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 변수에…유통·식품·화장품 업계 “내년 전략 전면 재검토”

소비 침체에 정치 불안·트럼프 2기까지 복합 변수

내수·수출 불확실성 증폭…미래 예측 가능성 하락

기업들, 신중·보수적 전략…현금 비축·고강도 긴축

 

15일 서울 중구 명동의 환전소. [연합]

[헤럴드경제=전새날 기자]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정치권발 악재가 실물 경제 전반을 뒤흔들면서 환율과 내수 경기에 민감한 유통·식품업체들이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내수 부진과 환율 급등,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등에 따른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이에 각 그룹과 주요 기업들은 사업별로 변수와 시나리오를 따지며 내년 경영전략의 전면 재검토에 나섰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정국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금융시장 동향과 내수·거시 경제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유동성 위기론으로 곤욕을 치른 터라 내부적으로 이번 사태가 몰고 올 파장에 대한 경각심이 큰 상황이다.

롯데는 사업군별로 대응 체계를 마련하는 중이다. 식품군은 과도한 환율 상승으로 수입 원자재 가격 부담이 커진 점을 반영해 원가 절감을 위한 생산 효율성 제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달러로 상품을 수입하는 면세점도 실시간으로 환율 변동을 살피며 대책을 숙고 중이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의 부재로 최악의 실적 부진을 겪는 면세점으로선 우려가 크다. 환율 상승으로 내국인 고객의 구매가 급감해 매출과 수익성이 더 악화할 수 있어서다.

소비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유통군 역시 내수 경기가 더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판촉 마케팅 강화, 기획 상품 확대 등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해외 신선·가공식품 수입이 많은 마트는 결제 화폐 변경, 수입선 다변화 등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커피 제품. [연합]

최근 유동성 위기설의 진앙이 된 롯데케미칼은 일단 환율 변동의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해외에서 들여오는 원자재 가격과 함께 수출가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미 제조된 재고 상품의 경우 판매가 상승에 따른 수익성 개선 효과가 좀 더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룹 안팎의 관심은 내년 1월 중순께 예정된 상반기 VCM(Value Creation Meeting·옛 사장단 회의)이다. VCM에는 신동빈 그룹 회장과 신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부사장)을 비롯한 지주 대표이사와 실장, 각 사업군 총괄대표, 계열사 대표들이 참석한다. 올해 사업 성과와 내년 연간 사업 목표, 영업 전략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유동성 위기설에 이어 탄핵 정국이라는 예상치 못한 경영 환경 속에 개최되는 회의인 만큼 신 회장이 그룹 임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 주목된다.

신세계그룹과 CJ그룹도 탄핵 정국에 따른 사업상 변수를 하나하나 따져보며 최대한 신중하게 대응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정용진 회장이 주재하는 관련 회의나 메시지는 아직 없었다. 비상계엄 이전에 수립된 중장기적 경영전략도 아직 수정된 바 없다”라며 “일단 내부적으로 정국 추이를 주시하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CJ그룹도 비상계엄 사태가 발발하기 이전에 이미 내년도 경기 전망을 어둡게 보고 보수적인 관점의 경영 전략을 준비해 왔다.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연합]

식품업계에서는 정국 불확실성을 고려해 중요 의사 결정을 미루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농심은 부산 녹산 수출공장 건립 등 이미 결정된 사업 외에 신규 투자 계획 수립을 미루고 있다. 농심 관계자는 “경영전략에 따라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변수가 너무 많아 지켜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식품·화장품 등 소비재 업종에선 최근 수년간 한류를 등에 업고 고공 행진해온 수출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관세 폭탄’을 예고한 2기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이 임박한 가운데 국가이미지와 신인도 추락이라는 악재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화장품 업계 한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인 화장품에 10∼20%의 관세가 부과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라며 “업계로선 환율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에 더해 관세 리스크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해외 거래처에서 아직 주문을 취소하는 등의 일은 없다”라면서도 “앞으로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라고 했다.

기업들이 달러화 등 현금을 확보해 두는 한편 수익성을 중심에 둔 사업·인력 구조조정 등의 고강도 긴축을 병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유통 사업 등의 주요 기업들이 올해 저수익 사업군을 중심으로 인력과 조직, 사업 효율화에 몰두했는데 내년에도 이런 기조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라고 짚었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