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마약과의 전쟁에서 꼭 승리해 주십시오.”
‘마약과의 전쟁’ 원년(元年)이었던 지난 2023년, 경찰이 검거한 마약사범 규모는 전년도보다 44%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0월21일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사회 곳곳에 스며든 마약범죄를 소탕하겠다고 선포한 뒤 맞은 첫 해 성과다.
마약사범 검거가 늘어난 것 못지 않게 사회 전반의 경고음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작년에는 10대 청소년 마약사범이 전년보다 3.6배 늘어나 사상 최초 1000명대로 올라서면서 마약사범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는 추세가 확인됐다. 또 ‘강남 학원가 마약음료 사건’과 같이 불특정 다수를 향한 마약 제공 범죄가 수면 위로 드러나 사회적 불안감도 크게 확산됐다. 경찰은 마약범죄 ‘암수율’(드러나지 않은 범죄 비율)이 높은 만큼, 억제를 위해 제조·밀수·판매 등 공급사범을 적극 검거해 검거 현황의 ‘질’을 높이는 데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23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한 해 경찰이 검거한 마약사범은 1만7817명이었다. 이는 전년도인 2022년 대비 43.8%(5430명) 늘어난 규모로, 지난 2019년(1만411명)과 비교하면 마약사범은 5년 사이 71.1% 늘었다. 지난해 구속된 마약사범은 2650명, 구속률은 14.9% 수준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10대 마약사범의 증가다. 지난 2019년 100명대 중반 수준이던 10대 마약사범은 2020년 200명을 돌파한 이후 300명대 중후반을 유지해 왔다. 그러다 지난해에는 1066명이 검거되면서 전년보다 무려 263%나 규모가 늘어났다. 전체 마약사범 중 10대 비중도 6%에 육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10대의 경우에는 다이어트 약으로 알려진 향정신성 의약품을 접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병원 처방이 필요한 의료용 마약류이지만 17세 미만에게는 처방이 안 되다 보니 온라인상에서 불법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 최근에는 단순 투약이 아닌 유통에 가담한 사례도 등장하면서 경제적 이유도 청소년 마약범죄의 한 원인으로 부각되는 분위기다.
20~50대 검거도 확대됐지만 60대 이상에서의 마약범죄 급증세도 포착됐다. 경찰은 이 연령대에서 지난해 양귀비 재배 등 밀경사범이 많이 검거된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드러나지 않은 마약범죄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살인이나 폭행, 사기 등 피해자가 있는 범죄들과 달리 마약 범죄의 경우 피해자 없이 인지사건을 통한 검거만 집계된다는 맹점이 있다”며 “실제로 숨어있는 범죄가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고, 검거도 늘었지만 실제 범죄는 더 크게 늘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마약과의 전쟁’이 전면화된 가운데 범죄 수법이 진화하고 마약범죄가 지금보다 더욱 음성화될 우려도 커지고 있어 수사 당국의 기민한 대처도 요구된다. 실제로 최근 마약 판매상들은 보안성이 강한 SNS 텔레그렘 등을 마약 유통과 홍보 수단으로 이용한다. 또 마약을 젤리나 사탕 등으로 판매하는 등 수법도 교묘해지고 있다. 다크웹 상에서 마약을 팔거나 가상화폐로 지불을 요구하는 등 수사기관 의 추적을 피하는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마약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도 높아지는 추세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최근 마약범죄 양형기준에 ‘미성년자에 대한 매매·수수 등’ 유형과 ‘마약가액 10억 원 이상’ 구간을 신설해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토록 양형 기준을 상향했다. 양형위는 “최근 마약류 확산세와 10대 마약범죄 증가 추세에 대한 사회적 우려, 미성년자 대상 마약 범죄에 대한 양형 강화 필요성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올해도 마약사범 검거에 주력하는 한편 제조·밀수 및 판매 등 공급사범 검거를 늘려 수사 내실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마약사범의 34% 가량인 6084명이 공급사범이었고, 나머지 66%가 밀경(재배), 투약·소지 등 혐의로 검거됐다. 경찰 관계자는 “단순하게 검거인원을 늘리는 성과도 중요하지만, 마약범죄를 결정적으로 퍼뜨리는 공급사범 검거를 늘려 억제 효과를 노리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