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행 중인 택시서 뛰어내렸다가 사망
1·2심 무죄…기사, 과실 없어
대법, 무죄 판결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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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게티이미지뱅크] |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오해가 부른 참극이었다. 고령의 택시기사 B(남·68)씨는 노인성 난청 증세가 있었고, A(여·20)씨는 목적지를 재확인한 B씨의 질문에 잘못 답했다. A씨는 차량이 다른 곳으로 향하자 자신이 납치된 것으로 오해했다. 택시에서 뛰어내렸다가 뒤이어 오던 차량에 치여 숨을 거뒀다.
수사기관은 B씨를 처벌해야 한다며 재판에 넘겼다. 청력 관리를 소홀히 한 과실 등으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과실(실수)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2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어땠을까.
사건은 지난 2023년 3월 오후 9시께 발생했다. 블랙박스에 따르면 A씨는 택시에 탑승하며 “○○대요”라고 했다. B씨는 “XX대 기숙사요?”라고 다시 물었지만 A씨는 “네”라고 답했다. B씨가 잘못된 방향으로 운전하자 A씨는 작은 목소리로 “이쪽 길 맞죠? 네? 기사님”이라고 물었지만 B씨는 답하지 않았다.
약 5분 뒤 A씨는 “아저씨, 저 내려주시면 안 돼요?”라고 물었지만 이번에도 B씨는 답하지 않았다. B씨는 청력이 약해 평소 보청기를 착용했지만 사고 당시엔 끼지 않았다. 납치될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한 A씨는 남자친구에게 카카오톡으로 ‘택시가 이상한 데로 가’, ‘무서워’, ‘내가 말 걸었는데 무시해’라고 보냈다.
남자친구가 곧바로 ‘전화 받아보라’며 답장을 보냈지만 A씨는 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했다. B씨가 계속 대답하지 않자 A씨는 시속 92km 속도로 주행하던 택시에서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그 직후 B씨는 “어, 어, 왜 이러냐”며 속도를 줄였다. 도로 2차로에 떨어진 A씨는 뒤이어 오던 SUV 차량에 치여 숨을 거뒀다.
사고 당시는 야간이었으며 주변에 가로등이 없었다. 사고 장소는 야간에도 차량 운행이 많은 곳이었다.
사건을 조사한 수사기관은 택시기사 B씨와 A씨를 들이받은 SUV 차량 운전자를 모두 재판에 넘겼다.
검사는 B씨에 대해선 “청력을 유지해 안전하게 택시를 운전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었다”며 “출발 후 2차례에 걸친 피해자의 목적지 확인 및 하차 관련 요청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했다.
또 SUV 차량 운전자에 대해선 “전방의 택시 조수석 뒷문이 열리는 등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했음에도 충분히 감속하지 않았다”며 “뒤늦게 급제동을 한 바람에 피해자를 충격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밝혔다.
1심은 B씨와 SUV 차량 운전자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을 맡은 대구지법 포항지원 형사1단독(부장 송병훈)는 2023년 11월 이같이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B씨는 출발 시점부터 목적지를 한동대 기숙사로 인식해 통상의 도로로 운행했다”며 “피해자가 겁을 먹고 빠른 속도로 주행하던 택시에서 뛰어내릴 것을 전혀 예견할 수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사고 발생 가능성을 예측할 수 없었으므로 과실이 없다는 취지다.
이어 “사고 당시 가로등이 없어 SUV 운전자가 피해자를 발견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제한속도를 지켜 주행한 이상 피해자를 미리 발견해 사고를 피하는 건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검사가 항소했지만 2심의 판단도 같았다. 2심을 맡은 대구지법 2-1형사부(부장 김정도)도 지난해 10월, B씨와 SUV 차량 운전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청력이 상당히 저하된 B씨가 치료를 받거나 보청기를 착용하지 않아 피해자의 불안감을 가중시킨 사정은 인정된다”고 했다.
다만 “피해자가 자신이 납치 당했다고 착각했더라도 B씨가 피해자를 폭행·협박하는 등 급박한 상황은 아니었다”며 “통상적으로 경찰에 신고해 위험을 벗어나려고 시도할 순 있어도 운행 중인 택시에서 뛰어내리는 극단적이고 위험한 방법을 시도할 것이라 예측하는 건 어렵다”며 무죄를 택했다.
이어 SUV 차량 운전자에 대해서도 “운전자가 피해자를 인지할 수 있던 때부터 피해자를 충격할 때까진 불과 1초 내외의 시간이 걸린 것으로 보인다”며 “당시 급제동했던 사정 등을 고려하면 안전하게 운전해야 할 주의의무를 어겼다고 보기 어렵다”고 역시 무죄를 선고했다.
검사는 2심 판결에 대해서도 불복하며 대법원에 상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 역시 같았다.
대법원은 “원심(2심) 판단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모두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