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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심아란 기자] 고려아연 경영권을 두고 MBK파트너스와 최윤범 회장의 분쟁이 장기화 국면에 진입하자 국민연금공단이 캐스팅보터로 소환되고 있다. 고려아연 지분 약 7%를 보유하고 있어 주주권 행사 방향성에 시장 주목도가 높다.
물론 국민연금의 보유 지분이 조정 됐을 가능성도 열려 있다. 국민연금은 기업 분쟁 때마다 의결권을 적극 행사하기보다는 지분을 일부 처분해 차익을 실현한 사례가 적지 않다. 위탁운용사 몫도 고려하면 국민연금이 고려아연 지분 7%에 대해 온전하게 의결권을 행사할지도 미지수다.
2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올 3월 이후 고려아연 보유 지분 관련해 변동 공시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지분율의 경우 1%포인트(p) 이상 변동이 생길 경우 공시 의무가 발생하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6.5% 이상 지분을 보유 중일 것으로 관측된다. 마지막 공시 기준 주식 보유 비율은 7.5%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국민연금 지분은 중요성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자사주를 포함한 발행주식수 기준으로 MBK와 영풍 연합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33.8%다. 반면 최 회장은 베인캐피탈을 비롯한 특수관계인 합산 지분은 17.05%다.
현재 경영 주도권을 쥐고 있는 최 회장이 의결권은 열세한 만큼 우호주주가 필요하다. 한화와 LG화학 등의 보유 지분 약 9.7%는 백기사로 분류된다. 다만 최 회장이 주도했던 현대차 대상 유상증자의 경우 현재 영풍 측에서 신주발행 무효 소송을 제기한 상태로 변동성은 있다.
분쟁 당사자 사이 지분 격차가 절대적이지 않아 국민연금의 의중이 중요한 상황이다. 마침 MBK와 영풍 측은 고려아연 이사회에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한 상태다. 신임 이사진 14명 선임과 집행임원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주총이 소집될 경우 국민연금은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거쳐 의결권 방향성을 결정할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현재로선 국민연금이 양측 어느 편에 설지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국민연금이 구체적 의결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보는 시각도 우세하다. 고려아연 사태는 과거 기업 분쟁 사례와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이기도 하다. 최대주주가 경영 대리인(대표이사)을 몰아내는 구조로 집안 다툼을 벌이던 한진칼, 한미사이언스 사례와 차이를 보인다.
한진칼의 경우 제3자인 행동주의펀드 KCGI, 반도건설 등이 합류했다는 점에서 고려아연과 유사하지만 결정적 차이를 나타낸다. 당시 국민연금은 한진칼 지분 보유 목적을 ‘경영 참여’로 공시한 상태였으므로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요구됐다. 따라서 위탁운용사에 위임했던 의결권을 회수해 주주권을 직접 행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려아연의 경우 국민연금 지분 보유 목적은 ‘단순투자’다. 단순투자는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수준의 주주권을 행사하는 경향성을 가진다. 그만큼 위탁운용사에 위임한 의결권이 국민연금 판단 영역이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국민연금의 자산배분 정책을 고려하면 주식의 경우 45%~65% 정도는 위탁운용사에 맡긴다. 따라서 국민연금이 고려아연에 대한 직접 의결권 지분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민연금은 주로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면 투자금 회수에 나서기도 했다. 운용 원칙상 투자 수익 극대화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에스엠(SM), 한미사이언스, 한진칼 등의 주가가 치솟던 시점에 지분 일부를 처분해 수익을 거뒀다. 에스엠 경영권을 두고 하이브와 카카오가 지분 매집 경쟁을 벌일 당시에는 1000억원 넘는 시세차익을 챙겼다.
경영권 분쟁 당시 국민연금이 뚜렷한 입장을 발표했던 사례 역시 전무하다. 연초 한미사이언스나 2020년 대한항공 집안 다툼에서는 기존 이사진의 결정에 의결권을 행사하는 정도다. 다만 사법 리스크에 휘말려 있는 경영진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반대 의견을 표현해 왔다. 현재 MBK 측에서 최 회장의 원아시아파트너스 출자, 이그니오홀딩스 투자 등에서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하는 점도 고려할지 주목되고 있다.
시장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MBK와 영풍 또는 최윤범 회장 양측 중 한 쪽 당사자 입장에 설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라며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방향성과 별개로 최 회장과 MBK의 위임장 대결 등 우호 지분 확보 경쟁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