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사 상황 수시 검토·AI 중심 재조정 명확
한때 219곳 달한 소속회사 규모 감축 속도
중간 지주사 산하 자회사 재편 등 잇따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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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 [연합] |
[헤럴드경제=고은결·한영대·김민지 기자] SK그룹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고강도의 사업 리밸런싱(Rebalancing·재조정)을 이어가고 있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은 빠르게 정리하고, 인공지능(AI) 중심으로 재투자한다는 방향성이 더욱 명확해지고 있다. 한때 인수합병(M&A)을 통한 세 불리기에 나섰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조만간 소속회사 수가 200개 밑으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19일 SK에 따르면 그룹은 리밸런싱 기조 하에 ‘운영개선(O/I·Operation Improvement) 2.0’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시작된 ‘운영개선 1.0’이 단순히 비용을 줄여 재무구조 안정화를 꾀하는 차원이라면, 2.0은 제조나 마케팅 등 운영 역량을 제고해 본원적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단계다.
리밸런싱 작업에 돌입한 이후 그룹 핵심 컨트롤타워인 수펙스추구협의회의는 관계사로부터 주제별·업종별 보고를 받아왔다. 특히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의 디테일한 리더십 하에 실적 악화 원인 파악에 골몰하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부터 의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최창원 의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임 아래 그룹 전체 사업을 전면 검토하고 있다. 수익성이 떨어진 사업의 매각을 주도함과 동시에 미래 먹거리를 선별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SK 사정에 정통한 한 고위 관계자는 “최창원 의장이 마이크로 단위로 사업을 일일이 살펴보니 임원들이 사업 검토에 더욱 신경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룹 내에선 운영개선 1.0 작업이 안정화됨에 따라 올해는 새로운 판을 벌리기보다는 기존 핵심 사업 경쟁력 강화에 골몰하자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아울러 향후 운영개선 3.0에 진입하면 시장·고객 수요 변화에 대응하는 ‘기술 역량 중심으로의 진화’ 단계에 도달하게 될 것으로 회사 측은 보고 있다. 연중 예정된 굵직한 C레벨급 회의(6월 경영전략회의·8월 이천 포럼·10월 CEO 세미나)를 통해서도 관련 논의가 재차 가다듬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외적 상황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다만 국내 산업계를 흔든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딥시크 쇼크 등으로 리밸런싱 작업의 대세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룹의 주력 사업 중 ‘관세 폭탄’으로 당장 치명적 위기에 몰린 분야는 없으며, AI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사업 조정은 꾸준히 이어간다는 점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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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계열사 위주의 리밸런싱은 올해도 계속될 전망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달 발표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등의 소속회사(계열사 등) 현황’에 따르면 이달 기준 SK그룹 소속회사는 205개다. 지난달 5월 발표된 소속회사 규모(219개)보다 14개 감소했다. 그룹 차원의 사업 구조 최적화 기조가 이어지면 이른 시일 내에 200개 미만으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난 2021년 5월 기준 148개에 불과했던 SK 소속회사는 1년 뒤 186개로 늘었다. 2023년 하반기에는 200개를 돌파했으며, 지난해 5월 기준 219개까지 늘었다. 같은 4대 그룹 일원인 삼성(63개), 현대차(70개), LG(60개)와 비교했을 때 소속회사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수준이다. SK그룹의 소속회사 규모는 친환경으로 대표되는 신사업 분야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성장 가능성이 큰 회사를 연이어 인수하며 급증했다. 그러나 비대한 몸집은 결국 독이 됐다. 정유 등 주력 사업 실적이 악화되는 상황 속에서 운영에 필요한 고정비용 부담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에 소속회사 간 합병부터 비핵심 사업 정리까지 전방위한 가지치기가 불가피해졌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그룹 에너지 부문 중간 지주사인 SK이노베이션과 ‘알짜’ 비상장사인 SK E&S 합병을 단행했다. 그룹 에너지 사업의 효율성을 높임과 동시에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이자 배터리 계열사인 SK온의 투자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SK온은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SK엔텀과의 합병을 통해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을 버텨 낼 체력도 키웠다. 최대한 많은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알짜 사업도 매각했다. SK그룹의 투자형 지주사인 SK㈜는 지난해 100% 자회사인 SK스페셜티 지분 85%를 국내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에 매각했다. 매각 지분 가치는 2조7000억원 규모다.
이외에도 각 부문의 선택과 집중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SK이노베이션은 SKIET(분리막 제조업체) 지분 일부 매각을 포함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분 100%를 보유한 석유화학기업 SK지오센트릭의 매각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그룹 측에선 사실이 아니라며 선을 그은 상태다. 다만 내부적으로 SK지오센트릭의 변화 필요성에 대해선 어느정도 공감하는 대목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소재의 경우 지주사 SK㈜ 사내독립기업(CIC) SK머티리얼즈가 산하에 있던 SK에어플러스는 SK에코플랜트에 편입되고, SK스페셜티는 지분 매각이 결정되며 기반이 약해졌다. 결국 새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며 리밸런싱 향배가 주목된다.
건설업을 탈피해 환경·에너지 분야로 사업을 확대한 SK에코플랜트는 당장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친환경 사업을 과감히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 친환경 자회사인 리뉴어스와 리뉴원 매각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두 회사의 총 매각가는 2조원으로 추산된다. 최근 폐기물 시장의 성장성이 주목받으며, 인허가가 필요한 산업 내 파이를 키울 만한 매물로 주목받고 있다. 반도체 등 미래 먹거리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작업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SK에코플랜트는 지난해 말 반도체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하이테크 사업 조직을 신설했다. 미래 핵심 산업인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시장 선점을 위해 에너지 사업 조직은 별도로 독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