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트컬쳐의 장지수 셰프. 헤럴드경제DB |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여사님께서 저를 따로 불러주셨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경험만큼 좋은 스승은 없다. 미식의 영역에서도 그렇다. 다양한 환경에서 쌓아올린 요리 경험보다 더 좋은 스승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장지수 셰프는 좋은 스승을 많이 만난 행운아다.
강릉 안목해변이 보이는 한적한 동네에 장지수 셰프가 운영하는 식당 미트컬쳐가 있다. “커피 한 잔 드릴까요?” 그곳을 찾은 우리를 장지수 셰프는 따뜻한 웃음으로 맞이했다. 커피를 앞에 두고 그는 우리에게 그의 음식 인생을 들려줬다.
“여러 곳에서 요리를 할 수 있었던 경험은 제게 정말 바꿀 수 없이 소중한 보물같은 거에요. 그런 경험들이 지금 저를 만들고, 앞으로 제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방향을 알려 줄 이정표가 될 테니깐요.”
인터뷰 중인 장지수 셰프. 헤럴드경제DB |
장지수 셰프가 처음 요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라고 한다. 저녁을 준비하는 어머니 곁에서 작은 손으로 재료를 조물조물 만지곤 했다. 그에게 요리는 가장 재밌는 놀이였다. 음식에 대한 애정, 요리에 대한 재능을 엿보신 어머니가 중학생인 장지수 셰프를 요리학원에 등록시키면서 본격적인 요리 인생이 시작됐다.
성인이 되고 양식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했지만, 당시 한국에서 제대로 된 양식을 경험하기란 어려웠다. 배움에 대한 갈증을 풀기 위해 그는 샌프란시스코로 떠난다. 스타 셰프인 마이클 미나가 운영하는 미슐랭 레스토랑에 들어가 체계화된 양식을 공부할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 여러 레스토랑에서 양식 셰프로서 기반을 다지던 그에게, 어느날 깜짝 제안이 들어왔다. 청와대에서 일해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몇 가지 기밀스러운 과정을 거친 뒤 청와대 양식 담당 셰프로 발탁이 됐다.
“2020년 2월 1일 첫 출근했던 날이 생생해요. 굉장히 추운 날이었는데, 출입증을 받고 관저에 걸어 올라가는 그 시간이 굉장히 길게 느껴졌어요. 대통령께서 샐러드를 드시고 싶다고 하셔서, 첫 음식으로 샐러드를 만들어 드렸어요.”
김정숙 여사와 오리콩피 요리. 청와대·kitchensanctuary 제공 |
청와대에서 근무한 2년 동안 그는 수 많은 요리를 했지만, 그 중 기억에 남는 요리는 ‘오리 콩피’다. 양식을 좋아하셨던 김정숙 여사가 극찬을 했던 요리기 때문이다. 콩피는 저온으로 가열된 기름에 오랜 시간 숙성하는 프랑스의 요리기법이다. 기름에 숙성하는 콩피 방식은 보존 기간도 늘어나고, 향을 끌어 올리며 기름의 풍부한 맛도 극대화한다.
“외국 귀빈들을 모시는 행사였는데, 오리 콩피요리를 내드렸어요. 행사가 끝난 후 여사님께서 저를 따로 찾으셨어요.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고 칭찬을 해주셨는데, 청와대 근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어요.”
정권이 교체되는 날 장지수 셰프도 청와대에서 짐을 챙겨 나왔다. 그의 다음 여정은 기업이었다. SPC 삼립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이 왔고, 식품 연구개발(R&D) 파트에서 일을 시작했다. 셰프복을 벗고 양복을 입고 시작한 회사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주방이 그리웠다고 한다. 고민 끝에 퇴사를 결심하고, 2024년 강릉에 터를 잡고 다시 셰프복을 입었다.
“회사에서도 많은 것을 배려해주고, 몸은 편했지만 왜인지 주방이 그리웠어요.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멘 제 모습이 어색했다고 할까요. 뜨거운 불이 일렁이고, 온갖 식기들이 날아다니 듯 움직이는 주방의 활력을 다시 느끼고 싶었어요. 주방이 그렇게 힘들다 생각했는데, 사실 저는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었나봐요. 그래서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요”
요리를 하는 장지수 셰프. 헤럴드경제DB |
“맛있는 음식의 조건, 8할은 재료입니다.”
장지수 셰프가 음식을 만들 때 가장 우선시 하는 게 재료다. ‘좋지 않은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없다’는 지론으로, 언제나 재료를 고르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장지수 셰프의 스승인 세계적인 셰프인 마이클 미나. Restaurant Hospitality |
재료에 대한 집착은 스승인 마이클 미나로부터 배운 것이었다. 마이클 미나의 레스토랑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하루 14시간 근무를 해야 했으며, 새벽 2시가 넘어 끝나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저녁에만 200명이 넘는 손님을 위한 요리를 만들어야 했다. ‘주방 군기’도 강해 동작이 느리거나 실수를 했다간, 욕설이 날아들었다.
그곳에서 경험이 그저 고통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장지수 셰프는 재료를 대하는 마음가짐과 재료를 다루는 체계화된 방법 등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재료를 다루는 방법뿐 아니라 재료를 대하는 자세, 마음가짐을 배울 수 있었어요. 예를 들어, 연어가 바다에서 자라 어부에게 잡히고 손님에게 갈 때까지 중요하지 않은 순간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했어요. 재료를 존중해야 해요. 그리고 나서 재료를 다루는 법이라든지 재료를 보관하는 법을 배우는 거죠. 재료를 존중하지 않으면,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없어요.”
장지수 셰프가 강릉에서 잡힌 곰치로 만든 아쿠아팟짜. 장지수 셰프 제공 |
좋은 재료를 구하기 위해 그는 레스토랑 문을 여는 날이면, 오전 6시부터 주문진 새벽시장에 나간다. 그곳에서 강릉 바다에서 건진 싱싱한 해산물을 고른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등 육류도 강원도산을 사용하고 있다.
“프렌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재료의 맛을 극대화하는 거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재료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해요. 요리가 다 끝난 후에도 재료의 향이 많이 남아야 좋은 요리에요. 그렇기 때문에 향과 맛이 뚜렷한 재료를 최고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요즘은 당도만 챙기고 고유의 향과 맛은 흐린 재료들이 너무 많아 아쉬워요.”
강릉의 양미리로 만든 양미리 카포나타. 장지수 셰프 제공 |
미트컬쳐라는 이름답게 그의 식당에서는 생선과 육류를 중심으로 아메리칸-프렌치 스타일의 요리를 주력으로 하고 있다. 그는 지금 미트컬쳐에서 먹을 수 있는 디쉬로 ‘양미리 카포나타’를 추천했다. 이탈리아 시칠리 음식인 카포나타는 원래 엔초비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장지수 셰프는 강릉 지역의 양미리를 사용했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요리를 해왔지만, 여전히 장지수 셰프의 요리 인생은 열정 가득한 ‘청춘’이다. 끝을 둔 목표는 두지 않았다. 새롭고 재밌는 요리에 대한 열망이 그치지 않는, 그의 요리 인생이 앞으로도 기대되는 이유다.
“아직 뚜렷한 목표가 있다기 보다는 요리를 더 재밌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새롭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많은 이에게 맛보여 주고 싶어요. 오랜 시간 즐겁게 요리를 하는 요리사가 꿈이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