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역세권 신축인데 빈집 못채워
강남3구 오피스텔도 미분양 속출
중저가 밀집지역 문의조차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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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9개월째 미분양 물량이 남아있는 서울 도봉구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 김희량 기자 |
“2000만원짜리 발코니 확장 옵션도 공짜라니까요. 일반 분양자들은 방마다 600만원씩 내고 설치한 시스템 에어컨이랑 중문, 드레스룸까지 그냥 드려요. 그래도 안 나가네요.” (구로구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
지난 14일 오전 방문한 서울 구로구 개봉동 한 아파트. 지난해 12월 입주를 시작한 이 단지 곳곳에는 ‘입주 환영’ 현수막이 걸려 있지만 활기는 없었다. 단지 내 상가 내부는 불 켜진 곳이 없어 적막함을 넘어 을씨년스러웠다. 입주를 시작한 이 아파트 3개동 317가구 중 17~18가구는 여전히 비어있다. 분양이 2023년 9월 시작된 것을 감안하면 2년 반 가까이 주인을 찾지 못했다. 5000만원 마피(마이너스 프리미엄)도 등장했다.
▶지난해 서울 미분양 3채 중 2채가 ‘준공 후 미분양’=부동산 시장 핵심지로 꼽히는 서울에서도 미분양이 속출하고 있다. 신축 아파트 선호 트렌드인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도, 초역세권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 불패’라 불리며 집값 안전지대라 불렸던 과거와 달리 미분양 주택 수는 2021년 54호에서 2022년 994호으로 급증해 3년째 900여호 수준(12월 말 기준)을 유지 중이다.
특히 준공 후 미분양을 뜻하는 ‘악성 미분양’은 지난해 12월 말 기준 633호로 전체(957호) 중 66%에 달했다. 코로나19 전후 공급 물량이 증가했지만 시장 침체 속 미분양 주택도 덩달아 늘어난 탓이다.
업계에서는 서울 지역 극소수 초고가 아파트의 신고가 거래에 서울 지역의 부동산 경기 위축이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본다. 미분양 집계가 ‘자진신고’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은 미분양까지 감안하면 서울지역에서도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맞먹는 경기 악화가 진행되고 있을 것이란 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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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당 1억 우습다는 강남서도 미분양=실제 강남 3구에서도 미분양이 속출하고 있다. 2021년 말 분양을 시작한 서울 서초구의 한 오피스텔은 3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도 전체 150여세대 중 절반이 넘는 물량이 주인을 찾지 못했다. 오피스텔이라곤 하나 주거용으로 지었기 때문에 시장 호황기엔 ‘주택’으로 받아들여지던 곳이다. 입지도 3.3㎡ 당 1억이 우습다운 반포 인근이다.
바로 인근에 짓고 있는 또다른 주거용 오피스텔 역시 수분양자를 찾기 위해 시행사와 건설사가 애를 쓰고 있다. 각종 금융 혜택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 주인을 다 찾지 못했다.
억대의 할인이 들어간 곳도 있다. 강서구 내발산동 한 아파트는 발산역까지 1분 거리인 초 역세권이다. 2023년 12월 첫 청약을 진행했는데 45세대 중 12세대는 미분양됐다. 소규모 단지라 외면받았다고 하지만, 경기가 좋을 때 서울서 역세권 미분양은 예상치 못한 일이다. 인근에 상급병원인 이대병원이 있고 명덕고등학교 등 학교가 있어도 외면받고 있다.
준공 후 입주가 시작됐는데 분양 세대 중에서도 입주를 미룬 곳이 많아 입주율은 10% 정도다. 밤이 되면 불켜진 집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막하다. 이렇다보니 분양을 위해 계약금을 최대 1억8000만원까지 깎아주고 있다.
분양사무소 관계자는 “현재 입주 완료된 집은 3세대 정도로 계약된 집들은 3~5월 잔금 납부를 앞두고 있다”면서 “중간층 9억원대 가격을 7억2000만원~7억4000만원으로 낮추자, 계약이 조금씩 이뤄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2010년대 초반 이후 사라졌던 ‘안심보장제’가 부동산 시장에 다시 등장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안심보장제란 계약자가 부동산을 계약한 뒤 시행사 또는 분양대행사가 할인 분양 등 새로운 혜택을 제공할 경우 기존 계약자들에게도 이 혜택을 소급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분양업계 관계자는 “분양을 밀어내기 위해 할인이나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데 이전 계약자들에게도 이 혜택을 함께 제공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면서 “할인 분양 등이 늘어나자 기존 계약자, 신규 계약자, 시행사 및 분양대행사 간 갈등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지하철역 도보 3분 주상복합 상가가 3년째 통으로 비어있어=서울 지역 미분양은 중저가 주택 밀집 지역일수록 ‘입지’와 무관하게 나타나고 있다. 도봉구에 있는 주상복합도 2022년 5월 최초 분양한 뒤 2년 9개월 가까이 지난 지금도 10세대가 미분양이다. 이 지역에서 사실상 유일한 신축이면서 4호선 도보 3분 거리인 역세권이지만 이달 3차 임의공급까지 진행하게 됐다.
창동의 B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지난해 11월에 올린 매물이 있는데 문의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집주인들이 전화 와서 자기가 정한 전세 가격이 적당한지 묻더라”고 말했다.
주상복합인 이 건물의 상가 또한 통으로 비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미분양이 인근 지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보여주는 예다. 인근의 C 공인중개업소에서는 “병원이 들어오려고 하는데 상가를 여러 칸 사서 세를 내 줄 주인이 나타나지 않아 입주가 늦어지는 걸로 안다”고 전했다.
김희량·정주원·서영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