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내년 美 고금리 장기화로 달러 강세” 1500원도 위협

‘2025년 글로벌 경제여건 및 국제금융시장 전망’
1480원 돌파하자 한은 5조 규모 RP 추가 매입
정국 불안·경제 악화·엔화 약세 등 ‘3중고’ 겹쳐
트럼프정부 출범 전후 원/달러 1500원 운명 달려

내년에도 미국 달러가 더욱 강세를 달릴 수 있다는 한은 분석이 나와 긴장감이 고조된다. 원/달러 환율이 7.5원 오른 1475.0원으로 개장한 30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모습 [연합]

[헤럴드경제=홍태화·유혜림 기자] 내년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이 제기돼 달러가 더욱 강세를 보일 수 있다는 한국은행의 경고가 나왔다. 비상계엄 이후 갈수록 커지는 국내 정치 리스크와 경기 침체 여파가 겹쳐 내년에도 원화값 하락 위기는 쉽사리 해소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에 공포의 원/달러 ‘1500원’ 가능성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30일 한은 외자운용원은 ‘2025년 글로벌 경제여건 및 국제금융시장 전망’ 보고서에서 “2025년 중 미 달러화는 관세·이민·감세 등 트럼프 정부의 정책 시행에 따른 디스인플레이션 추세 정체(또는 인플레이션 재점화) 우려로 연준의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이 대두하면서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를 향한 탄핵안도 가결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권한대행을 이어받은 초유의 정치 불안 속에 한은의 예고대로 미국의 달러 강세까지 내년에 더해지면 국내 고환율 심각성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이 같은 불안에 이날 개최된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에서 이창용 한은 총재 등은 “지금과 같은 불안정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대외신인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우리경제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충격이 더해질 수 있어, 국내 정치상황이 조속히 안정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유동성 공급 확대를 위해 원/달러 환율이 1480원선을 뚫었던 지난 27일 한은은 5조원 규모의 환매조건부증권(RP) 추가 매입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당국의 대응에도 환율 상황이 안정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점이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오전 9시24분 기준 1474.1원을 기록했다. 직전 정규장 종가 대비 7.5원 오른 1475.0원에 개장한 직후 1472.0원까지 떨어졌지만 다시 상승폭을 키워 1474원 부근에서 공방을 벌이고 있다. 지난 27일 환율은 장중 한때 1486.7원까지 치솟으면서 1500원선을 위협했다.

국내 환율 시장 불안에 대해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대통령이 탄핵 심판을 기다리는 가운데, 임시 지도자까지 쫓겨날 수도 있다”며 “기업·소비자 신뢰도가 떨어지고 환율이 급등하는 등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적인 고통을 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문다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외환시장에 나타나는 정국 불안 경계감은 계속될 것”이라며 “특히 내년 초에는 트럼프 집권을 앞두고 있는데, 이때 우리 정부의 리더십 부재에 따른 협상력 약화가 부각되면서 원화 고유의 약세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국내 경기 체력도 악화하고 있다. 계엄 사태 이후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자 소비 심리는 얼어붙고 ‘연말 특수’도 사라졌다. 심지어 중국발 저가 공세로 국내 제조업 경기는 악화하고 있다. 대내외 환경이 나빠지면서 내년 GDP성장률의 하방 압력도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12월 소비자심리지수는 88.4로 전월대비 12.3p 급락했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 당시 기록했던 2020년 3월(-18.3p) 이후 가장 큰 하락 폭이다. 기업들의 체감지수도 급락했다. 12월 제조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전월보다 6p 하락한 62를 기록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국내 경제 펀더멘탈 약화는 결국 원·달러 환율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면서 “국내 외환건전성은 양호한 상황이지만 정국 불안 장기화 리스크로 인한 성장 둔화 및 국가신인도 하락 등은 환율의 추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변국 통화 사정도 녹록지 않다. 내년 트럼프 재집권을 앞두고 달러화 가치만 나 홀로 치솟고 있다. 글로벌 금융 위기 때 달러당 97.7엔이던 엔화 환율은 최근 158.1엔으로, 6.8위안이었던 위안화 환율은 7.3위안으로 올라섰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엔화 강세에 따른 원화의 수혜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가 1월 금리 인상 언급을 회피한 이후로 엔화 약세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취임 직전 원·달러 환율의 시작점이 어디에 위치하는지에 따라 내년 환율 경로가 달라질 수 있다”면서 “만일 환율이 안정되지 않는다면 내년에 1500원대 환율도 열어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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