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의과대학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학생들이 집단으로 낸 휴학계를 일괄 처리한 가운데 2일 오후 교육부 관계자들이 감사를 위해 관악구 서울대학교 행정관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서울대 의과대학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학생들이 집단으로 낸 휴학계를 일괄 처리하면서 다른 의대로도 휴학 승인이 확산할지 관심이 몰리고 있다. 서울대와 같이 의대 학장이 휴학을 승인할 수 있는 의대가 절반가량이어서, 이들 의대를 위주로 휴학계 처리가 확산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교육부는 강력한 대응에 나서 2일 오후 바로 감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강하게’ 감사한다는 입장이어서 갈등을 예고되는 상황이다.
학생들의 수업 거부가 이미 7개월 이상 이어진 상황에서 올해 정상적인 학사 운영이 어려워진 만큼, 현실적으로 내년 7500여명이 한꺼번에 수업을 듣는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대, 700여명 휴학 승인…‘의대학장이 휴학 승인’ 대학들로 확산 가능성= 2일 교육계에 따르면 서울대는 지난달 30일 의대생들의 1학기 휴학 신청을 일괄 승인했다.
의대 교수들은 “1학기 수업을 듣지 않은 학생들이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내년 2월까지 짧은 기간에 1년 치 과정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인데, 이러한 의견을 반영해 의대 학장이 휴학계를 처리했다고 한다.
이번에 승인된 휴학 규모는 700여명으로 알려졌다. 서울대 의대 정원(학년당 135명)을 고려하면 대부분 학생의 휴학이 승인된 셈이다.
서울대는 학생들의 휴학 승인 최종 결정권자가 총장이 아닌 각 단과대 학장에게 있다. 이 때문에 교육계에서는 서울대와 마찬가지로 의대 학장에게 휴학 승인 권한이 있는 대학들로 휴학이 확산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보통 대학 총장들은 학교 위상이나 의대 교육의 효율성, 지역의료 수요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정부와 마찬가지로 증원 필요성에 공감해왔다.
‘의대 열풍’이 불기 이전부터 의대를 운영한다는 것은 대학 명예와 위상에 공공연하게 영향을 미쳐 왔다. 특히 ‘지방대 위기론’이 팽배한 상황에서 비수도권 대학에서 의대 운영이 미치는 영향력은 컸다. 이 때문에 대학 총장들은 ‘동맹 휴학은 정당한 휴학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교육부 입장에 동의해왔다.
반면 의대 교수 출신인 의대 학장들은 의학 교육 질 저하를 가장 우선하며 증원 정책에 부정적이었다. 제자들과 직접 부딪쳐야 하는 의대 학장 특성상 제자들에게 불이익이 갈 수 있는 유급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일부 의대의 경우 유급을 1∼2회로 제한하고, 이를 초과하면 제적시킨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총장보다 의대 학장에게 휴학 승인 권한이 있는 대학이 집단 휴학을 승인하는 ‘반기’를 들 가능성이 더 큰 것이다.
서울대 의과대학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학생들이 집단으로 낸 휴학계를 일괄 처리한 가운데 2일 오후 안상훈 교육부 감사총괄담당관을 비롯한 교육부 관계자들이 감사를 위해 관악구 서울대학교 행정관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 |
▶교육부 “최대한 강하게 감사”…휴학 ‘직권 취소’는 어려울 듯=다른 의대들로 휴학이 확산할 것이라는 우려에 교육부는 이날 오후 바로 감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감사인단도 12명으로 대규모로 꾸려졌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강하게’ 감사한다는 것이 교육부 방침이다.
교육부는 전날 서울대 의대의 휴학 처리에 대해 “학생들을 의료인으로 교육하고 성장시켜야 할 대학 본연의 책무를 저버린 매우 부당한 행위”라며 “중대한 하자가 확인될 경우 엄중히 문책하고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바로 잡을 예정”이라고 강하게 경고했다.
교육부는 지난 2월 말 의대생들이 동맹 휴학계를 제출한 이후 “동맹 휴학은 정당한 휴학 사유가 아니다”며 휴학 승인을 허가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를 어기고 학사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대학에 대해서는 고등교육법에 따라 시정명령 등 행정조치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고등교육법에는 교육부 장관은 학교가 학사 등과 관련해 법령을 위반하면 총장에게 시정·변경을 명할 수 있게 돼 있다. 총장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지정된 기간에 시정·변경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위반 행위를 취소·정지하거나 학생모집 정지, 정원 감축 등을 할 수 있다.
다만 교육부가 휴학 취소 명령을 대학에 직접 내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휴학 관련 최종 권한은 기본적으로 대학 총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 관계자는 “어떤 사항을 위반했는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기 때문에 서울대가 어떤 조치를 받을지는 모른다”고 말을 아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후보자 시절에 했던 “선진국 중에서 우리나라처럼 대학을 (정부) 산하기관 취급하는 나라는 없다”는 발언을 언급하며 서울대에 대한 감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의교협은 “교육부는 대학 자율성을 침해하는 월권 행위, 교육파괴 난동을 즉각 중단하기를 바란다”며 “다른 39개 의과대학의 학장, 총장도 학생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휴학 신청을 승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교육이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침묵하는 것은 교육자로서의 양심을 저버린 행위”라며 “폭압에 맞서 이제 결단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9일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연합] |
▶대학들, 아직 ‘신중 모드’…교육부, 4일 의대 총장 회의=다른 대학들은 서울대 감사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의 휴학 승인 결정이 갑작스럽다는 분위기도 읽힌다.
의대를 운영하는 서울 지역 한 대학 총장은 “우리 학교만 독단적으로 결정할 것은 아닌 것 같고, 11월 말까지는 지켜볼 계획”이라며 “서울대 의대는 너무 성급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대학 관계자 역시 “정부 당국에서 휴학을 승인하지 못하게 막아놓은 상황이고, 정부 방침대로 진행하고 있다”며 “서울대가 갑자기 휴학을 승인한 것이 의아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반면 여전히 휴학 승인을 고민하는 곳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내 의대 관계자는 “(휴학 승인 여부를) 고민 중”이라며 “한쪽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4일 온라인으로 의대를 운영하는 전국 40개 대학 총장과 회의를 연다. 안건 등은 비공개라는 입장이지만 집단 휴학 확산 가능성에 대비해 동맹 휴학 승인을 하지 말라고 요청하는 등 학사 관리를 당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부는 여전히 동맹 휴학 승인은 안 되며, 지난 7월 마련한 ‘의대 학사 탄력 운영 가이드라인’에 따라 학생들이 복귀만 한다면 유급시키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교육부는 이날 의대를 운영하는 40개 의대에 ‘학사 운영 관련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내 집단휴학 확산 단속에 나섰다.
공문에서 교육부는 “집단행동의 하나로 이뤄지는 ‘동맹휴학’은 휴학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며 “향후 대규모 휴학 허가 등이 이뤄지는 경우 대학의 의사 결정 구조 및 과정, 향후 복귀 상황을 고려한 교육과정 운영 준비 사항 등에 대해 점검 등이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서울대 사례처럼 물리적으로 학생들을 진급시키기 위한 시간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휴학 승인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내년 신입생과 올해 휴학생이 한꺼번에 수업을 듣는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수업을 거부하고 있는 학생들이 대부분 휴학이 승인될 경우, 내년에는 증원된 의대 신입생들과 합쳐 약 7500명가량이 한꺼번에 의대 1학년 수업을 들어야 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의대 학사 운영과 관련해 추가로 필요한 대책에 대해선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