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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올 들어 외국인 투자자들이 과거 어느 해보다 강력한 ‘바이(Buy) 코리아’ 행렬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첫 거래일부터 지난 19일 장 종료 시점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순매수액이 10조원을 넘어서면서 역대 매년 같은 기간 거래액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액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연초 외국인 투자자들의 주요 거래 대상인 대형주를 중심으로 내놓은 강력한 주주환원 약속이 투심을 자극한 데다, 금융 당국이 주도하고 있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 전략에 ‘큰손’ 외국인의 매수세로 강력하게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첫 거래일(1월 2일)부터 전일 장 종료 시점까지 외국인 투자자는 코스피 시장에서 10조2884억원 규모의 순매수액을 기록했다.
이는 한국거래소가 관련 통계를 제공하기 시작한 지난 1999년 이후 사상 최대치다. 그동안 해당 기간 가장 큰 액수를 기록했던 때는 10조644억원이던 지난 2012년이다.
지난달 3조5731억원 규모의 코스피 순매수세를 기록했던 외국인 투자자는 이달 들어서는 순매수액을 6조7153억원 규모까지 국내 주식을 사들이는 속도를 높였다. 2월이 절반 정도 지난 시점에 벌써 순매수액이 지난달의 2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작년 말 삼성전자 등 주요 대형주의 배당락일 이후 대규모 순매도세를 보인 기관 투자자의 물량을 외국인 투자자가 받아내고 있는 모양새”라고 분석했다. 연초부터 전날 장 종료 시점까지 기관 투자자는 6조9595억원어치 코스피 주식을 팔아치웠다.
외국인 투자자가 개인 투자자들의 ‘차익 실현’ 매물까지도 순매수세로 대응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한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1월까지만 해도 북한 리스크 등 지정학적 리스크로 급락세를 보였던 코스피 장세로 ‘저가 매수’에 나섰던 개인 투자자가 지수 반등에 성공한 2월 들어선 순매도세로 돌아섰다”면서 “해당 물량까지도 외국인 투자자가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 투자자는 1월만 해도 코스피 시장에서 4조5915억원어치 순매수세를 보였지만, 이달 들어선 7조7619억원어치 팔자세로 180도 돌아선 바 있다.
최상현 베어링자산운용 주식 총괄본부장은 “연초 개인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에 비해 수익률이 높았던 미국 주식으로 자산을 배분한 영향도 있다”며 순매도세의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외국인 투자자의 강(强)매수세의 배경엔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주가 부양책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역시도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연초부터 19일까지 외국인 투자자의 순매수액 상위 10개 종목을 살펴보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수혜주로 분류된 ‘저(低) 주가순자산비율(PBR) 대형주’가 다수 눈에 띈다.
대표적인 종목은 외국인 투자자 순매수액 2위 종목에 이름을 올린 현대차(1조4573억원)다. 국내 증시 양대 자동차주로 꼽히는 기아(5361억원)도 외국인 순매수액 4위 종목에 꼽혔다. PBR이 각각 0.62배, 1.20배에 불과하지만, 지난해 각각 15조1269억원, 11조6079억원에 이르는 영업이익을 올리며 나란히 국내 기업 영업이익 1·2위를 기록하는 등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높다. 올 들어 현대차, 기아 주가는 각각 24.08%, 17.60%씩 올랐다.
외국인 순매수액 3위에 오른 삼성물산(6618억원), 10위에 오른 KT(2186억원)의 경우 주가 부양책의 대표 수혜 섹터인 ‘지주사주’의 대표 종목들이다. 올해만 삼성물산, KT 주가는 각각 31.58%, 22.67% 올랐다. 이 밖에 7위 KB금융(4360억원), 9위 하나금융지주(2331억원) 등 저 PBR 금융주도 외국인 투자자 순매수액 상위권을 차지했다. 올해 주가 상승률은 각각 25.17%, 35.71%에 달한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고위관계자는 “국내 증시의 향방을 결정짓는 ‘큰손’ 외국인 투자자의 투자 선호 종목인 대형주 중에 다수는 그동안 저평가 영역에 놓인 경우가 많았다”면서 “금융 당국의 주가 부양책 수혜가 예상되는 환경에 맞춰 외국인 투자자가 예년보다 좀 더 순매수에 집중한 결과”라고 짚었다.
서상영 연구원은 “저 PBR 대형주들이 정부 움직임에 맞춰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펼친 덕분에 외국인 투심이 움직였다는 점에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강력한 외국인 순매수세 간의 간접적인 연관성을 찾을 순 있을 것”이라고 봤다.
증시는 외국인 투자자의 수급 덕분에 상승세를 타는 모양새다. 코스피 지수는 1월엔 5.96% 하락하며 2500선 아래(1월 31일 종가 기준 2497.09)에 머물렀지만, 2월 들어선 7.34% 상승하며 전날 종가 기준 2680.26까지 올라섰다. 코스피가 종가 기준 2800선을 넘어선 것은 지난 2022년 5월 3일(2680.46) 이후 1년 9개월 만에 처음이다.
2월 코스피 상승률은 일본 닛케이225 평균주가(6.02%), 중국 상하이종합지수(4.37%), 미국 나스닥지수(4.03%)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최상현 본부장은 “작년 연초 (9조 가까운 규모의) 외국인 투자자의 코스피 순매수세는 반도체 업황 반등 기대로 삼성전자 한 종목 중심의 순매수세를 보였던데 비해 올해는 자동차, 금융, IT 등 저평가 업종에 걸쳐 분산 순매수 중이란 데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국인 투자자의 수급이 다양한 섹터에 고루 분포되고 있다는 점은 추가 주가 상승 가능성에 긍정적 시그널이란 해석을 할 수 있는 셈이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차지하는 시총 비율이 ‘마(魔)의 30%’ 선을 넘어서며 코스피·코스닥 지수 추가 상승을 위한 수급을 담당하게 될 지도 관심사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종가 기준 국내 증시(코스피·코스닥·코넥스) 시총 중 외국인 보유 비율은 29.47%였다. 지난달 12일 29.94%로 30% 선에 바짝 다가섰지만 30% 벽을 깨진 못했다. 외국인 시총 비율은 2022년 1월 26일(30.16%)을 끝으로 만 2년 1개월간 30%를 밑돌고 있다.
그동안의 주가 상승세가 정책에 대한 기대감에 따른 것인 만큼, 오는 26일로 예정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구체안 발표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경민 대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저 PBR주는 이미 급등했고, 구체적인 내용이나 가이드라인이 시장 기대치를 충족하거나 웃돌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면서 “단기적으로는 기대와 현실 간 괴리를 좁히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개미(소액 개인 투자자) 중심의 ‘차익 실현’ 매물 출회가 더 가속화할 가능성도 있다. 연초부터 전날까지 개인 투자자의 순매도액 상위 종목에 현대차(1위, 1조8692억원), 삼성물산(2위, 6292억원), 기아(3위, 5490억원), KB금융(8위, 2873억원), 하나금융지주(9위, 2831억원) 등 ‘저 PBR 대형주’ 위주라는 점도 해당 가능성을 더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