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 1400억원 철퇴’ 블랙홀 빠진 쿠팡…3조원대 투자도 재검토하나

[헤럴드경제=김벼리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에 1400억원이라는 유례없는 ‘과징금 폭탄’을 던졌다. 알고리즘을 조작하고 임직원을 동원해 수익성이 높은 자기 상품의 매출을 늘렸다는 이유에서다. 쿠팡이 강경하게 법적 대응을 예고하면서 장기전이 불가피해졌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로 쿠팡의 장기적인 물류 투자 계획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본다. 이미 일부 투자 계획이 조정되고 있는 상황이다. 더 나아가 유통업계의 PB 전략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공정위 쿠팡 제재 쟁점은? ①알고리즘 조작 ②임직원 동원 후기
조홍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13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 기자실에서 쿠팡㈜ 및 쿠팡㈜의 자체브랜드(PB)상품을 전담해 납품하는 쿠팡의 100% 자회사인 씨피엘비㈜의 위계에 의한 고객유인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천4백억원(잠정)을 부과하고 각각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연합]

14일 업계에 따르면 쿠팡 PB에 대한 공정위 제재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검색 순위 알고리즘 조작 여부다. 공정위는 쿠팡이 검색 순위 알고리즘을 조작해 PB(자체 브랜드)와 직매입 상품 등 자기 상품의 판매를 늘렸다고 봤다. 쿠팡은 2019년 2월부터 몇 가지 알고리즘을 이용해 6만개 이상의 자기 상품들을 검색 순위 상위에 고정적으로 노출했다. 이 과정에서 해당 상품들의 총매출액과 고객당 노출 수는 각각 76.1%, 43.3% 늘었다. 검색 순위 100위권에 노출되는 PB 상품의 비율도 56.1%에서 88.4%로 높아졌다.

공정위는 쿠팡이 인위적으로 검색어 상위권에 노출시킨 이 제품들과 다른 제품들을 구분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소비자들이 판매량 등 객관적 데이터를 토대로 상위에 노출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 구매를 유도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쿠팡은 소비자의 필요도와 관심도를 고려해 시의적절한 상품을 추천한 것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온·오프라인 유통사들이 소비자 편익을 고려해 특정 상품을 눈에 띄게 배치하는 것은 알고리즘 조작이 아니라 관행이자 본질이라는 주장이다.

쿠팡이 임직원들을 동원해 자기 제품에 대한 구매 후기를 작성했다는 점도 주요 쟁점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쿠팡은 2019년 2월부터 현재까지 2297명의 임직원을 동원해 PB 상품에 긍정적 구매 후기를 달고 높은 별점을 부여했다. 7000개가 넘는 PB 상품에 7만개가 넘는 구매 후기를 남겼다. 인지도가 낮거나 판매량이 적은 자기 상품의 검색 순위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공정위는 판단했다.

쿠팡은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점만을 이유로 제재하는 건 부당하다고 반박했다. 쿠팡은 공정위가 임직원 체험단을 허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공정위 예규에서 ‘광고주로부터 직접 고용된 상태에서 추천 등을 할 때 경제적 이해관계를 명확히 표시해야 한다’고 규정한 것이 근거다. 더 나아가 임직원들이 작성한 후기가 전체 후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도 안 돼 구매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쿠팡의 입장이다.

쿠팡 “상품 추천 금지하면 로켓배송 어려워”…3조 물류투자 계획 바뀌나
쿠팡이 검색 순위 조작을 통해 자체 브랜드(PB) 상품 구매를 유도한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400억 원의 과징금과 검찰 고발 등 제재를 받게 됐다. 14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주차장에 쿠팡 배송 트럭이 주차되어 있다. 임세준 기자

쿠팡 내부에서도 사상 초유의 공정위 제재에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이번 제재로 쿠팡의 중장기적 물류 투자 계획 변경이 불가피해졌다는 전망도 나온다. 쿠팡이 법적 대응까지 불사하며 강경하게 나서는 배경이다.

쿠팡은 공정위 발표 이후 자사 ‘뉴스룸’을 통해 “공정위가 이러한 상품 추천 행위를 모두 금지한다면 우리나라에서 로켓배송을 포함한 모든 직매입 서비스는 어려워질 것”이라며 “쿠팡이 약속한 전국민 100% 무료배송을 위한 3조원 물류투자와 로켓배송 상품 구매를 위한 22조원 투자 역시 중단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최근 알리익스프레스 등 중국계 이커머스가 국내 시장 투자를 확대하자, 쿠팡은 그간 수익성 위주의 안정적 성장 전략에서 공격적 투자로 경쟁력을 키우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지난 3월 발표한 3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도 그 일환이다. 쿠팡은 신규 풀필먼트(통합물류)센터 확보와 첨단 자동화 기술 도입, 배송 네트워크 고도화 등에 투자해 전국을 쿠세권(쿠팡 로켓배송이 가능한 지역)으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쿠팡이 지난해 첫 연간 영업이익 흑자를 달성한 이후, 올 1분기 다시 531억원의 영업손실을 본 것도 같은 경쟁력 강화에 대한 투자의 결과였다.

이런 상황에서 쿠팡의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6174억원)의 23%에 달하는 1400억원 규모의 공정위 과징금은 쿠팡에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여기에 공정위 규제로 전체 거래액의 70%를 차지하는 자기 상품 판매가 위축되고, 로켓배송도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추가 투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쿠팡은 오는 20일 개최할 예정이던 부산 첨단물류센터 기공식을 취소했다. 경기도 이천과 경북 김천에 들어설 물류센터 착공 일정도 불투명해졌다.

공정위 “PB 상품 규제 아냐” 선그었지만…업계도 예의주시
쿠팡이 검색 순위 조작을 통해 자체 브랜드(PB) 상품 구매를 유도한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400억 원의 과징금과 검찰 고발 등 제재를 받게 됐다. 14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주차장에 쿠팡 배송 트럭이 주차되어 있다. 임세준 기자

업계는 이번 제재가 PB 사업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 이커머스 관계자는 “쿠팡에 대한 이번 공정위의 제재는 단순히 PB 제품에 대한 것보다는 위법이 의심되는 특정 행위들에 대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PB 상품 마케팅을 전개하는 방식에 대해 다시 점검하는 등 후속 조치는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공정위는 이번 조치가 PB 규제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위계에 의한 고객유인’ 행위에 대한 것이지 PB상품에 대한 일반적인 규제가 아니”라며 “온라인 쇼핑몰 사업자들은 PB상품의 생산, 판매, 판촉행위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공정위의 이번 결정은 쿠팡의 PB 상품 확대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라며 “중국계 이커머스를 중심으로 온라인 시장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쿠팡의 편의성과 신뢰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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