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값, 금융위기 이후 최대 하락
정부 “단호하게 시장 안정 조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이 가시화하면서 2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1480원대에 올라섰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 16일(1488.0원) 이후 15년 9개월만에 최고 수준이다. 환율이 천장을 뚫으면서 증시에선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 나갈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정은 전례없는 속도로 예산을 집행해 현 상황이 악화하는 것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날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11시 1분 기준 원/달러 환율이 1481.30원을 나타내고 있다. 임세준 기자 |
원화 가치가 끝없이 떨어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460원에 이어 1480원마저 돌파하며 ‘환율 천장’이 뚫렸다. 지속되는 정치 불확실성과 무서운 고환율 속도에 소비·기업심리까지 급속도로 얼어붙으면서 한국 경제가 금융위기 이후 최대 위기로 치닫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관련기사 2·3·5면
외환당국은 이에 ‘단호한 조치’를 강조하며 시장 다잡기에 나섰다. 과도하게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외환보유고를 이용한 달러 매도 개입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겠단 의지로 풀이된다.
2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오전 장중 한 때 1482.3원(11시 3분 기준)까지 치솟았다. 전거래일 주간거래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 1464.8원)보다 2.7원 오른 1467.5원에 출발한 이날 환율은 상승폭을 확대해 장중 1480원까지 넘어선 것이다.
원화 가치가 이정도로 폭락한 사건을 찾으려면 약 15년 9개월 전으로 시계를 돌려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은 당시 환율이 1488.5원(2009년 3월 16일)이었다.
가장 큰 요인으로는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불신이 커졌단 분석이다. 실제로 이날 엔/달러 환율은 157.74엔으로 0.16% 내리고 있다. 우리나라 원화 가치만 유독 곤두박질 치고 있는 것이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엔/달러와 우리나라 환율이 같이 움직인다면 달러 강세에 따른 일부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란 점에서 다소나마 안도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면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며 “우리나라 경제 기초체력(펀더멘탈)이 안 좋다는 얘기이기 때문인데, 실제로 지금 상황을 보면 그런 것 같다”고 지적했다.
외환당국은 이에 적극적인 개입을 강조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이날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세훈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등과 함께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F4)를 열고 이날 “한 방향으로의 쏠림이 과도할 경우 단호하게 시장 안정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최근 대내외 상황, 특히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 등으로 금융·외환시장 불확실성이 크게 증가했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관계기관이 긴밀히 공조해 시장 상황을 24시간 점검·대응해 나가기로 하였다.
이들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선 국정 중단 가능성에 대한 대내외 불안요인을 신속히 정치적으로 해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정치 상황에도 시장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특히 한 방향으로의 쏠림 현상이 과도할 경우 단호하게 시장안정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홍태화·김용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