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탈리아 카넴 유엔인구기금(UNFPA) 사무총장. [EPA] |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유엔은 여성이 임신·출산 등과 관련해 자기 결정권을 갖고 의료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가 지난 30년간 전 세계적으로 크게 개선됐지만 지역·계층 편차는 극복되지 못했다는 지적을 내놨다.
유엔인구기금(UNFPA)은 17일(현지시간) 보고서를 통해 “지난 30년간 성 건강에 관한 여성의 권리가 많이 향상됐지만 수백만명은 자신의 신분이나 출생지 때문에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여성의 보건 권리와 자기 신체 결정권 문제는 1994년 국제사회가 이집트 카이로에서 세계 인구문제 해결을 위해 모였을 당시 핵심 의제로 다뤄졌다.
보고서는 2000년부터 2020년까지 여성이 의도하지 않게 임신할 확률이 5분의 1로 줄었고 산모 사망률은 3분의 1로 낮아졌다고 소개했다. 세계 160개국에서 가정폭력 방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는 등 권리 신장이 진전을 이뤘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하지만 권리 신장은 점점 정체되고 있고 지역과 계층별 권리 편차가 여전하다는 게 UNFPA의 진단이다. 보고서는 “임신·출산 합병증을 겪은 아프리카 여성은 유럽·북미에 비해 사망률이 130배나 높다”며 “예방이 가능한데도 사망하는 산모의 사망은 인도적 위기나 분쟁이 있는 국가에서 주로 발생하며 하루 500명 가까운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또 “2016년 이후 출산 중 사망하는 여성이 매일 800명씩 나오고 여성의 4분의 1은 파트너와의 성관계를 거부할 수 없으며 여성 10명 가운데 1명은 피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고 짚었다.
보고서는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서는 부유층 여성이 출산 시 의료적 도움을 받을 확률이 빈곤층보다 5배나 높다”며 “장애 여성은 젠더 기반 폭력을 경험할 가능성이 최대 10배 높고 이주민과 소수민족, 성소수자의 보건은 위험에 처해 있다”고 설명했다.
UNFPA는 낙태권이 대선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미국의 상황을 거론하면서 비판 메시지를 내놓기도 했다.
나탈리아 카넴 UNFPA 사무총장은 이런 상황을 두고 “여성의 몸을 전쟁터로 만들며 정치화하려는 것"이라고 "여성의 생명과 건강은 정치적 압력에 좌우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UNFPA는 “여성 권리 향상을 위해 획일적 접근방식 대신 지역에 맞는 프로그램을 도입하길 제안한다”며 “2030년까지 중·저소득 국가에 790억 달러(109조여원)를 추가로 투자하면 계획되지 않은 임신 4억건을 줄이고 100만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