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아우디이우카 전선에서 빼앗은 우크라이나 전차 T-64가 세워져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한때 ‘지상전 최강자’로 불린 전차의 명성에 금이 가고 있다. 드론(무인기)의 존재감이 거듭 돋보이면서 전차의 위상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로 러시아의 침공을 받아 3년째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는 이미 수천대의 전차가 망가졌다. 상대 전차와 정면으로 맞붙은 일은 드물고, 상당수는 드론의 기습에 속수무책 당한 사례라고 한다.
일각에선 전차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대형 전함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전선을 돌파할 때 전차만큼 강한 화력을 낼 존재가 아직 없는 만큼, 몰락을 속단하기는 이른 것으로 보인다.
20일(현지시간)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익명의 미국 고위 당국자를 인용, 지난 2개월 사이 우크라이나군이 보유한 미국제 M1 에이브럼스 주력전차 31대 중 5대가 파괴됐다고 전했다.
오픈소스 정보 웹사이트 오릭스(Oryx)는 2022년 2월24일 전쟁 발발 후 현재까지 우크라이나군이 상실한 주력전차가 최소 796대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다만 러시아군의 전차 손실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큰 것으로 알려졌다. 최소 2900여대가 파괴, 노획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해 2월에는 러시아군이 도네츠크 지역의 소도시에서만 전차 수십대를 잃었다. 전차가 지뢰밭으로 돌진해 폭발하는 모습도 고스란히 포착됐다.
이렇게 손실된 전차 대부분은 서방 전차보다 상대적으로 내구성이 약한 옛 소련제 전차들이었다. 하지만 훨씬 강력한 보호막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미국제 M1 전차도 자폭 드론을 상대로는 생각보다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현대 전차에서 윗부분과 후방 엔진룸 등을 덮는 장갑판은 상대적으로 얇아 공중으로부터의 공격에 취약하다는 특성을 갖는다. 자폭 드론은 그런 전차의 약점을 정확하게 찌르는 무기로 평가받는다.
그런데도 로켓추진유탄(RPG)이나 폭발성형관통자(EFP) 등이 실린 대전차 자폭 드론은 적게는 500달러(약 70만원)선에서 생산할 수 있다. M1 전차 한 대 가격이 1000만달러(약 138억원)에 이른다는 점을 보면 비교하기 힘들 만큼 싼 무기인데, 정확성은 기존 무기체계를 능가한다. 전파 교란 말고는 딱히 방어할 수단도 없다.
그렇기에 우크라이나에서는 드론 공격을 막기 위해 낚시용 그물까지 동원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전차가 아예 쓸모없는 무기체계가 됐다고 보기에는 이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오스트리아 테레지아 육군사관학교 소속인 레이스너 대령은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선 전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