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96도 극저온 견디고 제작도 수월”…60조 新시장 이끄는 ‘철강 히든카드’ 고망간강 [넥스트 게임체인저]

‘메이드 인 코리아’ 신소재, 2013년 포스코 개발
LNG 등 에너지 시장서 활용도 높아
향후 군용 선박·자동차용 철강재로도 기대
장인화 포스코 회장 “기술 경쟁력 확보” 강조


<편집자주> 게임체인저(Game Changer). 시장의 흐름을 통째로 바꾸거나 판도를 뒤집어 놓을 수 있는 기술, 제품, 인물, 기업, 서비스 등을 뜻하는 말입니다. 산업은 기술의 총화(總和)라고 합니다. 특히 시대가 흐를수록 ‘게임’을 ‘체인지’할 수 있는 미래 기술의 선점력이 그 기업, 그 나라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입니다. 헤럴드경제는 앞으로 우리 기업들이 전세계 산업 구도를 재편할 수 있는 ‘넥스트 게임체인저’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개발·상용화되기만 하면 가공할 만한 위력을 지닌 기술들을 연속해서 소개합니다.

포스코가 독자개발한 고망간강이 적용된 광양LNG 터미널5호기 탱크 [포스코 제공]


[헤럴드경제=김성우 기자] 최근 불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철강업계에서 신소재인 고망간(Mn)강이 ‘넥스트 게임체인저’로 주목받고 있다.

고망간강은 기존 철에 다양한 성능 구현이 가능하도록 망간을 첨가해 제작한 신소재 철강을 말한다. 고강도·내마모성·극저온인성·비자성(자석에 반응하지 않는 성질) 부문에서 강점을 가진 소재로, 주로 에너지 시장에서 쓰임이 높은 제품이다.

현재는 주로 에너지 보관 및 운반용 소재 분야에 주로 사용되고 있지만 향후 군용 선박이나 자동차, 파이프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될 것으로 업계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전문기관 비즈니스 포춘인사이트가 전망한 ‘글로벌 망간 합금 시장’ 규모는 지난 2019년 256억1570만 달러(약 37조원) 수준이었지만, 오는 2027년에는 420억440만 달러(약 60조8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연간 성장률이 7.4%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망간 합금 시장에서 고망간강은 기술력 측면에서 특히 구현이 어려운 제품으로 꼽힌다. 망간은 소재 특성상 밀도가 높은 성질을 지니고 있어 단단하지만, 그만큼 부서지기 쉽기 때문이다. 망간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더 잘 부서지는 성질을 지닌다.

하지만 포스코는 기술 개발을 통해 망간을 22.5~25.5% 비중으로 포함시키면서도 쉽게 파손되지 않는 제품으로 구현해 내는 데 성공했다. 지난 2010년 개발에 착수해 4년여 만인 2013년에 개발을 마쳤다. 포스코가 개발한 고망간강은 기존의 강재인 스테인리스강이나 9% 니켈강 등에 비해 인성(파괴하는 힘에 대한 저항강도)과 인장강도(잡아당기는 힘에 버티는 정도)가 우수하고, 영하 196도에서도 파손되지 않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극저온용 고망간강의 경우 지난 2019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국제 해사안전위원회(IMO) ‘제100차 해사안전위원회’에서 국제기술표준으로 승인을 받으며 업계에서 본격적인 터닝 포인트를 맞게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포스코가 제작한 고망간강 소개영상 갈무리


IMO는 UN 산하 기구로 176여개의 회원국이 참여해 전 세계 해운 및 조선 관련 기술기준과 해양 환경 관련 국제규제를 제정하는 기관이다. IMO에서 인증을 받은 기술은 향후 다양한 선박 기술에서 쓰임이 많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IMO 규격 등재는 4년을 주기로 승인이 이뤄지기 때문에 짧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회원국들의 지지를 받아야만 하는데도 그와 같은 허들을 모두 극복해 낸 것이다.

특히 LNG(액화천연가스) 탱크용 소재로 고망간강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이 분야에서 주로 니켈합금강이 사용돼 왔지만, 니켈이 일부 국가에서만 생산되고 수급이 불안정해 큰 가격변동이 있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됐다.

반면 망간은 전 세계적으로 생산량이 풍부하고, 상대적으로 가격도 저렴한 성격을 지닌다. 고망간강 제품은 업계에서 쓰임이 많았던 9%니켈강보다 가격이 약 30% 저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통해 현재 고망간강은 육상 LNG 터미널 저장 탱크나 LNG 차량 탱크, LNG 이송 및 연료추진선박의 저장 및 연료탱크 등으로 에너지분야 전반에서 적극적인 활용이 이뤄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포스코인터내셔널의 광양 제LNG터미널의 5·6호기 탱크가 고망간강으로 제작돼 있다. 현재 공사 중인 7·8호기에도 고망간강이 투입되고 있으며, 또한 국내 조선사가 제작한 LNG 연료탱크 총 36대에 고망간강이 포함돼 있다.

포스코가 산업통산자원부 및 한국가스안전공사와의 협력을 통해 극저온 저장탱크로서의 안정성 검증을 위해 실증탱크를 제작, 약 1000회 이상의 LNG 채움 및 비움 시험을 비롯한 다양한 성능 시험을 시행하면서 결실을 얻어낸 것으로 풀이된다.

향후 신사업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마모성이 중요한 구리·석탄 광산에 쓰이는 슬러리파이프나 자동차용 강판 소재로서도 고망간강이 주목을 받는다.

또한 고망간강은 비자성 특성 탓에 저피탐 특성도 지니고 있어 향후 함정 등 군함의 선체로서도 활용이 가능하다. 해군의 함정은 적의 기뢰 위협에 대비해서 함정 자체를 은폐하거나, 실제로 방출하는 전자기 신호를 잘 관리할 필요가 있는데 고망간강으로 선박을 제작할 경우 이런 효과를 충분히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신광호 대한민국 해군 군수사령부 함정기술연구소 연구원은 앞선 논문에서 “주로 해양전에서 사용되는 지뢰는 선박에 큰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무기체계인데,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비자성을 띤 소재를 활용한 선박이 필요할 수 있다”라면서 “위급한 전시상황에서 선박과 승무원들의 생존을 결정할 수 있는 소재로서 고Mn강은 큰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고망간강이 활용가능한 분야 소개 [포스코 영상 갈무리]


고망간강의 빠른 상용화는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이 그동안 강조해 왔던 본원적인 경쟁력 강화의 성공 사례로 분석된다.

장 회장은 지난달 신년사를 통해 “포스코그룹의 경쟁력은 새로운 기술의 절대적 우위확보가 돼야 할 것”이라면서 “철강제품의 품질 혁신과 더불어 이용기술을 선제적으로 제안하면서 미래 성장산업군에서 핵심 고객과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올해 철강협회 신년인사회 자리에서도 장 회장은 “R&D(연구개발) 영역에서의 역량을 집중하여 수소환원 제철을 포함한 신기술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철강 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높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면서 “신기술 분야에서 국내 철강업계의 많은 기술 진전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룹 내 철강산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희근 포스코 사장도 “철강업계가 공급과잉과 성장둔화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수익 확보가 가능한 포스코만의 차별화된 마케팅이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면서 “친환경 분야의 성장과 전통산업의 위축이라는 철강업계의 트렌드에 맞춰서 판매와 생산, 연구소, 해외법인과 그룹이 원팀이 돼서 산업별로 판매방향을 설정하고 위기를 해쳐나갈 필요가 있다”고 임직원들을 독려했다.

이와 관련 포스코그룹 최고경영진들도 새로운 기술 개발을 위해 꾸준히 임직원들을 독려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포스코가 15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 1위로 선정된 것도 이같은 기술경쟁력 강조에 영향을 받은 결과로 여겨진다.

글로벌 철강 분석기관인 WSD는 앞서 발표한 ‘2024년 글로벌 철강사 경쟁력 순위’에서 포스코에 10점 만점에 8.62점을 부여하면서 전체 글로벌 철강사 1위로 순위 매겼다. 이는 미국 뉴코어나 일본 일본제철, 유럽 아르셀로미탈, 중국 바오우스틸, 미국 SDI, 유럽 타타스틸, 인도 JSW, 대만 CSC, 멕시코 테르니움을 제친 결과다.

1999년 설립된 WSD는 2002년부터 전세계 35개 철강사를 대상으로 기술 혁신, 생산 규모, 원가 절감, 가공비, 재무 건전성, 고객사 접근성, 원료 확보 등 23개 항목을 평가하고 있다. 특히 WSD의 순위는 주요 철강사의 경영 실적, 향후 발전 가능성을 평가 대상으로 매겨 기술 수준에 대한 평가도 이뤄진다.

또한 포스코는 지난해 10월 열린 ‘세계철강협회 스틸리어워드’ 시상식에서도 전체 6개 부문 중 ▷기술혁신 ▷커뮤니케이션 ▷교육·훈련 3개 부문에서 최고상을 수상했다. 새로운 기술을 창출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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