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존재하는 한 국무총리 정상 외교 불가능
취임 전 정상외교 시작한 트럼프…전세계 분주
‘대한민국 민주주의 회복력’ 美 메시지 사라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오후 10시23분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대통령실] |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로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고립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구도가 형성된 상황에서 기습적으로 단행된 반헌법적인 비상계엄은 ‘아시아의 등불’로 여겨진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물음표를 던졌다.
당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전 세계가 분주히 움직이지만, 대한민국 외교는 멈췄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을 대신해 외교에 나선다고 해도 철저하게 ‘급’을 맞추는 외교 관례를 고려할 때 정상 외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저의 임기를 포함하여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고 밝혔다.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는 “대통령은 퇴진 전이라도 외교를 포함한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 총리가 외교 업무를 전담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총리가 윤 대통령을 대신해 외교에 나선다고 해도 정상 외교는 불가능하다. 엄연히 대통령이 존재하기 때문에 국가의 최정상 외교는 대통령의 몫이기 때문이다.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는 SNS에 “헌법에 정한 탄핵, 직무대행 절차를 밟지 않고 대통령의 명을 받아야 할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 특히 외교권을 빼앗는 것은 위헌”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다면 헌법 제71조에 따라 국무총리가 권한을 대행할 수 있다. 이 경우 헌법상 대통령 권한대행의 역할을 공식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외형상 정상 외교를 수행할 자격이 부여된다.
이미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 전 정상 외교를 시작했다. 지난달 트럼프 당선인이 캐나다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하자,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미국 플로리다주 마러라고로 날아가 트럼프 당선인을 만났다.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도 플로리다 팜비치에서 트럼프 당선인과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논의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를 찾아 엘리제궁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회담했고, 이를 계기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이 자리에 참여했다.
트럼프 당선인과 만나기 위해 세계 각국 정상이 직접 움직이는 것은 ‘톱다운식 정상 외교’를 선호하는 트럼프 당선인의 스타일을 고려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상계엄 선포에 책임이 있는 윤석열 정부 관계자들을 카운터파트로 인정할지는 미지수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트럼프 1기 인수위측은 “죽은 권력은 상대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국제사회가 이번 12·3 비상계엄 선포를 ‘친위 쿠데타’로 규정하는 경우 외교적 고립이 심화될 우려가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는 주요 20개국(G20) 등 주요 다자회의에서 외면당했고,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이 배제돼 왔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미 양국 간 메시지에도 미묘한 온도 차이가 보인다. 지난 6일 한미 외교장관 통화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한국 민주주의의 강한 복원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국회는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155분만에 비상계엄해제요구안을 통과시켰다.
반면 전날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 만남에서 양측은 “한미동맹이 흔들림 없이 유지, 강화되도록 함께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국 민주주의 회복력’에 대한 미국 측의 메시지가 빠져, 현 상황에 대한 미측의 우려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