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의마저 ‘주 40시간’ 단축근무… 환자들 “이러다 다죽겠어요”

전공의 집단행동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원내 복도를 이동하고 있는 모습. [연합]

[헤럴드경제=김용재·안효정 기자]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정책으로 시작된 의료계의 집단행동이 40일 넘게 지속되고 있다. 주요 의과대학 교수들과 개원의들마저 1일부터 근무시간 단축과 외래진료·수술 축소에 돌입한다고 밝히면서 환자 및 보호자들의 불안과 시름은 커지고 있다.

의료계 등에 따르면 주요 의대 교수들은 사직서를 낸 채 근무 중이다. 소위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병원) 병원의 사직서 제출 현황을 살펴보면, 전체 교수 5100여명 중 3000여명(59%)이 사직서를 제출했거나 낼 예정이다. 다만 이들은 사직서를 냈더라도 대부분 의료 현장을 지키고 환자를 돌보고 있다.

문제는 교수들이 이날부터 근무 축소를 선언했다는 점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등 20개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모인 전국의대교수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달 30일 “(4월)1일부터 24시간 연속 근무 후 다음날 주간 업무 ‘오프’를 원칙으로 하는데 동의했다”라며 “이 근무조건에 맞춰 중증·응급환자 진료를 유지하기 위해 외래와 수술을 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개원의들 역시 이날부터 진료 축소 동참 의견을 밝혔다. 김성근 신임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개원의도 주40시간 진료 시간을 지키기로 결론 내렸다”며 “의협 차원에서 참여를 강요할 수는 없지만, 이전에도 나왔던 얘기인 만큼 준비하고 있던 분들은 (바로)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주 40시간 진료에)의견을 모았기에 자연스럽게 확산될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달 19일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의료 공백이 한 달째 이어져 환자들의 근심이 깊어지는 가운데 최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로비에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이상섭 기자

환자들의 불안과 불편은 커지고 있다. 이날 신촌 세브란스병원 위암센터를 찾은 박모(70)씨는 “정부와 의료진들이 대화하고 있는 줄 알고 기다렸는데, 교수들이 외래진료를 줄여버린다고 하니 (의정갈등이)갈수록 안 좋아지는 것 같아서 걱정”이라며 “아픈 것도 서러운데, 주변 가족과 친척들마저 가슴 졸일까봐 (이들에게)미안하다”고 말했다.

폐암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고 있는 보호자 이모(43)씨는 “교수들이 오늘부터 수술과 외래진료를 줄인다는 소식을 들었다”라며 “뭐 나아지는거 없나 하고 항상 뉴스를 보는데, 의사들은 이러다 남은 환자들을 다 죽이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3살 아이 엄마인 직장인 이모(33)씨는 동네 병원의 진료시간 단축 가능성을 듣고 걱정을 토로했다. 이씨는 “아이가 가슴 통증을 호소해서 병원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대학병원에서 외래 진료를 받으려면 6월을 얘기하더라”라며 “어쩔 수 없이 동네 병원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동네 소아과에 ‘오픈런’ 해도 가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개원의들마저 진료 시간을 줄이면 어쩌란 건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시민들 역시 ‘의료 공백’ 불안감을 호소했다. 전공의에 이어 동네 병원을 운영하는 개원의까지 진료 단축을 선언하게 되면 ‘의료계 셧다운’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온다. 직장인 김모(29)씨는 “토요일과 야간진료를 멈추는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라며 “개원의까지 나서면 엄청난 의료 혼란이 올 것 같은데 이건 아픈 사람 데리고 인질극 하는 것 아닌가. 정말 최악이다”라고 비판했다.

대형병원의 진료 공백이 커지면서 환자들에겐 동네병원 한 곳도 아쉽다는 언급도 나왔다. 직장인 A씨(30)씨 역시 “주요 병원에 사람 줄어서, 동네 병원에는 환자들이 북새통이던데 여기서 진료시간을 줄이면 어떡하냐”라며 “의사와 정부 고래 싸움에 아픈 사람 새우등만 터지는 꼴”이라고 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이 31일 서울 용산구 의사협회에서 열리는 비대위 회의에 참석 전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다만 일각에서는 개원의들의 집단휴직 동참율이 높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개원의들은 2020년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 당시에도 집단휴직 참여율이 10%에 그쳤기 때문이다.

개원의는 전공의와 달리 ‘자영업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보건복지부가 정한 게 아니라, 운영하는 각각의 의원에서 자율적으로 정하고 있다. 현재 복지부는 병의원의 야간 및 휴일 진료를 강제하지 않고, 야간이나 휴일에 진료할 경우 수가를 가산하는 식으로 보상을 강화해 제공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개원의들의 집단휴직 동참 움직임을 경고하기도 했다. 정부는 의협 및 개원의협의회가 구성 사업자인 개원의들에 진료 시간 단축 또는 휴업을 강요한다면 공정거래법상 사업자단체 금지 행위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개원의들의 경우 섣불리 집단휴직에 나서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의협에서도 ‘준법투쟁’을 언급하는 것 같다”라며 “개원의들은 의대증원 정책에 반대하면서도, 굳이 왜 휴직까지 해야 하느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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