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시간”…2030남성의 기이한 반란

분노세대 너새니얼 포퍼 지음 김지연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 1. 2025년 1월,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혐의로 구속되자 이에 반발한 극성지지자들이 분노를 터뜨렸다. 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법이 그들의 타깃이 됐다. 격앙된 이들은 서부지법을 습격해 판사를 찾았다. 창문을 산산이 부쉈고, 스크린도어를 깼으며 집무실을 침탈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쇠파이프를 손에 쥔 채 법정 안을 난폭하게 헤집던 이의 절반 이상이 20~30대 남성이었다.

# 2. 2021년 1월, 비디오게임 소매회사인 게임스톱의 주가가 폭등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20~30대 남성이 주축인 미국 최대 온라인커뮤니티 레딧의 주식토론방인 ‘월스트리트베츠’ 회원들이 조직적으로 매수에 나섰기 때문이다. 거대 금융기관으로 구성된 공매도 세력을 응징해야 한다는 이들의 거대한 분노가 동인이 됐다.

서로 다른 상징적인 두 사건,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같다. 최근 젊은 남성 사이에서 강하게 나타나는 집단적 분노가 현실에서 통제 불능의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 미국 블룸버그 뉴스편집자인 저자는 이번에 국내 번역된 ‘분노세대’에서 기존 시스템에 대한 젊은 남성 세대의 반발이 오늘날 금융시스템과 정치질서를 뒤흔드는 기이한 현상에 주목한다. 저자는 여러 세대에 걸쳐 먹이사슬의 최상위를 차지했던 20~30대 남성이 언제부터인가 젊은 여성들에게 뒤처지고 있다는 증거가 감지됐다고 분석했다. 게다가 진보적 시민운동이 확산되고 정치적 올바름(PC주의)이 강조되면서 젊은 남성들의 사회적 입지도 상대적으로 줄었다. 과거에는 당연시됐던 남성의 특권이 오늘날에는 사회적 비판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이에 이들은 불만이 쌓여갔다. 여성과 소수자의 권리가 강화된 데 비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목소리는 없다고 느꼈다.

이렇다 보니 월스트리트베츠와 같은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는 현실에서 좌절한 젊은 남성들에게 만족스러운 피난처가 됐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이곳에서 사회적으로 억눌린 분노는 점점 커져 갔다. 젊은 남성들의 감정을 가장 잘 대변한 인물은 바로 대표적인 기존 세대인 도널드 트럼프였다. 그는 거침없는 공격적 언행과 반체제적인 태도로 이들에게 절대적인 인기를 얻었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단순한 소통 공간을 넘어 인종차별과 여성혐오가 만연한 집단문화를 만들어냈다. 일론 머스크 역시 이들의 영웅이었다. 머스크는 ‘트롤링(인터넷에서 공격적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 도발하는 행위)’을 무기로 젊은 남성들의 지지를 끌어냈다.

분노가 향한 다음 대상은 금융시장. 이들은 자신을 소외시킨 폐쇄적이고 복잡한 기존 시스템을 뒤엎을 무언가를 찾았다. 그 답이 디지털 화폐였다. 그들에게 암호화폐는 기존 관습을 모두 무시할 수 있는 도전이자 한순간에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처럼 보였다.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는 자연스럽게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소셜미디어나 인터넷방송 등과 얽히게 됐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이들의 욕망은 걷잡을 수 없는 새로운 투기열풍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특정한 목적 없이 온라인상의 유행에 따라 만들어지는 ‘밈(meme) 코인’ 시장의 시가총액이 최근 한 달 새 2배 이상 폭등했을 정도다.

“현재 분명한 사실은 새롭게 떠오른 이 기이한 금융 생태계를 구성하는 세대가 미국 역사상 과거의 그 어떤 세대와도 다르다는 것 뿐이다. 금융 생태계의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기에 월스트리트베츠 이야기보다 더 좋은 출발점은 없다.” 이정아 기자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