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가운데) 미국 대통령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왼쪽) 필리핀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오른쪽) 일본총리가 1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3자 정상회의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AP] |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 등 ‘두 개의 전쟁’으로 표류하던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외교정책이 아시아로 무게추를 옮겼다. 미국은 동북아의 한일, 동남아의 필리핀 등 미국의 아시아 핵심 동맹국들을 대중국 견제를 위한 소규모 다자 협의틀에 참여시킴으로써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 협의체)와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 협의체)를 포함해 ‘격자형’ 대중국 견제망을 형성하게 됐다.
1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백악관에서 3자 정상회의를 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회의 전 취재진 앞에서 “이번 회의가 세 나라 ‘파트너십의 새 시대’를 열었다”며 “동맹국인 일본과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방어 공약은 철통같다”고 강조했다.
특히 남중국해 섬 영유권을 두고 필리핀과 긴장을 높이고 있는 중국을 겨냥해 “필리핀의 항공기, 선박, 군대에 대한 어떤 공격이든 우리의 상호 방위조약을 발동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3국은 이번 회의 결과물로 에너지안보, 경제 및 해상 협력, 기술과 사이버 안보 파트너십, 핵심 인프라에서의 공동 투자 등을 강화하는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발표할 예정이다.
또 필리핀의 수빅만, 클라크, 마닐라, 바탕가스를 연결하는 항만, 철도, 청정에너지, 반도체 공급망 등 주요 기반 시설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는 ‘글로벌 인프라 파트너십(PGI) 루손 회랑’ 구상도 발표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에 대한 ‘견제구’로 풀이된다.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호주, 필리핀, 일본 간 합동 해군 훈련에서 필리핀 해군 함정이 훈련을 하고 있다. [AFP] |
지난 7일에는 미국과 일본, 호주, 필리핀의 해군이 필리핀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안에서 해상 합동 훈련을 진행하며 중국의 태평양 진출 전략을 견제했다.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워싱턴포스트(WP)는 “바이든 행정부가 아시아로 돌아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지낸 마이클 프로먼은 “이번 정상회의는 미국이 이 지역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중국에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WP에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 당시 외교·군사 정책의 중심을 아시아··태평양으로 이동시켜 이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피봇 투 아시아’ 전략을 계승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도 이러한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가자지구 전쟁 발발로 유럽과 중동에 발을 묶이면서 아시아로의 무게중심 이동은 지연돼 왔다.
WP는 지난해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3자 정상회의가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이 재개된 계기가 됐다고 짚었다. 한 고위 소식통은 “바이든 대통령이 주최한 5번의 국민 반찬 중 4번이 호주, 인도, 한국, 일본 등 이 지역 동맹국을 위해 열렸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고 말했다.
미국은 동북아의 한국과 일본, 동남아의 필리핀 등 핵심 동맹국을 소(小) 다자 합의 틀에 참여시킴으로써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 협의체)와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 협의체)를 포함해 ‘격자형(lattice-like)’ 대중국 견제망을 형성하고 있다.
대선을 앞둔 바이든 대통령 입장으로서 외교정책의 초점을 대중 견제로 옮겨오는 것은 상대적으로 공화당을 포함한 초당적 지지를 이끌어내기 쉽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공화당은 13명의 미군 사망자가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철수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에 대해 비판해 왔지만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동맹을 결속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노력에 대해서는 지지를 보냈다.
나아가 트럼프 행정부 시절 주일 미국 대사를 지낸 빌 해거티 상원의원과 마이크 존슨 하원 의장 등 공화당 핵심 인사들은 기시다 총리의 의회 연설을 주선하기도 했다.
이 의회 연설에서 기시다 총리는 “미국은 계속해서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하고 국제사회에 미국의 리더십은 필수불가결하다”며 “일본은 가장 가까운 친구로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며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정책에 손을 들어줬다.
크리스토퍼 존스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일본위원회 위원장은 “북대서조약기구(NATO) 수준은 아니지만 우리는 중국의 행동에 대응해 우방국들과 중중요한 협력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