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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집단이탈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27일 오전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중환자를 옮기고 있다.[연합] |
[헤럴드경제=이민경·박지영·안효정 기자] 정부와 시민사회 및 동료 병원 노동자로 구성된 의료인 단체가 일제히 전공의들을 향해 병원으로 복귀하라고 촉구하고 있지만 의사 집단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지난 7일 대한의사협회(의협)이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체제로 전환해 대정부 투쟁에 나섰고, 12일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이 집단행동 개시를 논의한 이래로 보름이 훌쩍 넘었다. 여태껏 한국 사회 여러 직역에서 파업 및 시위가 있어왔지만 의사 집단만큼 정부와 여론의 전방위적 압박에도 불구, 장기 투쟁을 이어간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이런 가운데 이처럼 투쟁을 이어가는 ‘힘의 원천’이 무엇이냐는 데 대해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27일 노동계에 따르면 지난 2022년 11월 24일 시작됐던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화물연대)의 무기한 파업은 윤석열 대통령이 “북핵 위협과 마찬가지”라고 표현했고, 정부는 “불법 행위에 관용 없이 엄정 대응하겠다”고 몰아붙이면서 16일 만에 소득없이 종료됐다.
여론이 ‘불법파업’을 지적하고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면서 조합원들이 위축된 데 따른 것이다. 실제로 업무개시명령 다음날 화물연대가 진행한 조합원 투표에서 61.82%가 파업철회에 동의했다.게다가 화물연대는 요구했던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적용 차량 확대’도 결과적으로 얻어내지 못했다.
의사와 마찬가지로 환자의 생명을 책임지는 간호사들은 지난해 7월 대규모 파업에 나섰지만 ‘환자를 내버려두고 거리로 나왔다’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나머지 하루만에 총파업을 종료했다. 파업 첫날 양산부산대병원 등지에서 입원환자 전원을 퇴원시키고 외래진료를 축소해 보건의료재난 위기경보가 ‘주의’로 상향되기도 했다. 하지만 하루 뒤 환자 안전과 불편, 복지부 입장 등을 고려해 총파업을 종료했다.
지난해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사건과 관련해 순직으로 인정하라고 촉구하라며 거리에 나온 교사들은 학교 수업이 없는 주말만을 택해 시위했다. 평일에 교실을 비웠다가는 학생들과 학부모의 원성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 타 직역과 비교해 의사단체는 전공의 약 1만명이 병원을 비운지 닷새째인 지난 23일 복지부가 보건의료위기단계 최고단계 ‘심각’으로 격상했음에도 위축되지 않는 모습이다. 또 전날 병원 노동자로 구성된 의료단체인 민주노총 소속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과 한국노총 소속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은 각자 기자회견을 갖고 “전공의 여러분들께 간곡히 부탁 드린다, 지금 현장으로 복귀해 달라”고 진료 정상화를 호소했고, 이미 의료 약자인 여성, 아동, 장애인 단체에서도 성명을 냈지만 효과가 없다.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따르지 않는 전공의들을 고발하는 데에도 매우 신중하다. 오는 29일까지 복귀하면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26일 유화책을 내밀었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는 “전공의들이 다치는 상황이 발생하면, 모든 의사 회원들의 분노는 극에 달해 대한민국 의료 현장의 혼란은 불가피해 질 것”이라며 맞섰다. 대학병원 교수들도 추가로 이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심지어 학생 신분인 의대생들조차 단체 휴학으로 힘을 행사하고 있고, 의대를 갓 졸업한 학생들이 대학병원 인턴 계약을 포기하는 식으로 의대 증원에 반대 의사를 피력하고 있다.
이처럼 의사들의 힘이 어떤 타 직역과 비교해서도 크게 비대해진 까닭은 근본적으로 현행법상 의사를 대신할 대체재가 없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신현호 의료법 전문 변호사는 “의료법 27조 1항이 무면허 의료행위를 일률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의사만이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해서 ‘수술방 간호사’조차도 불법인데, 이는 전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행태”라고 밝혔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른 직역에 비해 희소하고, 전문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보니 (집단행동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희 L-ESG평가연구원 원장은 “헌법에서 파업권을 인정받는 노동자들도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파업을 벌인다면 불법 파업”이라면서 “의사의 경우 파업권조차 인정받지 않는다. 똑똑하고 존경받는 직업이라고 해서 모든 게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는 게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진료를 거부해버리면 결국 정부가 두 손 두 발 다 들고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자신감이 있는 것 같다”며 “국민 건강과 생명을 뒷전으로 밀쳐두고 자신들의 이익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진료 거부를 너무 쉽게 판단하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역사적으로 의사들이 파업을 해서 정부에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다는 경험이 이번에도 강경 투쟁을 지속하는 원동력”이라며 “의사들의 현실 인식부터가 ‘의사 수는 전혀 부족하지 않다’고 여타 국민들과 달라 단결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의사 출신 박호균 변호사는 “정부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인데, 그 권력의 말을 의료계가 듣지 않고 있는 것”이라며 “헌법 제37조 제2항과 헌법 제36조 3항 등을 고려할 때 의료계의 집단행동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무시하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