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조1112억엔→12월 9949억엔
차익실현 나선 투자자들 엔화 매도
최근 미국 달러만 오르는 장세가 이어지자 일본 엔화 환차익을 노리는 ‘엔테크족’이 투자금을 거두고 있다. 이로 인해 주요 시중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은 1조엔대가 깨졌다. 일본은행(BOJ)이 트럼프발(發) 불확실성에 신중한 통화정책을 취하면서 금리 인상이 예상보다 더딜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면서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엔화예금 잔액은 9949억엔 (24일 기준)으로 집계됐다. 이는 11월 말(1조1112억엔)과 비교해 1163억엔(10.5%) 줄어든 수준이다. 5대 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은 ‘엔테크’ 열풍에 지난해 9월 1조엔을 돌파한 후 올 6월 말 1조2929억엔까지 불어났지만 현재 1조엔을 밑도는 상황이다.
이달 들어 매도세도 두드러졌다. 지난달 100엔당 900원을 밑돌았던 엔화 가치는 비상계엄부터 탄핵 사태까지 정치 불안이 이어지면서 940원대로 크게 올랐다. 이후 지난 19일 일본은행의 금리 동결 결정 과정을 거치면서 최근 920원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이 사이 원·엔 환율의 변동 폭이 그렇게 크지 않을 수 있다고 판단한 엔테크족들이 차익 실현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문남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12월 BOJ 금융정책결정회의가 금리 동결 과정에서 내년 금리 인상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구체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내년 트럼프 취임 전후 대외 정세를 확인하고 물가, 고용 등 관련 지표에 대한 추가 정보를 확인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면서 “이로 인한 엔화 매도세가 우세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도 금리 인상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우에다 총재는 지난 25일 일본경제단체연합회 행사 강연에서 금리 인상 시기와 관련해 “향후 경제·물가·금융 상황에 달렸다”면서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또 “도널드 트럼프 차기 미국 정권의 경제 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크다”고도 언급했다.
이와 함께, 달러 강세로 아시아 통화가 전반적으로 약세를 보이는 점도 엔테크 투심을 얼어붙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26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는 1460원을, 엔·달러는 157엔을 다시 뚫었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원화 약세 압력이 거세지고 있지만, 일본도 157엔을 재돌파하는 것을 보면 전방위 달러 강세가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주식시장에선 엔 선물 ETF(상장지수펀드)의 순자산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시장에서도 투자금을 회수하려는 수요가 몰리기 때문이다. 엔화 예금처럼 엔화 가치가 오를 때 수익이 나는 ‘엔 선물 ETF’가 대표적이다. 코스콤 체크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 24일까지 ‘TIGER 일본엔선물 ETF’의 순자산은 119억4800만원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엔테크족들 사이에선 엔화만 투자하는 상품보다 미국 지수까지 베팅할 수 있는 상품에 눈을 돌리려는 수요도 포착된다. 엔화로 미국 증시에 투자한다면 환차익을 챙기지 못하더라도 미국 주요 지수가 오르면서 손실 완충이라도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최근 한 달간 국내 투자자는 엔화로 미국 대표지수인 나스닥100지수에 투자하는 ‘닛코 리스티드 US 에쿼티(나스닥100) 엔화 헤지 ETF’를 272만달러(약 40억원)어치 사들였다. 이는 전체 일본 주식 순매수 2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유혜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