에 국민학교에 다닐 수 있었지만 배가 고파서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는 "빈속으로 학교에 가면 2시간도 안 돼서 쓰러졌다"며 "그러면 선생님이 미국인이 가져온 가루우유를 도시락통에 넣고 쪄 줘 그걸 먹으며 버텼다"고 말했다.
변씨는 17세의 나이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상경했다. 수많은 직업을 거치다 30대 중반 고향으로 돌아가 파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해 돈을 벌었고 그렇게 번 돈을 허투루 쓰지 않고 모았다. 50대 초반에는 다시 서울로 이사해 마포구 성산동에 자리 잡았다. 결혼 5년 차에 남편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자식은 없다.
변씨는 "솔직히 말하자면 자식이 있었어도 전 재산을 기부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긴 한다"면서도 "어려운 이웃이 없었으면 하는 건 내 오랜 생각이라 후회는 요만큼도 없다"라고 했다.
변씨는 유산 기부와 함께 얼마 전 고려대학교 의대에 사후 장기기증을 하기로 결정했다. 자신의 마지막 기부가 될 것이라고 했다.
변씨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유산 기부를 약정했다. 변씨의 유산은 마포복지재단을 통해 마포구 주민 참여 효도밥상 사업과 어려운 주민을 위한 복지 사업 후원금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마포구는 지난해 4월 만 75세 이상 지역의 독거 어르신을 대상으로 효도밥상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마포구에 거주하는 500여 명의 독거 어르신이 17개 급식 기관을 이용하고 있다.
"지금처럼 친구들 배고프다고 하면 밥 사주고 먹는 반찬 나눠주고,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그대로 살다 가고 싶어요." 변씨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