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가 함께 일하는 정원카페 설계
과하지 않은 ‘적절한 건축’ 지향점
2024년 목조건축대전 장려상 수상
![]() |
전남 장성에 있는 토끼뜰 카페 [소다건축사사무소 제공] |
![]() |
정대호 소다건축사사무소장이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70대 어머니의 손맛을 물려받은 중년의 딸이 음식을 만든다. 같은 층 반대편 공간에서는 손녀가 통창을 통해 산세를 바라보며 커피를 내린다. 들어서자마자 100년 된 단풍나무가 팔 벌려 안아주듯 손님을 반겨주는 이곳은 전라남도 장성에 있는 ‘토끼뜰’이다.
이곳은 “어릴 적 뛰놀던 고향에 3대가 함께 일할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을 만들어달라”는 건축주의 요청에 따라 탄생한 정원카페다. 면적 341㎡인 토끼뜰의 중심에 손녀의 할아버지가 키웠던 100살 넘은 단풍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나무의 왼편엔 식당이, 오른편엔 카페가 연결돼 어디에서도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아이부터 80대 노인까지 누구나 올 수 있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공간을 꿈꿨던 한 가족의 꿈은 이렇게 실현됐다. 이 건물은 2024년 대한민국 목조건축대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아버지의 나무’를 중정으로…3대가 만든 모두를 위한 공간
이 건축물을 설계한 이는 ‘소다건축사사무소’의 정대호 소장이다. 그는 “건축주 부부의 부모님 댁에 미팅차 내려갔는데 40년 전 선산에서 옮겨 심은 오래된 단풍나무가 반겨주는 느낌이 참 따뜻했다”면서 “이 가족의 분위기를 담은 이 나무를 중정에 배치해 통창과 글루램(Glulam·천연목재가 가진 약점을 보완한 공학목재)을 사용하는 목구조 디자인이 현장에서 떠올랐다”고 했다.
정 소장은 전작인 충남 예산의 정원카페 ‘백설농부’에 이어 토끼뜰에서도 공학 목재인 글루램을 활용했다. 그는 “목(木) 구조는 스팬(기둥과 기둥 간의 간격)이 짧아서 창을 작게 만들어야 하는 단점이 있는데 글루램은 강성을 높여 창을 크게 낼 수 있는 공학 목재”라며 “나무가 주는 따스한 느낌과 더불어 햇살이 드는 면적을 최대화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 |
전남 장성에 있는 토끼뜰 카페. 중정의 단풍나무가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손님을 맞는다. [소다건축사무소 제공] |
통창과 넓은 공간감 위해 글루램과 트러스 구조 활용
또 트러스 구조(삼각형 구조물· 밑이 넓어 구조적 안정성 확보)를 활용해 구조적 아름다움과 넓은 공간감을 동시에 확보했다. 이 구조를 의도적이지만 자연스럽게 노출시키기 위해 폴리카보네이트(투명 플라스틱 소재)로 마감을 했다. 내부는 목구조와 같은 톤의 인테리어 합판을 마감해 시각적인 편안함을 끌어올렸다. 넓은 창들과 더불어 눈길을 사로 잡는 건 지붕의 서까래와 기둥을 대각선으로 이어주는 브레이스 (사선 형태의 하중 분산 및 지지 구조물)구조다. 구조적 안정성은 물론 조명과 함께 차별화된 천장의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토끼뜰을 지을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마지막 단계로 7m에 달하는 높이 나무를 중정으로 옮겨 심을 때였다고 한다. 정 소장은 “땅이 바뀌고 소음과 충돌로 자칫 나무가 죽을 수도 있어 나무의사의 도움을 받았다”면서 “크레인 2개를 동원해 반나절 동안 옮겨 심는 전날, 걱정에 밤을 지새운 기억이 난다”고 돌아봤다. 자신이 애지중지했던 나무가 토끼뜰의 중심이 되길 원했던 이 가족의 가장은 완성된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50대 딸은 ‘아버지의 나무’라는 팻말을 세워 그 마음을 기억하고 있다.
정 소장은 건축주가 바랐던 ‘유니버셜 디자인(범용 디자인)’도 곳곳에 적용했다. 담소를 나누는 동네 어르신들도, 걷지 못하는 아기들도 누웠다 갈 수 있는 실내 평상을 비롯해 양육자와 아이가 함께 들어갈 수 있는 가족화장실이 대표적이다. 가족화장실은 건축주 가족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는 “사별 후 아이들을 키워 본 분이 기저귀를 교체하거나 딸과 함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없어 불편을 겪은 경험이 있었다”면서 “그 바람을 녹인 공간으로 지금은 수유실 등 휴게실 역할도 하고 있다”고 했다.
![]() |
경기 김포에 있는 단독주택 모담살롱. 건축주가 외장재 디자인에 직접 참여했다 [소다건축사무소 제공] |
‘참여형’ 건축 중시…건축주의 재능·역량 총동원
특별히 건축주는 토끼뜰의 외장재 시공에 직접 참여했다. 여기엔 정 소장의 작업 스타일이 영향을 줬다. 그는 사실 여느 건축가들과 다른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태국어를 전공하던 중 군 복무 시절 건축의 매력에 빠져 다시 대학에 들어간 케이스이다. 2020년 아주대 건축학과를 졸업 후 그는 4년 후 ‘참여형 건축’으로 일본 게이오대학원에서 석사를 받았다.
이후 일본의 건축사무소에서 4년간 실무를 하며 ‘절제의 미학’을 지향하게 됐다고 한다. 대신 소통을 통해 건축주의 참여를 최대한 유도하는 게 특징이다. 귀국 후 첫 작업은 누수를 겪는 아버지의 집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함께’ 하는 작업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한다. 1년 동안 아버지와 함께 집을 지은 시간들은 ‘건축물이 완성되는 과정 그 자체’가 행복해야 한다는 그의 믿음을 만들어 준 경험이다.
그는 “제가 하는 모든 프로젝트에는 건축주의 참여가 필수적”이라며 “집을 지을 때 보통 통틀어 4~5번의 미팅을 한다면 저는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토끼뜰 작업에서는 금속 설계 전문가였던 건축주에게 캐노피와 외장재를 잡는 조인트 등 자재 작업을 맡겼다.
은퇴 미술교사의 단독주택인 그의 또다른 대표작 모담살롱도 마찬가지다. 이 건물은 일반적인 주택과 달리 작업실이 거실의 3배 규모에 달한다. 집의 중심도 작업실이다. 건축주는 조각가인 자신의 재능을 살려 외장재 디자인에 참여했다. 정 소장은 “여러 대화를 통해 이분은 거실과 가족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닌 ‘작업하는 삶’을 더 원한다는 걸 알게 됐다”면서 “여행에서 본 포도농장에서 본 외벽을 말씀하셔서 석고로 직접 재현해달라고 요청했고 그걸 시멘트블럭으로 구현했다”고 했다.
모담살롱의 작업실은 일본의 건축가 안도 타다오를 좋아한 건축주의 취향을 반영한 콘크리트 노출이 특징이다. 다만 이 노출을 구현하는 데에 일본과 다른 한국식 시공 방식으로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정 소장은 “일본에서는 공기를 주입하고, 휘젓고, 충격을 주는 역할을 3명이 하는데 한국은 한 명이 골조에 뿌리는 방식이었다”면서 “이때 이후부터는 제가 시공방법을 직접 알려드려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소장은 절제미를 추구하는 건축가다. 그의 사무소 이름인 ‘소다(少多)’는 도덕경의 ‘소득즉 다즉혹(많으면 혹해서 보이지 않을 것이고 적으면 보인다)’에서 따왔다. 다르게 말해 그는 자신과 건축주의 역량을 총동원해 자원을 최소한 사용하는 것을 지향한다.
![]() |
충남내포신도시에 있는 이리정미소. 버려진 정미소 기계를 그대로 활용했다. [소다건축사무소 제공] |
그에게 건축주의 재능, 건축주 가족의 나무 등은 이미 가진 것들의 가치를 살릴 수 있는 좋은 재료였다. 버려진 정미소 기계를 주인공으로 만든 ‘이리정미소’ 작업도 마찬가지였다. 대전에서 바리스타 마스터로 일하던 건축주의 제안에서 시작된 작업이었다. “10년 동안 멈춰진 정미소 기계를 보며 나이 들어가는 자신을 보는 것 같다. 저 기계를 (쓸모 있게) 살려 달라”는 요청이었다.
정 소장은 거대한 기계를 옮기지 않고 그 자리에 둔 상태에서 골 강판 마감으로 기존 정미소의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했다. 대신 기계 옆에 커피 내리는 모습을 마치 무대의 공연처럼 볼 수 있는 곡선 바(bar)를 배치했다. 정 소장은 “정미소 기계의 쓸모를 부여하는 프로젝트였다”면서 “시작점이 된 건축주의 감성과 배경을 잃지 않도록 하면서도 루버 식 외장재를 통해 단순하지만 입체적인 느낌을 구현했다”고 돌아봤다.
건축가로서의 정 소장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그는 5~6명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인 작은 마을을 설계하고픈 꿈이 있다. 요리사 출신의 건축주에겐 특화된 주방이, 엔지니어인 건축주에 집엔 마을의 정비소가 있어 서로 따로 또 같이 어우러질 수 있는 클러스터 같은 공간을 말이다. “살게 될 사람들이 직접 설계와 건축에 참여해 5~10년이 걸릴 수 있지만 꼭 해 보고 싶은 일”이라며 “기회가 없다면 제가 은퇴 후 친구들과 함께 도전해 볼 것”이라고 웃었다.
김희량 기자