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비 분담금 인상 재협상 시도 가능성
“경제협력 협상 지렛대 연계 정치력 필요”
리더십 부재 ‘한국 패싱’ 북미협상 우려
지난해 3월 비무장지대 인근 군사 훈련장에서 미군 병사들이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을 준비하고 있다. [로이터] |
“점잖게 말한들 끔찍한 난장판, 힘으로 평화를 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트럼프의 외교정책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2기 행정부에서 더 선명해지는 외교 키워드는 ‘팽창적 미국 우선주의’와 ‘신(新)고립주의 심화’이다.
‘미국이 세계 경찰 노릇을 계속할 수 없다’고 공언해온 트럼프 당선인은 신고립주의적 대외정책을 통해 미국에 이익 이되는 분야에서만 압박을 통한 양자협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동맹국들을 상대로 ‘방위비 전쟁’에 나선 것이 단적인 예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해 12월 인터뷰에서 동맹의 주축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에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며 미국의 탈퇴를 시사하는 등 초강경 입장을 재확인했다.
나아가 트럼프 당선인은 단순한 고립주의가 아닌 적극적 팽창을 통해 국익을 추구하는 의도도 내비치고 있다. 지난달 ‘캐나다는 미국의 51번째주’부터 ‘그린란드 매입’, ‘파나마 운하 반환’까지 우방국의 영토 주권을 위협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은 것도 그 연장선이다. 중동과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두개의 전쟁’에는 종지부를 찍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이 가장 염려하는 외교·안보 리스크는 ▷방위비 인상 ▷주한미군 감축 ▷북미 관계 등으로 요약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나는 김정은과 제대로 상대한 유일한 사람” “나와 잘 지내는 사람”이라고 거듭 언급해 북미 정상간 직접 접촉 가능성을 시사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국정공백의 장기화는 동맹 간 신뢰 손상”이라며 “트럼프 당선인 개인은 경제적, 군사적으로 강하고 유능한 동맹만을 자산으로 인정하고 취급하려고 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국내 정치적 혼란 수습을 빨리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공식적으로 복귀한 이후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재협상을 시도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입을 모은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최근 주한미군 규모를 현 수준인 2만8500명으로 유지한다는 내용을 담은 2025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에 전격 서명했음에도 정권이 바뀌면 이를 뒤집을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가 현실로 다가올 경우를 대비한 협상도 한국 정부에서 이끌어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보람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 연구위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 가능성이 있고,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양보해야할 가능성도 있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협상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재성 동아시아연구원(EAI) 국가안보연구센터 소장 겸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는 “트럼프 당선인이 방위비 협상을 압박하는 것은 국방과 안보에 대한 마스터플랜이 있기보단 자국 내 정치에서 경제 활성화와 연결된 문제”라며 “최근 발언들은 협상을 본격 시작하기 전 유리한 조건을 만들기 위한 언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짚었다.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대응 방안에 대해선 “한국이 지금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방위비 지출이 유럽 국가들보다 월등히 높았고, 방위비 분담금도 높은 수준이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 제시된다. 방위비 협상을 지렛대로 한미 경제 협력을 연계하는 데에 정치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전재성 소장은 “방위비 총액 기준이 아닌 구체적인 항목 기준으로 방위비 부분 인상을 검토하는 접근도 가능하다”면서 “동시에 트럼프 당선인이 중시하는 미국 내 투자, 공급망 재편, 한미 경제 협력을 통해 한국의 이익도 도모하는 것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권보람 연구위원도 “주한미군 역할의 유연성 확대, 방위비 분담 증대, 방산협력 증대 등 다른 안보, 경제 이슈와의 교환을 고려해 볼 수 있다”면서도 “다만 안보 대 안보 논리로 협상이 이루어질지, 안보 대 경제의 협상이 이루어질지 불확실하고, 이런 논의는 실무자 수준이 아닌 정상간 대화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현재 한국의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 리더십이 부재한 상태인 탓에 트럼프 당선인의 한국을 건너뛰는 이른바 ‘한국 패싱’이 현실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북한이 과거 북미정상회담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얻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정상회담을 성사시켜도 가시적인 성과를 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노동당 총비서)은 지난 해 12월 23~27일 열린 제8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1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선 “최강경 대미 대응전략”을 천명한 바 있다. 다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되진 않았다.
전재성 소장은 “현재 북한이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기술 개발을 중단하는 것은, 북한이 지속적으로 무기 개발을 통해 미국을 압박해 경제적 양보를 이끌어낼 카드이기 때문에 중단하기 어렵다”며 “트럼프 당선인이 원하는 것처럼 미국 본토에 대한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협상을 쉽게 이루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여기서 한국은 한국 나름의 북핵 비핵화 로드맵을 다시 정비해 트럼프 당선인과 조기에 대화를 복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 승리 전부터 공언해오던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 목표도 취임식이 다가오면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그동안 호언장담해온 만큼, 취임 이후 조기 종전을 위한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다만 트럼프의 기대만큼 우크라전의 종식이 쉽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 소장은 “핵심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전보장”이라며 “나토 가입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미국과 우크라이나 양국 간 안전보장 협약이나 우크라이나의 EU가입 등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 연구위원은 “미국이 여전히 패권국이라 할지라도, 미국의 의지만으로 미국이 원하는 방식대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쉽게 종결되진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개입 의지는 간접 지원마저 최소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이기 때문에 유럽 동맹국이 어떤 안보, 경제 역할을 자처할지가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김영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